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터치] '자금모으고 인력줄이고…' 삼성의 시그널

(서울=뉴스1)|최명용 기자 | 입력 2014-06-18 23:19:36

 

 

삼성전자 서초사옥1 © News1

 

삼성그룹이 '마하의 속도'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 승계를 위한 움직임이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삼성의 구조조정 움직임과 매우 흡사하다는 분석도 유력하게 제기돼 눈길을 끈다.

 

삼성그룹은 IMF 당시 대대적으로 경비를 절감하고 인력을 줄였다. 주요 자산을 해외로 넘기고 유휴 부동산을 매각했고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이번에도 삼성은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고 주요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 계열사간 인수합병도 여윳돈이 있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를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삼성SDS, 삼성에버랜드 등 대형 IPO(기업공개)도 자금을 마련하는 수단 중 하나이다. 다만 다른 점은 1997년 당시엔 외국으로부터 자본을 유치했지만 지금은 여윳돈이 있는 계열사나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는 점이다.

 

삼성의 구조조정은 선제적으로 '위험'에 대비하려는 준비일 수 있다. 삼성그룹이 경비 절감을 주문하고 인력 감축을 시작한지 1년 뒤에 한국은 IMF외환위기를 겪은 바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장도 된다.

 

◇삼성그룹 1997년에도 대규모 구조조정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6년 멕시코 티후아나 전자복합단지를 방문하던 중에 긴급 사장단 회의를 갖고 "반도체가 조금 팔려 이익이 난다니까 그저 자만에 빠져있다"고 강도 높게 질책했다. 삼성은 1996년 17%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이 회장은 장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며 경비 절감을 지시했다.

 

삼성은 그룹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간 원가 및 경비를 30% 줄이는 '경비 330운동'을 추진했다. 한계사업을 정리하고 차세대 사업에 집중하고 경영합리화와 사업 재구축에 나섰다. 삼성은 당시 이익이 나지 않는 이천전기와 같은 한계기업을 모두 내놓았다. 유휴 부동산을 매각하고 복리후생 및 저부가 업무의 아웃소싱과 함께 인력 감축도 논의하기 시작했다.

 

삼성이 비상 경영을 가동한 뒤 1년 만에 한국은 IMF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이후 삼성은 본격적으로 계열사 및 자산 매각에 나섰다.

 

반도체 부천 사업장을 미국 페어차일드에 4억5500만달러에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휴렛패커드 지분을 휴렛패커드에 매각하고 삼성GE의료기기를 매각했다. 삼성중공업은 발전설비, 지게차 사업부, 중장비 사업부 등을 스웨덴 볼보와 미국 클라크 등에 각각 매각했으며 오디오 사업과 냉장고 사업 등도 조직을 슬림화했다.


동시 다발적으로 외자유치에도 나서기도 했다. 외자 유치는 환율 방어를 위한 정부 정책에 따른 측면도 있지만 기술 제휴와 함께 대규모 외자를 유치하는 전략을 폈다.

 

인텔로부터 반도체 투자 재원으로 1억 달러를 조달하고 애플과 델로부터 LCD 공장 투자를 위해 3억 달러를 조달했다. 삼성종합화학은 이때부터 자금 유치를 추진해 2002년 프랑스 토털(당시 아토피나)로부터 7억5000만달러를 조달, 합작법인을 세운다.

 

인력 구조조정도 진행했다. 삼성전자는 1998년 1000명의 명예퇴직을 접수한다. 계열사별로 명예퇴직을 비롯해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복리후생도 줄여 주재원 수당 10% 삭감, 임원 연봉 삭감, 직원 연봉 동결 및 연봉제 확대 실시 등 경비 절감도 나섰다. 삼성은 96년말 국내외를 포함해 8만5000명에 달하던 인력을 99년말 5만4000명으로 줄였다.

 

© News1

 

◇2013~14년 사업재편도 구조조정 일환

 

삼성그룹은 지난해부터 계열사간 지분정리 및 사업부 양수도, 인수합병 등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삼성의 구조조정은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 승계로 해석되지만 자금의 이동만 따져보면 17년전 구조조정과 매우 흡사하다.

 

제일모직은 지난해 12월 에버랜드에 패션사업부를 1조원에 매각했다. 이 결정으로 제일모직은 1조원의 현금을 확보한 셈이다. 제일모직은 다시 삼성SDI에 흡수합병키로 했다.

 

이달들어 삼성전자는 삼성SDI와 제일모직이 보유한 자사주를 각각 인수했다. 삼성SDI에 3441억원, 제일모직에 143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합병한 삼성SDI와 제일모직은 종전에 비해 더 안정적 재무구조를 갖게 된다.

 

삼성전기는 삼성종합화학이 보유한 MLCC사업부를 양수했고 에버랜드는 에스원에 건물관리사업부를 넘겼다. 삼성전자는 TSST 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유휴 자산을 매각하는 모습도 보였다. 모두 현금 거래를 통해 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도 자금여유가 있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를 더하는 형식이다.

 

삼성계열사간 지분 거래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말 삼성전기, 물산, 중공업 등이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을 2641억원에 매입했다. 또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도 인수했다. 주요 계열사들은 삼성생명 지분을 시장에 내놓았고 삼성생명은 자사주를 매입해 이중 일부를 되샀다.

 

삼성전자는 삼성SDI와 제일모직, 삼성카드 등이 보유한 자사주 및 삼성SDI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다. 지난해말부터 올해까지 삼성계열사간 거래된 굵직한 지분 거래만 약 1조4294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가 상장에 성공하면 각각 수조원의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하게 된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도 1997년과 유사하다. 삼성생명이 조직 통폐합과 함께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고 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들도 대규모 인력 감축을 했다. 삼성중공업도 그룹 감사 결과에 따라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 News1

 

◇IMF외환위기와 닮은꼴·다른꼴

 

1997년 삼성의 구조조정과 2013년 삼성의 구조조정은 자금을 조달하고 경비와 인력을 줄인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계열사간 지분을 넘기고 해외로 자산을 매각하는 모습도 판박이다.

 

다른 점은 1997년 당시 삼성은 IMF 외환위기를 겪는 와중에 지분매각에 나서 제값을 받지못했다는 점이다. 또 국내에 관련 자산을 인수할 자금 주체가 없어 해외에서 주로 자금을 조달했다는 점도 다르다. 그러나 2013년 구조조정은 선제적 구조조정에 해당한다. 그룹 내부나 국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므로 비교적 제값을 받고 있다.

 

또 한가지 1997년과 2013년이 유사한 점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규제 환경이다. 1997년 당시에도 금융실명제를 비롯해 문민정부의 각종 규제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지난해와 올해도 노동 이슈 및 환경 이슈 등과 맞물려 다양한 규제가 기업 활동을 옥죄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구조조정은 또다른 위기를 예감한 선제적 조치일 가능성도 있다"며 "한국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 및 규제 완화, 기업 환경 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