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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쿨파]시진핑 개헌, 위안스카이가 금지어 왜?

시진핑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위안스카이를 보라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2018-02-28 07:30 송고 | 2018-02-28 07:35 최종수정
시진핑 주석이 국가 주석 3연임 금지조항을 폐지하는 방법으로 영구집권을 시도하자 중국 온라인상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에 따라 27일 현재 중국 당국이 검색 금지어로 분류한 단어는 등기(登基), 만세(萬歲), 이민(移民), 원세개(袁世凱) 등이다.
웨이보 갈무리
웨이보 갈무리

등기는 황제로 등극한다는 뜻이다. 만세는 황제에게만 붙이는 구호다. 봉건시대 황제 앞에서 “만세 만세 만만세”라고 외치며 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왕에게는 “천세 천세 천천세”라고 했다. 중국의 누리꾼들이 시 주석이 영구집권을 추진한다는 기사에 조롱으로 “만세 만세 만만세”라는 댓글을 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민은 중국을 떠나겠다는 누리꾼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원세개가 누구이기에 금지어가 됐을까?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중국 발음으로는 위안스카이다. 그는 조선 주재 총리교섭통상대신으로 서울에 주재하며 흥선대원군을 납치하는 등 조선의 내정에 깊숙이 간여한 인물이다. 

위안스카이 - 바이두 갈무리
위안스카이 - 바이두 갈무리

그는 청일전쟁 전후로 귀국, 청나라 군대의 현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 당시 그는 향후 자신의 권력기반이 되는 ‘북양군벌’을 현대화했다. 그는 ‘북양대신’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무력을 바탕으로 청나라의 실권을 쥐었으나 1911년 손문과 대타협, 2000년간 지속된 제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열었다. 신해혁명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어 1912년 4월 손문 임시 대총통으로부터 실권을 위임받아 대총통에 등극했다.

대총통에 오른 그는 1916년 1월 중화제국을 수립하고 스스로 황위에 올랐다. 그러나 전국에서 반원(反袁)운동이 일어나 3월 퇴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재임 기간은 80여일에 불과했다.

위안스카이가 황제 즉위를 기념해 천단에서 천제를 지내고 있는 모습 - 바이두 갈무리
위안스카이가 황제 즉위를 기념해 천단에서 천제를 지내고 있는 모습 - 바이두 갈무리

시진핑과 위안스카이의 공통점은 당대 최고 권력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공화정에서 제정을 추구한 점이다. 위안스카이는 중화민국이라는 공화정을 뒤엎고 중화제국이라는 제정을 수립했다.

시진핑도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공화정을 뒤엎고 사실상의 제정을 열려 하고 있다. 중국 국가 주석이 황제와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다. 임기제라는 점이다. 황제는 죽을 때까지 하지만 주석은 2연임으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시 주석이 영구집권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상의 황제가 되겠다는 뜻이다.

위안스카이는 80여일간 황제노릇을 했다. 과연 시주석은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그는 사실상의 황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개헌은 전인대(전국인민대표자회의) 정족수 3분의 2를 획득하면 된다. 전인대는 거수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민의 동의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는 공산당을 높이 평가하는 인민들이 많다. 대부분 인민들이 공산당 때문에 중국이 G-2 반열에 올랐다며 공산당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러나 경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인권 등 민주주의의 가치에 눈을 뜬 이들도 늘고 있다. 시 주석이 영구집권을 시도하자 SNS 등 온라인에서 이를 반대하는 의견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시 주석이 사실상의 황제에 오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00년 전, 위안스카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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