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전라도 사람을 제대로 아십니까!

정남구의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편집자주]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책표지

책 제목으로는 상당히 도발적(?)인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의 어조는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했던 그것과 똑 같다. 이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 외쳤던 민비의 어조와는 전혀 결이 다르다. 그건 전라도 사람들도 원치 않겠지만 설마 그런 어조가 통할 날은 요원하다. 다음은 전라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는 한 중년 남자가 '이 땅에서 전라도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란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려 화제가 됐던 글의 주요 대목들이다.

"나는 전라도 출신이다. 전라도는 비속어다. '하와이' '따블빽' '알보칠'(알고 보니 일곱 시-지도상 시계의 전라도 방향) 같은 더 능욕의 은어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서 전라도 사람은 앞으로 걸어도, 뒤로 걸어도, 옆으로 걸어도 전라도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앞서서 걸으면 전라도, 뒤처져 걸어도 전라도다. 살금살금 눈치 보며 중간을 걸어야 하지만 때로는 중간이라고 또 욕을 먹기도 한다.

이명박이 대통령일 때 어떤 인사는 TV에 나와 '기업가, 공직자의 전라도 인재 차별'에 대해 논하는 자리에서 "전라도 사람들은 끼가 많으니 문학, 예술, 스포츠 같은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했다. 그 순간 미국의 흑인과 올림픽 금메달을 강에 던져버렸던 영웅 무하마드 알리가 생각났다. 나는 그 즉시 도끼로 TV를 박살내고, 목젖을 뽑아 그 인사의 목을 감은 후 전라도 출신 프로레슬러 김일의 박치기로 면상을 들이 받아야 했으나 그러면 또 '거봐라. 전라도놈들은 어쩔 수가 없어'란 말을 들을 것이 뻔해 꾹꾹 참아야 했다… …"

그래서 그런가? 선동열, 박지성, 최경주, 김일, 박종팔, 유재두, 김준태, 이청준, 조정래, 한강, 천경자, 남농, 김연수, 남진, 오정해… … 전라도 출신들은 그 인사 말대로 그 분야에 즐비하다. 지금 실명이 거론된 사람들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혹시라도 자신이 전라도 출신이란 것을 숨기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므로.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 어디나 똑 같다. 배 고프면 도둑질 하고 넘치면 적선한다. 출신지역은 개별 인성과 무관하다. 그건 과학이다. 그러므로 단 한 번도 전라도 사람을 겪어보지 않았으면서도 그저 남들에게 들은 말과 편견으로,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싸잡아, 정치/사회/경제적 이권을 위해 없는 사실을 창작해가며 전라도 사람들을 해코지 하는 이들은 보편적 인권과 인격에 독화살을 날리는 민주적 공동체의 독버섯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흥분으로 가득 찬 저 장삼이사의 글과 달리 '전라우도 고부' 출신 신문기자 정남구의 책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의 어조는 매우 나직하고 침착하다. 그는 "농사짓는 사람들은 뻔하다. 그들은 기껏해야 벼를 베는 낫을 다룰 줄 알 뿐이지, 남의 것을 빼앗을 줄 모른다. 그러니 늘 당하고, 울뿐이다. 하지만, 빼앗는 자들은 상대를 '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양심을 달래고 편한 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 전라도에는 빼앗아 갈 것이 너무 많았다. 전라도가 폄훼를 당한 진짜 이유가 이것이다. 이 책은 전라도 천년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독자들이 '전라도 사람들도 우리랑 똑같구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기쁠 것 같다"고도 했다.

빼앗기고, 슬퍼하고, 혁명을 꿈꾸고, 나라를 지키고, 땅을 지키며, 새벽을 열어왔던 전라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덧셈도 뺄셈도 없이 차분하게 기록됐다. 기자는 이토록 방대한 참고문헌들을 언제 다 읽고서 이 책을 썼을까! 전라도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세우도록, 전라도를 잘 모르는 사람은 제대로 알도록, 전라도가 싫은 사람은 행여 있을 잘못된 편견을 깨도록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는 외침에 귀 기울여 보시길 권해본다. 덧붙여 후대의 조작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호남차별 논리의 텃밭 격인 고려 왕건의 '훈요10조 중 제 8조'는 이제 역사의 쓰레기통에 공식 폐기할 것을 정중히 제안한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 정남구 지음 / 라의눈 펴냄 / 2만 원

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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