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만 써야 할 안약, 입에 들어가면 '毒'…경찰서장 독살 사건의 경고[메디로그⑧]
테트라하이드로졸린 성분 치명적, 소량 섭취 생명 위협
식약처 "심혈관계, 중추신경계 심각한 부작용 발생" 경고
- 김학진 기자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오랜 시간 안약을 탄 음식을 먹게해 동거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50대 여성이 5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가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의약품이 부주의하거나 악의적으로 사용될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잠재적 위험물'로 변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4일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미국 일리노이주 녹스카운티 법원은 마시 오글즈비(53)에게 살인 및 중상해 혐의로 징역 50년형을 선고했다.
그는 30년 가까이 함께 지낸 연인 전 경찰서장 리처드 영(71)을 2021년 여름부터 수개월에 걸쳐 음식에 안약과 분쇄 약물을 섞어 서서히 중독시켰다.
처음 리처드는 단순한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으나, 증상은 점점 악화됐다. 리처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피로, 식은땀을 호소했고 결국 2021년 11월 급격한 심정지로 사망했다.
오글즈비는 이후 시신을 집 맞은편 창고에 숨긴 채 살아가며 "그는 현재 요양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1년 뒤인 2022년 10월 오글즈비가 임대한 창고에서 리처드의 시신이 부패한 상태로 발견되면서 사건이 드러났다.
사건 초기 검찰은 단순 사체 은닉 혐의로 그녀를 기소했으나, 부검 결과 테트라하이드로졸린에 의한 중독사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오글즈비는 법정에서 "남자 친구가 코로나19로 사망했으며, 그의 유언이 '인디언 매장지에 묻히는 것'이라 시신을 보관했을 뿐"이라며 결백을 주장했으나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후 검찰은 오글즈비가 "독살당한 남자 친구가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만족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체 은닉과 독살은 본질적으로 다른 범죄"라며 살인 혐의를 유지했고, 단독 재판을 택한 오글즈비는 판사가 5분 만에 내린 평결로 유죄가 확정됐다.
사건의 핵심이 된 '테트라하이드로졸린'은 충혈을 완화하기 위해 혈관을 일시적으로 수축시키는 성분이다. 눈에 넣을 때는 모세혈관에만 작용하지만, 체내로 흡수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물질은 교감신경을 과도하게 억제해 심박수를 떨어뜨리고 혈압을 낮추며, 과다하게 복용할 경우 호흡 정지나 심정지를 유발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안약이나 비강 스프레이를 어린이가 삼킬 경우 수 분 내에 의식 저하, 혼수, 호흡 곤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복적으로 경고해 왔다. 일리노이주 독극물센터(IPC) 역시 "단 몇 방울만 삼켜도 위험하다"며 안약을 가정 내 잠금장치가 있는 곳에 보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2024년 발표된 국제의학저널 'Pharmaceuticals'의 논문에 따르면 테트라하이드로졸린은 경구 섭취 시 심혈관계 억제 작용이 36시간 이상 지속될 수 있다. 또 소량만 섭취해도 성인과 어린이 모두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의 중독 반응이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안약은 누구나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위험성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이를 음식이나 음료 등에 섞어도 색이나 냄새 변화가 거의 없어 알아차리기 쉽지 않으며, 악용될 경우 치명적인 위해 물질로 돌변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만약 안약을 실수로 삼켰다면 절대로 억지로 토하거나 물을 많이 마시려 해선 안 된다. 테트라하이드로졸린에는 특별한 해독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응급의료진의 신속한 조치가 생명을 좌우한다. 즉시 119나 1339에 신고하고, 가능한 한 빨리 제품명과 섭취량을 알린 뒤 전문가에게 독극물·약물 중독 시 초기 대응 방법 안내 받아야 한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MFDS)는 "안약은 국소용 외용제이며, 체내 섭취 시 심혈관계와 중추신경계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공식 안내하고 있다.
또한 대한약사회는 "모든 가정에서 안약, 해열제, 비강 스프레이 등은 잠금장치가 있는 서랍이나 높은 선반에 보관해야 한다"며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도 약물의 용도를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내에서 테트라하이드로졸린은 충혈 완화용 안약과 코막힘 치료제 등에 쓰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대한약사회의 자료에 따르면 이 성분이 들어간 안약은 "외용제(눈에만 사용하는 약)"로 지정되어 있으며, 절대 경구로 섭취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성분의 경구 섭취에 따른 중독 사례나 부작용에 대한 보건당국의 별도 경고문은 아직 발표된 적이 없다.
보건의료 전문가는 "국내에서는 사용량이 적어 관련 통계가 미비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중독 보고 사례를 고려하면 동일한 위험이 존재한다"며 "가정 내에서는 어린이 손이 닿지 않게 보관하고, 복용 약물과 혼동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khj8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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