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7000명의 조선인…'우키시마호 폭발' 사건은?

'우키시마호' 조선인 승선자 명부 19건 입수…사고 79년만

 강제징용자가 우키시마호에 승선하는 장면. (독립기념관)
강제징용자가 우키시마호에 승선하는 장면. (독립기념관)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우리 정부가 조선인 수천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우키시마호의 승선자 명부 일부를 사건 발생 79년 만에 입수했다. '일제가 안긴 마지막 비극'으로도 알려진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키시마호는 지난 1945년 일본 아오모리현 군사시설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승선한 귀국선으로 지난 1945년 8월 21일 출항해 부산에 도착 예정이었지만 원인 미상의 폭발과 함께 침몰했다.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미국에 항복하고 조선인 노동자들의 폭동을 우려한 탓인지 다급히 강제징용자들을 강제 송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사건의 원인 등을 둘러싼 의문은 79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부산항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는 돌연 방향을 틀어 미군의 기뢰들이 가득히 매설된 마이즈루항으로 입항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우키시마호는 결국 해안에서 300m쯤 떨어진 지점에서 침몰했다.

이에 일각에선 우키시마호 사건이 일제 패망 이후 선박에 함께 탑승한 일본 장교들에 의한 계획적 범죄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부산에 도착한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떠벌릴지 모른다는 우려로 일본 측이 선박을 고의로 수장시켰다는 주장이다. 반면 일본 측은 우키시마호의 폭발 원인을 미군 기뢰로 언급하고 있다.

우키시마호에 승선한 탑승자 수와 사망자 규모에 대한 주장도 엇갈린다. 조선인 생환자와 유족들은 우키시마호 폭침 희생자가 7000명에 이른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일본 정부는 조선인 송환자가 3725명이고 사망자는 524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다 2005년 우리 정부는 진상조사를 벌였지만 일본 정부의 발표가 부정확하다는 사실 외에는 뚜렷한 폭발 원인이나 사망자 수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수사를 중단했다.

한편 일본 후생노동성은 내부 조사 및 검토를 마친 자료 19건을 5일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우리 외교부에 전달했다. 일본 측은 나머지 자료에 대해서는 내부 절차를 마치고 우리 정부에 추가로 공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공개한 우키시마호의 승선자 명부 일부. (외교부 제공)
일본 후생노동성이 공개한 우키시마호의 승선자 명부 일부. (외교부 제공)

yoong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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