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급 발암물질' 논쟁…국제 기준은 업종 아닌 '반복되는 야간근로'

수면·멜라토닌·대사 교란…야간근무 위험의 공통 분모
항공·의료는 기준 마련…물류·배송만 관리 공백 지속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새벽배송을 둘러싼 '2급 발암물질'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 기준과 연구 결과는 특정 업종 자체보다 반복되는 야간노출 구조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중심에 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 따르면 IARC는 2019~2020년 발표한 '발암요인 평가 보고서 제124권'을 통해 '야간 교대근무'를 '인체 발암 가능 요인(Group 2A)'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는 특정 직업이 아니라 일반 인구의 수면 시간대에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을 기준으로 한다. IARC는 수면, 멜라토닌, 신진대사 리듬이 장기간 교란될 경우 암 발생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IARC는 직업명이나 산업군을 열거하지 않는다. 발암 가능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업종보다 '노동시간대·반복성·교란 여부' 등 노출 양상이 더 중요한 평가 요소이기 때문이다. 직종명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발암 가능 분류에서 제외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WHO 역시 야간노동을 '일주기 리듬의 교란'으로 정의하며, 이로 인한 혈압·혈당 조절 장애, 인지기능 저하, 심혈관질환 위험 증가를 경고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야간근무자들을 '건강 보호 조치가 필요한 고위험군'으로 분류하며, 근무 패턴 조정과 연속근무 제한 등을 권고한다.

밤샘노동을 금할 것인가, 관리할 것인가…의료계 답변은

밤샘근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암, 심혈관 질환, 정신 건강, 사고 위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보고됐다. 지난 2022년 하버드 의대와 브리검 여성병원 연구진은 23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장기간 야간근무를 한 여성의 경우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유럽 직업환경건강안전청도 야간에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억제되면, 세포 속 DNA 손상을 회복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심혈관계 영향도 확인된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공중보건대학원은 17만 명 코호트 연구에서 야간근무자의 심혈관 사망률이 주간근무자보다 높다고 밝혔다. 영국 옥스퍼드대·맨체스터대 공동연구팀은 2021년 발표한 메타분석(65개 연구·140만 명 대상)에서 야간근무와 불면·우울·인지기능 저하가 관련된다고 밝혔다.

야간노동이 재해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워싱턴대 환경보건학 연구진은 야간 운전자의 교통사고 위험이 낮 시간대보다 1.6~2.0배 높다고 분석했다. 장시간 운전과 회복 부족이 겹치면 사고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신·모성 건강에 대한 영향도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UCSF) 연구팀은 2023년 임신 근로자 10만 명을 6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야간근무 집단의 조산 위험이 1.42배, 임신성 고혈압 위험이 1.31배 높다고 밝혔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도 야간근무가 수면·대사 리듬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태아 성장 지연과 연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항공 승무원과 간호사 등 일부 직종을 중심으로 근무시간·휴식시간 기준이 마련돼 있다. 항공안전법은 승무원의 비행 및 휴식시간 기준을 규정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는 교대간호사를 대상으로 연속 야간근무 제한과 최소 휴식시간 확보 지침을 적용한다. 반면 야간근로 비중이 높은 물류·운송업 등 민간 서비스업에서는 유사한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야간노동 위험은 '업종 금지 여부'가 아니라 '노출 시간 조정·휴식 보장·교대 방식 설계' 등을 통한 관리체계 구축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근무 형태, 교대 주기, 연속 야간근무 횟수에 따라 건강영향이 달라지는 만큼 업종별·직무별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류현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은 "IARC가 제시한 것은 야간근무가 발암 가능 인자라는 사실이며, 이를 기반으로 실제 위험을 평가하고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정부와 산업계의 몫"이라며 "새벽배송 논쟁이 단순한 ‘등급 공방’으로 흐르면 건강권 보호라는 본질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업환경의학회 관계자는 "야간노동은 금지 여부가 아니라 반복되는 노출 조건을 어떻게 조절할지의 문제"라며 "IARC 분류는 유해성 확인 자료일 뿐이며, 실제 위험 관리는 각국의 정책 설계 영역"이라고 했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