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사고 의사 기소에 "이러면 누가 가겠나"…산과 사라질 '위기'
배상 판결 이후 검찰 기소로 형사 재판…"산모 진료 인력 멸종 우려"
법조계도 과한 기소 문화 지적…"의료중재원 합리적 보상 이뤄져야"
- 조유리 기자
(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와 전공의가 분만 사고 민사 배상 판결 이후 형사재판에까지 넘겨진 사건과 관련해 의료계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법조계에서도 현재의 과도한 기소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2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중앙지법은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A 씨와 전문의 B 씨(사건 당시 전공의)가 원고 C 씨 측에 6억 5000여 만 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이들은 지난 2018년 같은 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임의였던 산모 C 씨의 분만을 집도했다. 출산 직후 아기가 저산소증으로 인한 뇌성마비 판정을 받게 되자 지난 2021년 C 씨 측은 A 교수와 B 씨, 병원을 상대로 24억 원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분만 과정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며 "신생아가 출생 후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것을 고려하면 과실의 결과가 상당히 중하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대의학지식 자체의 불완전성 등으로 이 사건 장애에 다른 원인, 즉 산모나 태아 측의 요인이 없었는지를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며 의료진의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검찰은 민사 판결에서 의료진의 책임이 일부 인정되자, 지난달 26일 이들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의료계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불가피한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현장에 큰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면제하거나 경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의학회도 이번 형사 기소 건이 "앞으로 산과학을 가르칠 교수진들을 크게 위축시키고 고위험 산모 진료 인력을 멸종시킬 우려가 있다"고 토로했다.
전국 20개 대학병원 30~40대의 산과 교수 30명은 실명을 공개하며 '벼랑 끝에 선 젊은 산과 교수들의 성명서'를 내고 "고위험 산모와 태아를 돌보는 우리의 일상적 업무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형사 기소 대상이 되는 현실에 깊은 충격과 절망을 느낀다"며 "불가항력적 사고까지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명백히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선의 진료 행위를 결과에 따라 함부로 재단해선 안 되며, 분만 인프라 붕괴 등 구조적 문제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고 했다.
황종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소아과 기피 현상을 심화시킨 '이대 목동 사건'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 교수는 "분만 과정에서의 돌발 변수를 하나하나 예상하고 피하는 건 총알을 피하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라며 "아무리 사명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면허가 박탈될 수 있는 곳에 누가 가려고 하겠냐"며 산과 위축을 우려했다.
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이번 일로 "언제든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의사들 사이에) 팽배한다"며 "의학적 판단은 당시 정황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사후적 판단인데, 그 결과만을 보고 의료진의 처치가 태만한지(과실 여부를) 법적으로 다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법적 처벌 요건이 될 수 있는 중대한 과실에 대한 기준은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도 의료 사고와 관련해 과도한 기소 문화가 정착된 점을 지적했다. 박영호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변호사)는 "민사의 경우 의료 과실의 인과 관계를 추정해서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며 "형사 재판은 확실한 인과성이 필요하기에 하급심에서 인정이 되더라도, 대법원에 가면 결과가 다 뒤집힌다"고 설명했다.
박 전 판사는 그럼에도 환자 측에서 납득할 만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기에 기소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과실이 있는 경우 의료진이 배상해야겠지만, 과실이 경미한 경우에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이 제시하는 금액이 합리적이라고 느껴져야 소송으로 무조건 넘어가지는 않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의료사고 안전망을 확립하기 위해 조건부 기소 면제를 골자로 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환자·시민단체의 반발로 지지부진해진 상황이다. 지난 3월엔 의료진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데도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산모·신생아 사망 등 분만 사고의 보상한도를 현행 최대 3000만 원에서 최대 3억 원으로 올려 7월부터 시행 중이다.
ur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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