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현의 방토크②] 신사동호랭이 "예명, 김건모 형과 게임할 때 쓴 닉네임"


                                    

[편집자주]

성동구 바나나컬쳐엔터테인먼트, 신사동 호랭이 대표 프로듀서 인터뷰. © News1 권현진 기자

※K팝을 선도하고 이끄는 대표 주자들의 '방'을 직접 찾아가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작업실 및 녹음실, 연습실 등 K팝이 탄생하는 공간에서 이뤄진 한 걸음 더 들어간 토크를 전해드립니다.

1983년생인 신사동호랭이(35)는 올해 저작권협회 곡 등록기준 14년차다. 20살 초반부터 곡을 내기 시작한 그는 젊은 히트 작곡가다.

신사동호랭이는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특정 악기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던 영재도 아니다. 그러나 작곡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 후 고향이었던 전남 광양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그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자취를 하며 대형 녹음실에서 허드렛일부터 했던 그의 열정은 지금의 명성을 만들었다.

신사동호랭이의 대표 히트곡은 셀 수 없이 많다. 마이티마우스의 '에너지'를 시작으로 포미닛의 '핫이슈' 티아라의 '보핍보핍' '러비더비' 비스트의 '쇼크' '숨' '뷰티풀' 현아의 '버블팝' 트러블메이커의 '트러블메이커' 에이핑크의 '노노노''LUV' EXID의 '위아래' '아예'를 거쳐 올해는 모모랜드의 '뿜뿜'까지 단 한 해도 히트곡이 나오지 않은 시기가 없을 정도.



신사동호랭이는 자신의 성공이 오롯이 자신의 노력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운이 좋게도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며 손사래쳤다. 최근 찾은 신사동호랭이의 작업실은 하루의 대부분을 머무는 그의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모니터 위에 걸린 호랑이 인형이 시선을 끌었다. 이곳에서 그의 곡 작업 스타일과 음악 인생을 들어봤다.
2018.5.31. 성동구 바나나컬쳐엔터테인먼트, 신사동 호랭이 대표 프로듀서 인터뷰. © News1 권현진 기자

[황미현의 방토크①] 신사동호랭이 "작업스타일 피곤…정보 수집에 오래 공들여"에서 이어집니다.

-고교시절 가수지망생이었던데.

"(크게 웃으며) 정말 어렸을 때 뭘 잘 모를 때 가수를 꿈꿨다. 그때 무대에서 서는 것이 좋았다. 고등학교에서 항상 행사를 할 때 내가 MC를 도맡았다. 학교 축제를 기획하는 등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중학교 때부터 밴드부를 했다. 중학교 때 장기자랑 같은 것을 할 때 여러 음악을 믹스하지 않나. 그때 카세트 더블 테크로 했다. 그게 너무 재미있더라. 내가 믹스하고 편집한 음악 구성이 환호를 받을 때 오는 희열감이 있더라. 당시 천리안 등 PC통신으로 컴퓨터 음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음악을 편집하게 됐다."

-이십대 초반에 더 자두의 '남과 여'로 작곡가 데뷔했다.

"신사동호랭이라는 이름으로는 '남과 여'가 최초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고3때 처음으로 내가 만든 노래가 나왔었다. 트로트 앨범 편곡 일이었다."
2018.5.31. 성동구 바나나컬쳐엔터테인먼트, 신사동 호랭이 대표 프로듀서 인터뷰. © News1 권현진 기자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음악으로 수익을 얻은 것 같다.

"고2때 나는 도저히 전남 광양에서 이 꿈을 펼치기 애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학교 그만두는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만두지는 말고 전학을 가라고 권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길로 혼자 서울로 와서 자취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흔쾌히 서울행을 찬성했나.

"학창 시절에 사고도 많이 쳤지만 난 늘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하는 아들이었다. 오늘 뭘 했는지, 어떤 잘못된 일을 했는지까지 이야기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충동적인 결정이 아님을 알아주셨다."

-작곡가가 된 계기가 있었나.

"예전에는 소속사마다 녹음실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형 전문 녹음실들이 몇 군데에 있었다. 그곳에 제작자도 많이 왔기 때문에 열심히 찾아다녔다. 청소라도 시켜달라고 했다. 자주 왔다갔다 하니까 제작자들이 심부름도 시키면서 조금씩 친분을 쌓았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역량에 대해 어필했다. 그랬더니 제작자분들이 과제물도 던져주고 하더라. 그때가 고3이다. 그러다 PC통신을 통해 힙합 크루 형들을 알게됐고 점차 활동 반경을 넓혀나갔다."

"단계를 나누면 절대 안되지만, 정말 밑에서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부터 한 단계씩 직접 찾아다녔다."
2018.5.31. 성동구 바나나컬쳐엔터테인먼트, 신사동 호랭이 대표 프로듀서 인터뷰. © News1 권현진 기자

-신사동호랭이라는 예명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그때가 22살일 때다. 왁스, 자두, 김건모 등이 소속되어 있던 회사로 찾아갔다. 허드렛일 할 거 시켜달라고 했다. 그때 거기서 8개월 정도는 정말 일만 했다. 청소 등 잡일을 다 했다. 심부름 정도를 하는 것이었지만 엔터테인먼트가 이런식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조금씩 음악을 하면서 수록곡을 넣게 됐다."

"당시 그 회사에서 건모형을 만났는데 지금 모습과 똑같다. 게임을 진짜 좋아했다. PC로 게임할 때 아이디를 만들지 않나. 건모 형이 길드를 만들어서 다 하게끔 했다. 그때 건모형 아이디가 양재동빡빡이였는데 나도 건모형이랑 비슷하게 신사동호랭이라고 지었다. 이후 내 예명도 신사동호랭이가 됐다."

[황미현의 방토크③] 신사동호랭이 "모모랜드 신곡, '하트시그널2' 임현주에 영감"으로 이어집니다.

hmh1@

많이 본 뉴스

  1. '재테크 여왕' 전원주 "가족들, 나를 돈으로만 보는 것 같아"
  2. '네 번 결혼' 박영규 "아내, 25살 어려…장인·장모는 내 또래"
  3. '비계 흑돼지집' 전직원 "손님에 상한 고기 주고, 리뷰 조작"
  4. 두발을 좌석 위에 쑥…"달리는 내내 신경" 버스 기사 한숨
  5. 프리지아, 핫팬츠 입고 아찔 각선미 자랑…인형 같은 비주얼
  6. 미국 공연 때 콘돔 뿌린 비비 "야하고 다정한 게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