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식장 눈물바다 만든 '8세 창현군' 사연은?

5월18일 집 나간 뒤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않아
부친 이귀복씨 "이제야 행방불명자에 관심 가져"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이창현군(당시 8세)의 안타까운 사연이 18일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재연 돼 이 군의 아버지 이귀복씨(가운데)의 손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잡아주고 있다. 2018.5.18/뉴스1 ⓒ News1 남성진 기자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이창현군(당시 8세)의 안타까운 사연이 18일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재연 돼 이 군의 아버지 이귀복씨(가운데)의 손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잡아주고 있다. 2018.5.18/뉴스1 ⓒ News1 남성진 기자

(광주=뉴스1) 전원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이창현군(당시 8세)의 사연이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안타까움과 함께 감동을 선사하면서 국민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기념식에서는 5·18 당시 행방불명된 창현군의 사연이 시네라마 형식으로 재연됐다.

창현군은 1980년 5월18일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당시 건축업자였던 창현군의 아버지 이귀복씨는 건축공사 때문에 완도에 있었다.

이씨는 5·18로 인해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초등학생인 창현군이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들었다.

하지만 광주가 봉쇄되면서 이씨는 아들을 찾으러 나서지 못했다. 이씨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도 창현군을 찾기 위해 나서려했지만 계엄군 때문에 밖을 나가지 못했다.

이후 이씨는 생업을 팽개치고 아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이씨의 부인은 생활고에 집을 떠났다.

이씨는 90년대 초 누가 찍었는지 모를 사진에 총에 맞아 숨진 아들의 얼굴을 본 뒤 시신을 찾기 위해서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시신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다니는 등 10년이 넘게 돌아다녔지만 이씨는 아들을 찾지 못했다.

긴 세월이 지난 1994년 창현군은 행불자로 등록됐다.

이씨는 17일 열린 제38주년 5·18기념식이 끝난 뒤 창현군의 묘역 앞에서 "죽은 아들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아들 찾는 것을 서서히 포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방불명자들에 대한 증거를 찾아와야 행불자로 인정됐다"며 "오늘 공연을 보니 이제야 행방불명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ju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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