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인터뷰]④ 김혜수 "연기할때만 내가 싫어…송강호·전도연 보며 은퇴 생각도"


                                    

[편집자주]

김혜수/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 뉴스1
배우 김혜수가 '운명'처럼 끌렸던 영화로 돌아왔다.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솔직할 수 있었느냐가 제게 가장 큰 관건"이라고 고백한 김혜수. 그는 한때 악몽을 꿨던 자신의 경험담에 대해 가감없이 털어놓는가 하면, "내가 강인한지 모르겠고 나약할 때가 더 많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고백을 나눈 김혜수와 '내가 죽던 날'에 운명처럼 끌리게 됐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는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 주연 김혜수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이야기다.

김혜수는 '내가 죽던 날'에서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현수 역을 맡았다. 현수는 자신이 믿어왔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순간 한 소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맡아 그의 흔적을 추적해간다. 이후 그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닮은 소녀에게 점점 몰입하게 되고 사건 이면에 감춰진 진실에 다가갈수록 점차 자신의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김혜수는 '국가부도의 날' '타짜' '도둑들' '차이나타운' '굿바이 싱글' 뿐만 아니라 드라마 '하이에나' '시그널' '직장의 신' 등 매 작품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연기력과 흥행력을 인정받았다. '시그널'에 이어 또 한 번 형사 역할에 도전, 사건 이면의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의 집요한 모습은 물론, 평범한 일상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인물의 복잡한 심경을 리얼하게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이하 김혜수와 나눈 일문일답.

-'내가 죽던 날'은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배우들 만날 때마다 '이거지, 그래 할 수 있어,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거 진짜 우리끼리만 아는 걸로 끝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리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살짝 안도했다.

-현장은 어땠나.

▶솔직히 현장이 즐거웠던 건 아닌 것 같다. 현장이 즐겁거나 행복하거나 배우하길 잘했다고 느낀 적도 한번도 없었다. 현장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남들은 잘 모르는 저만의 핸디캡이다. 배우의 자산이라는 건 내 몸, 표정 그런 것들을 드러내는 감정이 자산이다. 이런 걸 꺼내고 변주해가며 인물 빚어내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긴 한데 인간 김혜수는 피폐해지는 것 같다. 배우라는 일은 정말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고 해도해도 잘 따라가기 힘든데 내가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한다. 사실 저는 저를 되게 좋아한다. 자기애가 아니라 저는 그냥 제가 괜찮다. 연기할 때만 제가 싫다. 어쩔 수 없다. 현장에서 누군가와 연기하고 모니터를 본다는 것을 해내야함과 동시에 한계를 증명해야 해서 현장에서 괴롭다. 사람들 때문에 얻는 힘이나 기쁨은 당연히 있다. 작품만 생각하면 현장은 제일 가고 싶지 않은 두려운 공간이다. 매니저들한테 조용히 은퇴하자 이런 말도 한다, 그만하자, 죽겠다 이런 말도 한다. (웃음)

-여성 영화에 대한 기대도 크다. 

▶이 시나리오를 받을 때 쯤 제게 제안이 왔던 작품 60% 이상이 여성 신인감독의 작품이었다. 그중에 저는 이걸 선택했지만 할까말까 했던 작품이 두 작품 더 있었다.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남자 감독이 남성 캐릭터를 당연히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여성이 주체가 되는 캐릭터는 당연히 여성 감독이기 때문에 조금 더 드러낼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다. 말이 당차고 각오가 당찬게 아니라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무시무시하게 당찬 감독을 만났으면 좋겠다. 미리 120%가 준비돼 있어도 현장엔 늘 변수가 있는데 그 변수까지 핸들링하는 게 감독의 역량이다. 열살, 스무살이 저보다 어려도 감독은 감독이다. 직책을 상하로 나누는 게 아니라 감독의 역할인 거다. 영화를 단지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어렵다. 제대로 준비된 감독들이 많아져야 하고 그런 감독들이 제대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있어야 한다. 영화의 장르나 규모를 떠나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다른 것때문에 진가가 덜 드러나거나 과장될 수 있지만. 그런 건 작품 몇 편이면 다 드러난다. 

-김혜수의 연기 원동력은.

▶원동력이 아니라 반성인 것 같다. 겨울에,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TV에서 영화 '밀양'을 방송하고 있었다. 그때가 2017년인가 그랬다. '밀양'이 만들어진지 10년이 됐을 때였다. TV로 보니까 다르더라.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 나오는 배우들이 위대하게 느껴지면서 '연기는 저런 분들이 하셔야지, 여기까지 (나) 수고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만할 생각을 했다. 조용히 작품을 거절하면 자연스럽게 은퇴이지 않나.(웃음) 사실 그 전엔 괴로웠다. '왜 나는 20%가 부족할까' 생각도 했다. 그리고 밖에서 찬바람을 맞고 심플하게 마음이 정리되더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이창동 감독님 송강호 전도연 배우에게 새벽 3시에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저렇게 훌륭한 배우가 있다는 게 눈물이 나더라. 그리고 몇 개월 있다가 우리 대표가 '국가부도의 날' 시나리오를 주더라. 치사하게 또 이거까지만 해야지 했다. '밀양'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 저도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었지만, 모든 인생을 심플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게 처음이어서 자연스럽게 (그 생각을) 따랐다.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확실히 느꼈다. 또 몇 개월 사이에 이 작품까지만 하고 그만둬야겠다 싶었지만 그러다 또 '내가 죽던 날'이라는 작품을 만나게 됐다.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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