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독립구단 연천 미라클, 최초 독립리그 '기적' 꿈꾼다
-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편집자주]
"한국에서도 독립리그가 만들어지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지난해 9월,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가 해체를 선언했다. 야구 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고양 원더스가 사라지면서, 한국 독립야구의 불씨는 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또 하나의 독립 야구단이 생겼다. 스포츠비즈니스 전문 기업 ㈜인터내셔널스포츠그룹(이하 ISG)이 독립구단 '미라클'을 창단한 것이다. 이어 경기도 연천군과 타이틀스폰서 계약을 맺으면서 '연천 미라클'이 탄생했다.
연천 미라클은 올 3월부터 8개월동안 28명의 선수로 한 시즌을 치렀다. 경기는 프로야구 육성군(3군)팀,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등 대학 팀들과 펼쳤다. 정규 편성되지 않고 연습경기 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일정은 들쑥날쑥했다. 그래도 4월24일 고양 다이노스(NC 2군)에게 창단 첫승을 거두는 등 첫해 22경기에서 7승2무13패(0.350)로 선전했다.
'프로진출'이라는 성과도 있었다. 지난 8월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에서 재미교포 투수 이케빈(23)이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시즌이 끝난 후 이강혁(24)과 김원석(26)이 각각 NC와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됐다. 선수들에게는 '꿈'과도 같던 프로진출이고, 연천 미라클에게도 창단 첫 해 거둔 의미있는 성과였다.
호서대학교 교수이자 ISG 대표이사로 연천 미라클의 창단을 주도한 박정근(60) 구단주를 만났다. 박 구단주는 "올해는 독립구단이 성공할 수 있는 지렛대를 만든 한 해였다. 내년 시즌 준비를 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지원자가 끊이지 않는다"며 밝게 웃었다.
'독립야구단'은 박 구단주가 애초에 구상한 그림은 아니었다. 재직 중인 호서대학교에 '아카데미'를 표방하는 야구팀을 만들어 학생들의 지도와 더불어 선수 출신 야구선수들의 꿈을 이뤄준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지원자를 받아보니 대부분이 선수 경험이 있는 야구선수들이었다. 박 구단주는 "전부 다 프로 진출을 희망하는 선수들이더라. 이렇게 되다보니 아예 독립 야구단으로 방향을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천 미라클은 그렇게 탄생했다. 고양 원더스 해체 이후 갈 곳을 잃은 선수들과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 이후 프로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수, 프로에 입단했지만 방출의 설움을 겪은 선수 등 28명이 모였다.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녹록지는 않았다. 역시나 재정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연천군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선수들에게 월 70만원의 회비를 받아야 했다. 이 돈의 대부분은 식비와 숙소비로 사용됐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구단을 운영한다면서 선수들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박 구단주는 "우리를 고양 원더스와 비교할 수는 없다. 원더스는 한 해 운영비로 40억원 이상 들어갔지만 우리는 10분의 1도 안 된다"면서 "모든 지출내역은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인식 감독의 월급은 고등학교 감독 때 받던 것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된다. 선수들도 김밥을 먹고 운동하고, 원정경기에 나설 때는 김 감독이 직접 선수단 버스를 운전한다"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주변의 온정을 느낀 첫 시즌이기도 했다. 알음알음 연천 미라클의 사정을 아는 지인들이 적게나마 후원금을 쾌척했고, 기사 등을 통해 알게된 일반인들의 소액 후원도 이어졌다.
박 구단주는 "후원금을 낸 일반인 중에는 첫 봉급을 받아 100만원을 전달한 분도 계셨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는데, 한국 야구를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꼭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2016년 2년차를 맞는 미라클은 한 걸음 더 나아갈 꿈을 꾸고 있다. 올해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경기를 유치해 실전 경험을 쌓고, 선수들이 스카우터들에게 노출될 기회를 늘리겠다는 것이 1차 목표다.
박 구단주는 "어쨌든 선수들은 프로 진출을 원하고 있다. 그러려면 프로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실력을 키워야 하고 실력에 대해 입소문도 나야하지 않겠나"면서 "프로팀의 입장에서도 플러스요인이다. 올해 우리에게 졌던 프로팀(육성군)은 이후 큰 자극을 받아 죽기살기로 하더라"고 말했다.
올해 한 번도 활용하지 못했던 홈구장 연천 베이스볼 파크도 내년에는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대학교 팀들의 경우 연습경기를 할 때 연천으로 불러들이고, 프로팀들과도 공조를 통해 홈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연천' 미라클인만큼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얻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연천 미라클 뿐 아니라 다른 독립구단도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대구 지역에 위치한 사회인 야구 연합팀이 내년 연천 미라클과 정기적으로 경기를 치른다. 이 팀 역시 연천 미라클과 마찬가지로 선수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박 구단주는 "이 팀과 함께 또 다른 팀과도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우리팀과 대구팀 둘 뿐이지만, 조금씩은 발전할 기미를 보이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야구 최초의 독립리그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박 구단주는 "매년 800명이 야구를 할 곳이 없어서 실업자가 된다. 이런 선수들이 마지막으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야구단 4팀만 있으면 독자적인 리그를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토양을 마련해놓으면 점점 재정적인 부분도 나아질 것이고, 그러다보면 선수들에게 봉급도 주는 '프로 독립야구팀'이 되지 않겠나"고 기대했다.
더 큰 꿈도 있었다. 박 구단주는 "독립리그가 활성화되고 선수들이 많아진다면, 언젠가는 독립리그 출신의 메이저리거가 나오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팀명처럼 그런 '기적'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starburyny@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