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헬스미래는 지금] 실패를 기획할 용기…'고위험 R&D'의 사회적 정당성이란?
이제욱 K-헬스미래추진단 프로젝트 매니저 = 혁신은 성공만을 전제로 하는 환경에서는 성장하기 어렵다. 예측이 어려운 감염병 팬데믹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바이러스는 무작위로 변이를 거듭하지만, 우리의 대응 체계는 실패를 우려한 나머지 경직된 측면이 있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제한하는 환경이다.
기존 공공 연구개발(R&D) 시스템은 성공 중심의 평가 비중이 높았다. 제한적인 예산운용과 성과 중심 평가가 연구자들이 과감한 도전에 나서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확실하지만, 파급력이 제한적인 성과나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물이 늘어났다. 팬데믹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는 이러한 성과들이 충분히 대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도전혁신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관(DARPA·BARDA·ARPA-H, 2024년 출범한 한국형 ARPA-H 등)은 과제 선정에서 ‘성공 가능성’보다 ‘성공 시 파급력’을 우선시한다. 기술 난도가 높더라도 판도를 바꿀 잠재력이 있으면 과감히 투자하며,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는 다음 도약을 위한 핵심 데이터로 활용한다. 즉, 위험이 예상되는 시도를 계획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학습 체계 안에서 추진한다.
이 생태계의 중심에는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ager, PM)가 있다. PM은 단순한 행정관리자가 아니라,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기술 포트폴리오 설계자이자 위험 기획자이다. 유연한 제도 환경에서는 PM이 국가 기술 전략의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 책임자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최근 대통령이 “국가 연구개발에 성공률만을 따질 필요가 없다”며 도전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이는 ‘위험 감수형 R&D’를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방향 전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특히 보건안보 분야는 본질적으로 높은 불확실성을 가진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차기 팬데믹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 백신·치료제·진단 기술은 국민 안전을 지키는 핵심 역량이며, 이 분야에서는 위험 감수와 학습을 전제로 한 고도화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개별 기술 개발 이전에 기꺼이 ‘도전적 시도를 기획할 용기’와 이를 뒷받침할 체계다. 이것이야말로 고위험 R&D의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다음 팬데믹에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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