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버지의 호소가 정책으로…희귀질환 아이들 식판이 달라졌다

식약처 '희귀질환 어린이 식사안전관리 지침 마련기' 공개
1389개 질환 자문거쳐 1년 만에 결실…"행정의 온기 보여줘"

오유경 식약처장이 지난해 8월 열린 '식의약 정책 이음 열린 마당'에 참석해 당원병환우회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식약처 제공)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희귀질환을 가진 아이에게는 평범한 한 끼도 특별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지난해 8월 열린 '식의약 정책 이음 열린마당'. 마이크를 잡은 배준호 당원병 환우회 대표는 희귀질환 아이들이 급식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아이마다 먹을 수 있는 음식과 피해야 하는 음식이 다르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자료가 없어 부모가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에게 매번 식사 관리 방법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었다. 희귀질환 환아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매일 마주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목소리를 정책 과제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희귀질환 어린이 식사안전관리 지침'이 세상에 나왔다.

세계적으로도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운 이 지침은 한 보호자의 제안에서 시작해 정부와 전문가, 환자단체, 급식 현장이 함께 완성한 결과물이다. 한 사람의 절실한 호소가 정책이 되고, 정책이 다시 아이들의 일상을 바꾸는 출발점이 된 셈이다.

1389개 희귀질환, 식사 정보는 부족했다

1일 식약처에 따르면 지침 마련 과정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희귀질환의 종류가 워낙 많고 질환마다 필요한 식사 관리법도 달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막막한 상황이었다.

현진우 식약처 대변인은 "처음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누구에게 자문을 구해야 하는지, 급식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조차 막막한 상황이었다"며 "희귀질환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기존 자료만으로는 아이들의 식사 관리를 위한 실질적인 기준을 만들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질병관리청 희귀질환 헬프라인에 등록된 1389개 질환 정보도 대부분 의학적 설명에 머물러 있었고, 정작 현장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절실했다"며 "그래서 책상 위 자료보다 현장의 목소리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식약처와 식생활안전관리원은 전국 238개 급식관리지원센터를 통해 3만 4000여 개 어린이 급식시설을 조사했다. 그 결과 27개 시설에서 32명의 희귀질환 어린이가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들이 앓고 있는 23개 질환을 토대로 우선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후 질환별 의료진과 영양 전문가를 찾아 자문하고,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환우회, 어린이집연합회, 급식관리지원센터 관계자들의 의견도 여러 차례 수렴했다.

특히 "현장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새로운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반영해 여러 차례 수정과 보완을 거쳤다. 그 결과 당초 지난해 11월 공개를 목표로 했던 지침은 계획보다 4개월 앞당겨 올해 7월 마련됐다.

오유경 식약처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 7월 30일 경기 평택시 급식관리지원센터에서 열린 '희귀질환 어린이 식사안전관리 지침' 현장 소통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식약처 제공)
한 사람의 제안이 정책이 되기까지

이렇게 완성된 지침에는 질환별 주요 특징과 식사 관리 방법, 섭취를 피해야 할 식품과 주의 식품, 식재료 선택 시 확인해야 할 표시 사항, 급식시설에서 알아야 할 유의 사항 등이 담겼다.

처음에는 4개 질환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내용을 지속해서 보완해 현재는 29개 희귀질환에 대한 식사 관리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식약처는 해당 지침을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에 공유하고 누리집에도 공개해 어린이집과 유치원뿐 아니라 학교와 장애인 시설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정책을 처음 제안했던 배 대표는 "희귀질환 환아의 아버지로서 한 사람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소통해 준 식약처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현 대변인은 이번 사례를 "행정의 온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도·단속과 안전관리 등 다소 딱딱한 업무의 긴장감 넘치는 일상에서 이번 지침은 식약처 행정의 온기를 보여준 뜻깊은 사례"라며 "규제라는 다소 차가울 수 있는 틀을 벗어나 국민의 목소리에 적극 응답했을 때 국민이 느끼는 행복과 안심이 얼마나 큰지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식약처의 행정이 국민의 가까운 곳에서 일상의 안심을 보듬따뜻한 손길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