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중요한 건 '누구에게 배우는가'…'지역의사제' 해법은
[김규빈의 저널톡]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교육-근무-정주'가 해답
호주·아프리카·영국 등 발간 국제학술지 분석…"의무복무 만으로는 부족"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의사 수는 늘어난다는데, 지역 병·의원은 여전히 비어 있다고 한다. 최근 국제 학술연구들은 공통으로 의사들에게 정착 지원금, 장학제도를 마련하는 것보다는 '어디서 자라고, 누구에게 배우고, 누구와 지내는지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출신 학생을 선발해 일선 의대에서 교육하고, 다시 그 지역으로 되돌리는 '지역의사제', 즉 '의료인력 파이프라인(rural pipeline)' 구조가 의료 불균형 해소의 핵심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호주·아프리카·영국 등 3개 지역의 대표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다. 호주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지난 2000년부터 2023년까지 발표된 연구 46편을 분석해 지역 출신 학생의 근속률을 비교했다. 아프리카 25개국의 연구를 다룬 국제 학술지는 세게보건기구(WHO) 각국 보건부가 운영한 지역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검토했고, WHO 협력 정책 리뷰는 간호사·조산사 등 비(非)의사 인력까지 포함해 '지역 정착률'을 추적했다.
세 연구 모두 WHO가 제시한 4대 기준 △지역 출신 학생 선발 △지역 내 교육·훈련 △현장 노출 △지속적 근속 지원에 따라 설계됐다. 연구결과는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지역 출신 학생이 도시 출신보다 지역 병원에 남을 확률은 평균 2.5배 높았으며, 지역 실습 경험이 있는 의사는 도시 근무로 옮길 확률이 절반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지역 출신 학생 비율이 10% 늘 때마다 졸업 후 지역 근무 의사 수가 평균 6.5%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호주 연구에 따르면 지역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의 72%가 최소 5년 이상 지역에서 근무했지만, 대도시 의대를 졸업한 의사의 지역 근속률은 28%에 그쳤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숙소·교통비·가족 지원금 등 인센티브를 포함한 파이프라인 제도를 운용한 국가의 의료 인력 정착률이 55%로, 그렇지 않은 국가(21%)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간호사·조산사 등 비의사 인력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관찰됐다. WHO 보고서는 "지역 기반 간호·조산 교육기관이 있는 지역은 의료 공백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여성 보건인력의 장기 정착은 모성 사망률 감소와 직결됐으며, 교육·복지·가족 지원이 결합한 구조일수록 근속률이 높았다.
논문들은 공통으로 지역 근무 의료 인력 정책의 출발점은 "'단순 숫자 늘리기'가 아니라 '인력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지역 파이프라인 정책은 단기 파견보다 3배의 장기근속 효과를 보였다"며 "국가 차원의 장기 예산과 지역사회 기반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호주 연구는 고소득 국가 중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저소득 국가에 일반화하기 어렵고, 아프리카 연구는 간호·조산 분야 데이터의 불균형으로 직종별 세부 분석이 제한됐다. 세 연구 모두 파이프라인 정책의 경제적 비용-효과(ROI) 분석이 포함되지 않아 향후 장기 재정 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들은 정부에서 추진 예정인 '지역의사제'와 맞닿아 있다. 단기 의무복무나 파견 중심 정책은 일정 기간 후 인력 공백이 반복되지만, 지역 출신 학생을 선발해 장기적으로 지역 안에서 교육·근무를 연계한 모델은 인력 유출을 근본적으로 줄인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메디컬 저널 오브 오스트렐리아(Medical Journal of Australia) 지난해 4월호, 휴먼 리소스 포 헬스(Human Resources for Health) 2023년 7월호, 세계보건기구(WHO) 2023년 정책 리뷰 보고서에 각각 게재됐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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