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비만 기준 풀자는 한국, 비만환자 이민도 경계하는 미국
- 황진중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국내에서 비만 기준을 완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성인 비만 기준을 체질량지수(BMI) 25가 아닌 27부터로 보자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비만 기준을 완화할 시 '불필요한 비만 낙인을 줄일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의료·보건 분야에서는 우려가 더 크다. 현실이 비만 기준을 높일 만큼 여유로운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국내 19세 이상 성인의 비만유병률은 지난 2023년 이미 38%를 돌파했다. 남자는 2014년 37.8%에서 2023년 45.6%로 7.8%P 늘어났다. 여자는 2014년 23.3%에서 2023년 27.8%로 4.5%P 증가했다.
20~40대 남성 비만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했을 시 증가 속도가 빠르다. 비만과 궤를 같이하는 당뇨와 지방간, 심혈관질환 역시 이 연령대에서 가파르게 늘고 있다.
비만 기준을 완화하면 비만율은 낮아지겠지만, 실제 비만 등 만성질환 위험이 감소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비만 진단 대상이 줄면 조기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기준 상향은 '비만 인구를 적게 보이게 하는 조치'이지, 국민 건강을 개선하는 방안과는 거리가 있다.
반대로 미 국무부는 최근 외국인에 대한 이민, 비자 심사에서 비만을 건강 위험의 하나로 보기 시작했다. 비만이나 비만 관련 만성질환이 있으면 비자 발급이 거부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여기엔 비만이 단순한 체형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료 비용과 직결된 '사회적 부담 요인'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우리나라가 기준을 완화하려는 시점에 미국은 오히려 비만을 비자 발급 검토 요소로 보는 상황은 많은 의미를 던진다.
경제 규모, 의료비 부담, 인구 구조가 다른 국가이지만, 비만을 정책 차원에서 어떻게 다루는지 대비된다. 우리나라의 기준 완화 논의가 건강 위험의 본질을 가린 채 통계상의 비만율 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준을 바꾸려면 선행해야 할 것이 있다. 비만 예방·관리 인프라 강화, 학교·직장 기반 프로그램 확충, 의료 접근성 개선 등 기본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현재처럼 진단·상담·치료 체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준만 올리면 관리 사각지대만 넓어질 수 있다. 비만의 사회적 비용이 급증하는 시기에 기준을 느슨하게 만드는 정책적 메시지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등도 고려해야 한다.
비만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만성질환에 가까운 공공보건 사안이다. 기준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이 비만자를 이민 단계에서부터 관리 대상으로 보는 이유는 그 비용과 위험을 국가가 결국 떠안게 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해야 할 일은 비만을 '덜 비만처럼 보이게 하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비만 등 만성질환 위험을 줄이는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준은 마지막에 손대야 할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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