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넘어 국민 삶으로…질병청, 건강 사각지대 메운다
신생아 희귀질환 조기진단부터 소아당뇨·남성 HPV·폭염 대응까지
생애주기별 맞춤형 건강정책 확대…국민 체감형 건강 안전망 강화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질병관리청이 감염병 대응을 넘어 국민 건강 전반을 책임지는 기관으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정책의 관심이 닿지 않았던 건강 사각지대를 발굴해 연구하고, 이를 실제 정책으로 연결하는 데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희귀질환 조기 진단이 필요한 신생아부터 제1형 당뇨병을 안고 학교생활을 이어가는 소아·청소년, 식이조절이 치료의 핵심인 희귀질환자, 기록적인 폭염에 가장 취약한 노인과 임신부까지 정책의 대상도 한층 세분화되고 있다.
질병청은 상반기 신·변종 감염병 대응체계 고도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건강 취약계층을 발굴하고 생애주기별 건강안전망 강화를 중점 과제로 추진해 갈 전망이다. 신생아 희귀질환 유전체 정밀진단 확대와 소아·청소년 제1형 당뇨병 등록체계 구축, 남성 청소년 HPV(사람유두종바이러스) 국가예방접종 확대, 희귀질환 지원 강화, 폭염 취약계층 보호 등이 대표적이다. 질병을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 사각지대를 발굴해 예방과 관리 중심의 정책으로 연결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장 먼저 정책의 손길이 향하는 곳은 출생 직후다. 질병청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희귀 유전질환이 의심되는 환아를 대상으로 유전체 정밀진단을 확대한다. 유전진단 기간을 기존 4~6주에서 5일 수준으로 단축해 희귀질환을 조기에 확인하고 치료 시기를 앞당긴다는 구상이다. 혈액을 활용한 유전체 분석으로 원인 질환을 보다 신속하게 확인해 불필요한 침습적 검사 부담도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영유아를 위한 건강관리도 더욱 세밀해진다. 질병청은 보호자를 대상으로 의약품 안전사용 정보와 호흡곤란 등 응급상황 대응 정보를 제공하고, 성장 단계별 건강정보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희귀질환 관리도 치료를 넘어 환자의 삶 전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확대된다. 질병청은 의료비 지원을 강화하는 데 이어 2027년부터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의 부양의무자 소득·재산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이다. 우선 간병비와 인공호흡기 지원 대상 질환, 극희귀질환, 기타염색체이상질환에 적용하고, 2028년에는 전체 희귀질환으로 확대해 환자와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희귀질환 진단지원도 기존 810건에서 1150건으로 확대하고, 희귀질환 전문기관이 없는 시·도에도 거점기관을 지정해 지역 간 의료 접근성 격차를 줄일 방침이다. 이를 통해 환자 등록과 연구를 연계한 데이터 기반 관리체계도 고도화해 치료제 개발과 맞춤형 정책 수립 기반을 마련한다.
희귀질환 가운데 당원병 환자를 위한 지원은 질병청이 '생활 속 치료'까지 정책 영역으로 확장한 대표 사례다. 당원병은 먹는 것이 곧 치료인 희귀질환으로 저단백 특수식 섭취가 필수적이지만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질병청은 특수식 지원 기반을 마련해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덜고 안정적인 치료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단순히 의료비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환자들의 일상까지 살피는 정책으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성장기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정책도 한층 촘촘해진다. 질병청은 소아·청소년 제1형 당뇨병 레지스트리를 구축하고 참여 의료기관을 42개 병원에서 50개 병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동안에는 국내 환자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질환 관리와 정책 수립에 한계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진단 시기와 치료 과정, 합병증은 물론 학교생활과 생활환경까지 체계적으로 축적해 교육·복지·의료 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환자를 단순히 등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을 국가가 함께 관리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예방 중심 정책의 외연도 넓어지고 있다. 올해 5월부터 처음 국가예방접종사업 대상에 포함된 12세 남성 청소년 HPV 예방접종은 시행 초기부터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질병청에 따르면 사업 시행 1개월 만에 접종률 12.8%를 기록해 사업 목표치인 10%를 웃돌았다. 특히 여성 청소년 국가예방접종사업이 처음 도입됐을 당시 사업 시행 4개월 차 접종률(13.2%)과 비교해도 격차가 0.4%포인트에 불과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기존 국가예방접종 정책의 대상이 아니었던 남성 청소년까지 지원 범위를 넓혀 예방 사각지대를 해소한 대표 사례"라고 설명했다.
질병청의 정책은 영유아와 청소년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후 위기와 초고령사회라는 새로운 보건 환경 변화 속에서 그동안 정책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건강위험까지 관리 범위를 넓히고 있다.
먼저 질병청은 올여름 폭염에 대비해 노인과 임신부를 대상으로 맞춤형 건강관리 매뉴얼과 행동 요령을 마련하고, 온열질환 예방수칙을 사전에 안내할 계획이다. 획일적인 예방수칙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 취약성이 높은 계층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폭염으로 인한 건강영향을 지속해서 분석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건강 피해를 줄이기 위한 연구와 정책도 함께 확대할 방침이다.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건강 노화 정책도 추진한다. 질병청은 올해 노쇠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한국형 노쇠 예방 표준사업모델을 개발해 지역사회 중심의 예방관리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노쇠를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 아니라 예방과 관리가 가능한 건강 문제로 접근해 건강수명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구상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질병 관리 정책은 감염병 대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며 "생애주기별 건강위험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그동안 정책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분야까지 촘촘하게 지원해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건강안전망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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