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후 3일내 효과 '사후피임'…英 무료, 日 처방 불필요, 韓만 깐깐[메디로그④]

"여성 자기 '性결정권' 상징…'선택'의 문제로 바라봐야"
오남용시 건강 해칠 우려…'의사 처방' 전문의약품 분류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영국 NHS(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가 사후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영국 내 모든 약국에서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1960년대 이후 성 건강 정책의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으며, 국내에서도 사후피임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9일(현지 시각) NHS는 전국 약 1만 곳의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기존에는 의사 진료를 거쳐야 했고, 약국에서 직접 구매할 경우 최대 30파운드(약 5만7000원)를 지불해야 했다. 이제는 약사 상담만으로도 무상 제공이 가능하다.

NHS 여성 건강 담당 책임자 수 맨 박사는 "여성이 자신의 성 건강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된 역사적 조치"라며 "영국인 5명 중 4명이 약국에서 도보 20분 거리 내에 거주하는 점을 감안하면 의료 접근성이 대폭 향상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약국협회장 헨리 그레그 역시 "응급피임약의 공공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며 "이번 조치는 환자와 약국 모두에게 큰 진보"라고 평가했다.

10월 20일부터 日여성들 의사 처방 없이도 약국서 구입 가능

한편 일본도 지난 20일 사후피임약의 일반 판매를 공식 승인하며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일본 아스카제약은 자사 제품 '노르레보(NorLevo)'가 일반 의약품으로 전환 허가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일본 여성들은 의사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직접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미성년자 역시 부모 동의 없이 구매가 가능하지만, '약사 입회하에 복용'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그동안 일본에서는 사후피임약이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병원 처방이 필수였으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회 비용이 1만4000엔(약 13만 원)달해 구매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나 청소년의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2017년부터 논의가 진행돼 올해 정식 승인을 받게 됐다.

국내에서 사후피임약은 여전히 의사의 처방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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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내에서 사후피임약은 여전히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관계 후 72시간(3일) 이내에 복용해야 하며 일반 피임약보다 호르몬 함량이 10배 이상 높아 부작용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또 오·남용 우려가 커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사후피임약을 복용해야 하는 경우는 응급상황일 때다. 일반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보고 의사의 처방전을 얻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원치 않은 성관계를 하고 난 후 수치심으로 진료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사후피임약이 필요한) 응급상황이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한다. 외국에서도 대면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고 견해를 내비쳤다

이에 여성단체는 "성폭력 피해자나 청소년이 즉시 복용하지 못해 임신 위험에 노출된다"며 '처방전 완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무분별한 복용은 생리불순과 호르몬 불균형을 유발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사후피임약을 구입하려면 진료비를 포함해 약 1만~3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사후피임약은 피임 실패나 무방비 상태의 성관계 이후 임신을 막기 위한 '응급수단용 피임제'다. 관계 후 24시간 이내 복용 시 피임 성공률은 약 95%, 72시간 내에는 85% 정도로 떨어진다. 이미 임신이 진행된 경우에는 효과가 없다. 즉 가능한 한 빨리 복용할 수록 효과는 더 크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메스꺼움, 두통, 복통, 피로감, 가슴 통증, 생리불순 등으로, 생리 주기가 당겨지거나 늦어질 수 있다. 반복 복용 시 호르몬 불균형, 배란 장애, 생리불순의 만성화 등이 나타날 수 있어 정기 피임용으로는 권장되지 않는다.

반면 매일 복용하는 일반 피임약은 저용량 호르몬으로 배란을 억제해 피임 성공률이 99% 이상이다. 생리통 완화, 여드름 개선, 자궁내막암과 난소암 위험 감소 등 부수적인 건강 효과도 있다. 다만 복용 초기에 체중 증가나 유방 통증, 기분 변화, 불규칙한 출혈이 생길 수 있으며, 흡연자나 고혈압 환자의 경우 반드시 복용 전 의사의 상담이 필요하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사후피임약은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응급 의료수단이지만, 오남용 시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며 "피임 실패가 반복된다면 장기적인 피임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피임약은 단순히 임신을 막는 약이 아닌 여성의 몸과 권리를 지키는 선택이자, 건강한 자기결정의 시작이다. 무엇을 복용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올바르게 사용하는가이다.

khj8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