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동경, 나의 올림픽 "선수로서, 사람으로서, 더 성장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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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경이 최종예선 대비 소집 훈련을 위해 30일 오후 경기도 파주트레이닝센터(NFC)에 들어서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뉴스1

한국 축구대표팀과 K리그1 울산 현대에서 활약 중인 이동경은 그 누구보다 숨가쁜 2021년을 보내고 있다. 스스로 "축구선수가 된 뒤 요즘이 가장 빨리 시간이 가는 것 같다"고 말할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쁜 순간도 있었고 기억하기 힘들 만큼 괴로운 순간도 있었다. 이동경은 그 모든 순간들이 앞으로 이어질 더 긴 축구인생을 위한 귀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올해 그에게 가장 큰 사건은 역시 도쿄 올림픽 출전이었다. 

이동경이 포함된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도쿄 올림픽 8강 멕시코전에서 3-6으로 패하며 중도하차했다. 이동경은 이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는 등 돋보이는 활약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팀 패배와 4강 탈락으로 빛이 바랬다.  



그에 앞선 뉴질랜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선 0-1 패배 후 크리스 우드(번리)의 악수를 거부해 필요 이상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 

불필요하게 논란이 커졌던 사건이다. 물론 유쾌한 대응은 아니었지만, 올림픽을 향한 이동경의 열망과 승부욕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SNS까지 찾아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는 등 크게 질타했다. 올림픽 정신을 위배했다는 황당한 꼬리표까지 붙었다.

이동경은 뉴스1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올림픽 8강 탈락의 아쉬움과 '악수 거부 논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전해줬다. 

이동경(왼쪽)과 크리스 우드(오른쪽)(TV중계 화면 캡처)© 뉴스1

이동경은 도쿄 올림픽에서의 아쉬운 탈락과 일련의 사건을 떠올리며 "축구선수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어 "어릴 땐 개인적으로 아쉽고 개인적으로 속상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대표팀 선수로서 세계적인 큰 대회도 나가고 나아가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뛰어보니,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대표팀과 나라 전체의 행동으로 비춰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악수 거부' 논란이 나왔을 당시엔 곧바로 중요한 다음 경기들이 이어져 이동경이 충분한 해명과 속마음을 전할 여유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좀 더 깊게 파고 들었다.

이동경은 "뉴질랜드에 0-1로 충격패를 당한 뒤,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우리가 원했던, 준비했던 결과가 아니었다. (너무 분해서) 사실 그때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도 안 난다. 아쉬움이 커 낙담하고 있을 때 우드가 악수를 하러 오길래 툭 쳤다"고 조심스럽게 회상했다.

이어 "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질타하실 수 있다. 내 기분이 나빴더라도, 그 행동이 팀 전체를 대변할 수 있기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 해외에서도 경기 후 패자가 승자의 악수를 거부하는 경우는 흔하다. 물론 패하고도 손을 잡아준다면 더 근사한 대응이 됐겠지만, 올림픽만을 바라보며 모든 걸 걸었던 선수가 1차전에서 충격패를 당했을 때 그런 대응을 바라는 건 오히려 잔인한 일이다.

이동경은 "반성을 많이 했다. 좀 더 나이스하게 대처하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SNS에 욕설 댓글도 많이 달렸다고 주변에서 말해줬는데, 그 SNS는 이미 쓰지 않는 계정이었다. 어쩌면 직접 보지 않은 게 더 다행었는지도 모르겠다"면서 "이번 일을 바탕으로 다음엔 더 성숙한 대처를 해야겠다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도쿄 올림픽 멕시코전에서 골을 넣은 뒤 포효하는 이동경. © News1 이재명 기자

악수 논란으로 받은 욕설과 비난보다 더 큰 아픔은 역시 4강 탈락이었다. 이름에 빗대어 '도쿄 리'라는 애칭까지 생겼을 만큼, 이동경에게 도쿄 올림픽은 중요한 대회였다.

대회 전 메달을 향한 강한 열의를 보였고 실제로 이를 위해 피나는 노력은 했지만 안타깝게도 8강에서 도전을 멈추고 말았다. 이동경은 종료 휘슬 후 펑펑 눈물까지 쏟았다.

이동경은 "축구를 하면서 느낀 가장 큰 좌절이었다"는 한 마디로 아픔을 표현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걱정하는 것만큼 끝없이 좌절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동경은 이 좌절을 통해 꽤나 많은 것을 얻었고, 그것이 더 큰 발전을 부르리라 스스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동경은 "올림픽에서 메달은 못 얻었지만 자신감을 챙겨왔다"며 "세계무대에서 강팀 선수들을 실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실한 자신감, 상대보다 내가 체력적으로 더 많이 뛸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더 많은 1997년생 이동경에겐 메달보다 자신감이,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른 가치를 얻어내는 마음가짐이 더 값진 성과일 수 있다.

참가하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목표했던 결과를 얻는 데 실패하는 일은 어쩌면 축구선수에겐 당연한 숙명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좌절한다면 더 좋은 성장을 이룰 수 없다. 모든 것을 걸었던 올림픽을 아쉬운 결과로 마친 뒤에도 자신감을 얻었다며 웃는 이동경의 모습은 그래서 고무적이다.

레바논과의 월드컵 최종예선에 나선 이동경 .© News1 조태형 기자

이동경은 "노력한 만큼 좋은 성적으로 보상받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도 부족함을 깨닫고 얻은 점을 잘 챙긴다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대회에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다시 노력해야 한다"며 벌써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이동경은 올림픽을 마친 뒤 3일 만에 곧바로 소속 팀 울산의 경기에 나섰고, 한층 달라진 모습과 자신감 넘치는 경기력을 보였다. 이어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최종예선에 나섰고, 울산에선 202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올림픽을 향한 기대가 남다른 선수였기에, 좌절과 허무함도 그만큼 더 치명적이었다. 언급했던 '악수 거부' 사건으로 큰 비난까지 받았기에 더욱 상처가 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동경은 훌훌 털고 일어나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동경은 "경기장 안에서 확실히 자신감을 얻었다. 압박감이 큰 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기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지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에 대해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됐다. 경기장 밖에서는 나 개인뿐 아니라 전체를 대변한다는 마음으로 좀 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축구선수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더 성장한 것 같다"며 웃었다.

울산 현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8강행을 이끈 이동경© News1 윤일지 기자


tr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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