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표준 없는 '자율 교육', 간호사에겐 또 다른 '위험'이다

박승호 녹색병원 정형외과 전담간호사

대한민국 의료 현장에서 오랫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자 거대한 축으로 존재했던 진료지원 간호사의 업무가 마침내 간호법 시행이라는 역사적 변곡점을 맞이했다. 수술실과 처치실에서 의사의 손발이 되어 고위험 업무를 수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문제가 생기면 '법적 무국적자'로 내몰려 개인의 희생으로 갈음해야 했던 모순의 역사가 비로소 법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법 시행을 바라보는 현장의 공기는 기대보다 무거운 우려에 가깝다. 법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고 해서 수년간 쌓여온 불신과 불안이 단번에 해소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과연 우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까"라는 현장의 근본적인 질문은 이제 법 제정이라는 '선언'을 넘어,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라는 '실행'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진료지원 업무의 안전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교육 체계의 주도권'이다. 현재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기관 측은 경영의 효율성과 기관별 특수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각 병원급에서의 '자율적 단기 교육'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 간호사들의 시각에서 볼 때, 표준화되지 않은 자율은 교육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방임에 불과하다.

진료지원 업무는 침습적 처치와 고도의 판단력을 요구하는 의료 행위를 포함한다. 만약 교육 기준이 병원마다 제각각이고,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단기 속성으로 현장에 투입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병원은 ‘규정대로 교육했다’는 논리로 빠져나가고, 숙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를 수행한 개별 간호사에게 다시 독박 책임을 지우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장 간호사들이 대한간호협회 주도의 통합적 교육 체계를 강력히 요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병원의 경영 논리나 인력 수급 편의에 휘둘리지 않는 '국가적 표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간호 교육의 전문성을 쌓아온 간호협회의 커리큘럼은 병원 규모나 지역에 상관없이 일정한 수준의 역량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병원이 주도하는 임기응변식 교육으로는 간호사를 독립된 전문직으로 성장시킬 수 없다. 간호사가 어느 병원에서 일하든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그에 걸맞은 법적 면책권을 보장받는 시스템이 갖춰져야만 비로소 간호법은 실효성 있는 '방패'가 된다. 표준화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 행위의 안전장치를 국가가 공인하는 절차여야 한다.

간호법 시행은 전담간호사를 둘러싼 오랜 불법 논란을 종식할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이 기회가 '껍데기뿐인 법'으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의료 혁신의 동력'이 되느냐는 하위법령에 담길 교육 주체의 설정에 달려 있다. 교육의 주체가 병원의 '편의'에 치우친다면, 간호법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간호사를 의사의 대체재로 활용하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속도전이 아니다. 의료기관의 단기적 이익보다는 환자의 안전을, 그리고 현장 인력의 전문성 확립을 최우선에 둔 올바른 방향 설정이 시급하다. 간호사는 그동안 법적 근거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환자 곁을 지키며 의료 현장의 공백을 메워왔다.

국가는 이제 간호사의 헌신에 응답해야 한다. 그 응답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과 이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법적 테두리여야 한다. 진료지원 간호사가 당당하게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때, 대한민국 의료의 질 또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정부는 병원의 자율성이라는 달콤한 유혹 대신, 교육의 표준화라는 정석을 택해야 한다. 간호협회의 전문적인 교육 체계 안에서 양성된 간호사들이 현장에서 실력을 발휘할 때, 환자들은 비로소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다. 간호법이 현장 간호사들에게 진정한 '법적 고향'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