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바이오산업
(서울=뉴스1) 김희준 바이오 부장 = "언제까지 맞지 않은 침대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너무 어렵습니다."
긴 대화 끝에 나온 바이오업체 대표 A 씨의 한숨 섞인 한마디. 이는 자신의 침대보다 키가 짧은 행인은 늘여 죽이고, 긴 행인은 다리를 잘라 죽인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의 일화를 빗댄 말이다. 특히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획일적인 기준의 병폐를 지적하는 비유다.
A 씨의 고심거리가 된 '침대'는 기술특례상장제도에서 비롯됐다. 기술특례상장은 보유기술의 혁신성이나 기업의 성장성을 인정받으면 상장예비심사 신청을 허용하는 제도로 2005년에 도입됐다. 이는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필수적인 바이오 스타트업의 상장을 도와 원활한 자금 조달이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2023년 기술특례상장 업체 중 반도체 설계기업 파두가 매출액을 부풀리며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이른바 '파두 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기술특례상장제도의 문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상장한 기업의 규제를 강화했다.
불똥은 기술특례상장이 많은 바이오 기업에 튀었다. 금융당국이 '예상 매출액'을 요구하면서 중장기 연구투자가 본업인 바이오 스타트업이 단기 매출에 연연하게 됐기 때문이다. 화장품을 파는 바이오 업체가 나온 배경이다. 이 때문에 바이오 연구의 집중도가 흔들리며 신약 개발 등의 기업 목표도 희석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야말로 침대에 맞춰 다리를 늘린 모양새다.
높아진 기술특례상장의 문턱 탓에 '기업공개(IPO) 활성화'라는 취지도 무색해졌다. 규제 전 제도를 염두에 두고 2, 3상의 막대한 연구비 조달을 계획했던 바이오 스타트업의 현 상황은 그래서 더 안쓰럽다.
스타트업의 든든한 자금줄인 벤처캐피탈(VC) 관계자들도 관망세다. 기술특례상장이란 '보증' 없이는 투자자의 동의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당국의 획일적인 잣대가 '연구개발'이란 특수성을 지닌 바이오 업계를 너무 손쉽게 재단하며 제도의 실효성을 막고, 그에 따른 자금순환도 끊어 놓은 상황이 됐다.
어렵게 키워온 바이오산업이 스타트업부터 고사 위기에 처하자, 관련 부처의 여러 관계자가 금융당국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국의 기준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물론 '투자자의 이익보호'라는 금융당국의 명분도 필요하다. 하지만 규제를 늘리고 문턱을 높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를테면 연구개발 중심의 바이오 업체에 대한 평가 기준을 매출이 아닌 기술 진척도로 설정하는 등의 제도적 '실리'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규제는 만든 이가 풀기 매우 어렵다. 규제의 명분이 규제를 만든 이를 기속해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정부가 들어서고 각 기관의 수장이 교체되는 바로 지금이 바이오산업에 드리운 규제 '잣대'를 재검토할 적기다. 정부 안팎에서 바이오 업계의 묵은 고충을 잘 살펴보길 바라본다.
h99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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