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요양병원 많은 지역, 의사 더 필요"…추계위, 새 수요모형 공개

20년 유지된 성·연령 중심 공식 수정…병원종별 가중치 첫 적용
지역의사제·정원배분 시나리오에도 직접 반영…"정원 배분 현실성"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태현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회장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T타워에서 열린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25.8.12/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의료기관 종류별 진료량 차이를 반영한 수요모형을 처음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요양병원·의원 등 네 가지 의료기관 유형별로 가중치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20년 가까이 유지돼 온 '성·연령 중심 의료수요 공식'이 전면 수정되는 셈이다. 지역의사제 시행을 앞두고 2027학년도 의대 정원과 시·도별 배분 기준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추계위는 최근 열린 제9차 회의에서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요양병원·의원 등 병원 종류별 의료이용량을 구분해 반영하는 새로운 수요모형을 논의했다. 이는 그동안 단일 구조로 계산되던 지역 의료수요가 실제 진료환경과 괴리가 크다는 문제를 반영한 조치다.

이번 회의에서 제시된 가중치는 상급종합병원 1.3배, 종합병원 5.2배, 요양병원 1.8배, 의원 1.0배다. 급성기 중증 환자가 집중되는 상급종합병원은 외래·입원 진료량 모두가 높고, 종합병원은 중증도와 입원 비중이 급증하는 영역으로 나타났다. 요양병원은 장기입원 중심 구조여서 입원일수가 상급종병 대비 5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기존 수요모형에서는 의료기관 종별 차이가 반영되지 않아 지역별 수요가 과소 또는 과대 산정되는 문제가 지속됐다.

지난 2023년 건강보험 청구자료 기준으로 지역별 입·내원일수는 서울 11억 일수, 경기 13억 일수, 경북 4억 9000만 일수, 전남 3억 8000만 일수, 강원 3억 2000만 일수다. 단순 인구 비중으로는 경기·서울이 가장 높지만, 요양병원 중심 구조가 강한 전남·경북·강원은 실제 의료수요가 인구 대비 1.4~1.8배 높게 나타났다. 고령층 입원일수 증가와 필수과 인력 부족까지 겹치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이 수요 격차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추계위 한 관계자는 새 수요모형이 기존의 '성·연령 가중치 × 의료이용량 비율' 구조에서 벗어나 '보정 인구수 × 의료이용량 비율 × 병원 종별 가중치 × 필수과 부족률' 형태로 확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 규모를 반영하는 가중치가 더해지면 지역 간 수요 차이가 더욱 명확해지고, 정원 배분 기준도 보다 구체화될 수 있다.

특히 요양병원 비중이 높은 지역은 새 모형이 적용될 경우 의료수요 비율이 급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장기 입원환자 진료 부담이 크고, 고령층 인구가 집중된 지역에서는 실제 의사 수요가 대도시보다 높게 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외래 중심 진료가 많은 수도권은 종별 가중치 적용 시 수요 증가폭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추계위 한 관계자는 "병원 종류별 진료 구조가 크게 다른데도 단일 수요공식으로 계산해 왔던 것이 문제였다"며 "종별 가중치를 반영하면 지역 간 실제 진료량 격차가 더 정확히 드러나 정원 배분의 현실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모형도 연령 활동률·근무일수(FTE) 반영…은퇴모형까지 개편수순

이번 개편은 수요모형만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공급모형에서도 연령별 활동률·임상 이탈률·근무일수(FTE) 등을 단계적으로 반영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추계위는 이번 회의에서 "65세·70세·75세 은퇴 시점을 일괄 가정하는 방식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결론 짓고, 연령별 활동률 기반 은퇴모형을 적용하는 방향을 논의했다. 고령 의사 증가·파트타임 근무 확산·여성 의사의 근로시간 감소 등 추세가 공급량 변화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책 변수도 수요·공급모형 전반에 반영된다. 지역의사제 시행에 따른 지역 잔류율 변화, 필수과 충원률·이탈률 등은 향후 시나리오 분석 단계에서 평가될 예정이다. 지역의사제는 향후 10년간 지방권 의사 배치 구조를 바꿀 핵심 변수로 꼽히는 만큼, 수요모형 개편은 정원 배분과 필수의료 정책에도 직접적 근거로 사용될 전망이다.

추계위는 이달 집중 회의를 통해 수요·공급모형을 확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와 교육부의 정원 배분 논의를 지원할 계획이다. 새 모형은 2027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과 지역의사 선발 비율 결정의 근거 자료가 된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