[데스크칼럼] 바이오 R&D 후속 예산 삭감, 선행투자까지 버려서야

김희준 바이오 부장
김희준 바이오 부장

(서울=뉴스1) 김희준 바이오 부장 = 집을 짓다가 기초공사와 골조를 마친 뒤 공사를 멈추면 어떻게 될까. 돈을 아꼈다고 할 수 있을까. 비바람을 맞은 골조는 녹슬고 빈 건물은 흉물이 된다. 훗날 공사를 재개하려 해도 보수비가 더 든다. 아낀 것은 지붕값이지만 잃는 것은 집 한 채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서 진행 중인 일부 바이오 연구개발(R&D) 사업의 후속 예산이 줄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지원을 믿고 인력과 설비를 투입한 기업과 연구기관으로서는 그동안 쌓은 성과와 비용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 R&D는 한 해 예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후보물질 발굴과 독성·효능 확인, 생산공정 개발, 임상시험과 허가까지 수년에서 십수 년이 걸린다. 앞 단계의 성과가 다음 단계로 이어져야 투자의 가치가 살아난다.

진행 중인 연구의 후속 예산을 일률적으로 끊는 것은 단순한 세출 절감과 다르다. 이미 집행한 돈이 회계상 불용액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데이터와 시료, 연구인력, 임상 네트워크가 다음 단계로 연결되지 못하면 선행투자는 사실상 '매몰 비용'으로 전락한다.

바이오 연구는 정교한 이어달리기다. 후보물질을 발굴하고도 전임상 예산이 끊기면 기술은 논문 속에 갇힌다. 전임상을 마친 뒤 임상 진입 비용을 막으면 약은 환자에게 닿지 못한다. 임상 도중 지원을 중단하면 의료기관을 연결하고 참여자를 모집하며 쌓은 시간과 신뢰까지 사라진다.

장부에 잡히지 않는 손실은 더 크다. 연구팀이 해체되고 숙련 인력이 다른 분야나 해외로 떠나면 같은 역량의 팀을 재건하는 데 수년이 걸린다. R&D는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켤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시료와 세포주를 점검하고 공정을 재검증하는 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든다. 예산의 단절은 지식과 경험의 단절이다.

물론 한번 시작한 과제를 무조건 끝까지 지원하자는 말은 아니다. 가능성이 낮아졌거나 목표 달성에 실패한 과제는 엄정한 평가를 거쳐 중단해야 한다. 문제는 성과와 진척도를 살피지 않은 일률적 삭감이다. 계속 지원할 과제와 규모를 줄일 과제, 민간투자로 넘길 과제, 종료하되 데이터와 시료를 보존할 과제를 정밀하게 나눠야 한다. 최소한의 정리 예산과 기술이전 통로도 필요하다.

값비싼 전례도 있다. 2024년 국가 R&D 예산 삭감 과정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계속과제 1만 1852건의 연구비나 목표 등이 변경됐고 96건은 중단됐다. 중단 과제에 2023년까지 투입된 연구비만 429억 4500만 원이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연구비 감액으로 과제가 중단되면 기존 투입 재원이 매몰 비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은 연속 투자의 가치를 보여준다. 2023년 영국 의학학술지 'BMJ'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팬데믹 전인 1985~2019년 mRNA 백신 관련 기초·응용 연구와 개발에 최소 3억 37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가운데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투자는 1억 1600만 달러였다. 백신이 단기간에 나온 듯 보였지만, 그 아래에는 수십년간 축적한 기술과 공공투자가 있었다.

정책 신뢰의 손실도 가볍지 않다. 기업과 대학, 병원은 정부의 중장기 계획을 믿고 사람을 뽑고 시설을 갖춘다. 장기 도전을 주문한 정부가 이듬해 지원을 거둬들인다면 누가 국가 과제에 시간과 자본을 걸까. R&D 정책에서 치명적인 비용은 예산 부족만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이다.

재정이 빠듯하다면 신규 사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기존 과제의 단계별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국가가 가능성을 인정해 출발시킨 연구라면 적어도 다음 평가 지점까지 건너갈 다리는 놓아줘야 한다.

후속 예산 삭감은 미래의 지출만 줄이는 일이 아니다. 과거 투입한 국민 세금의 가치까지 지울 수 있다. 완공하지 않을 집이라면 처음부터 짓지 말았어야 한다. 이미 기둥을 세웠다면 지붕을 올릴지, 다른 주인을 찾을지, 자재라도 보존할지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삭감이 숫자 줄이기가 아닌 '선택과 집중'이 된다. 그것이 세금을 아끼고 연구자를 존중하는 예산 운용이다.

h99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