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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맥] 손흥민이 가르쳐주는 존중받고 사랑받는 법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21.01.06 12:58:32 송고
토트넘 동료들로부터 사랑과 존중을 받고 있는 손흥민. © AFP=뉴스1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매머드 클럽에 입단하면서 한국인 첫 번째 프리미어리거로 등극한 것이 2005년 여름의 일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여름의 끝자락, 손흥민이 독일 분데스리가를 발판 삼아 토트넘에 입단하면서 13번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제법 많은 선수들이 그 사이 축구 종가의 땅을 밟았으나 박지성 외에 '성공'이라 말할 수 있는 케이스는 거의 없었다. 모두들 열심히 했고 이영표(토트넘)와 기성용(스완지, 뉴캐슬) 등 나름 존재감을 보인 선수도 있으나 대부분 한계가 있었다.

그만큼 벽은 높았다. 여기서 '벽'은 중의적 의미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포함해 판 자체의 레벨이 높기도 했고, 축구계에서는 약체인 한국에서 온 선수를 향한 선입견도 성장을 가로막았다.

외국인 선수(용병) 신분으로 팀에 가세한 선수는 빠른 시간 안에 동료들의 '인정'을 받아야했는데 그 타이밍을 놓치면 무리에서 섬처럼 밀려나야한다. 과거 스페인 무대에 도전했던 이천수는 "라리가 진출 후 초반 일정에서 골대를 때린 슈팅이 있었다. 그것이 골로만 연결됐어도 이후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시선이 차갑게 바뀌는 정글이다.

손흥민도 처음은 다르지 않았다. 큰 기대를 받고 토트넘에 입단한 2015-16시즌, 손흥민은 EPL 28경기에서 고작 4골을 넣었다. 각종 대회를 통틀어 무려 40경기 출전의 기회를 받았으나 득점은 8골에 불과했다. 넣어주길 원해 모셔온 공격수가 넣지 못하자 그를 향하는 패스는 점점 줄었다. 공을 달라고 손을 번쩍번쩍 들다가 다른 선수의 공격 전개로 끝나 허탈해 하던 손흥민의 모습, 기억하는 팬들이 있을 것이다.

그랬던 손흥민이 5년 만에 확 달라졌다. 이젠 팀의 간판스타이자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의 캡틴인 해리 케인도 공을 잡으면 손흥민을 찾을 정도다. '일부러 찾는다'는 표현은 과장됐을 수 있으나 적어도 자신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손흥민을 발견하면 믿고 맡기는 수준까지는 발전했다. 다른 선수들도 이제 케인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손흥민 자신이 아니면 짐작도 쉽지 않다. 토트넘 입단 초창기 '먹튀' 소리를 들으며 바로 그 시즌 '방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수모까지 겪었던 때를 생각하면 행복한 시절이다.

아시아의 축구 선수가 '넘사벽'으로 여겨졌던 EPL 무대를 쥐락펴락 하고 있다. 손흥민이 진짜 훌륭한 것은, 동료와 지도자의 두둑한 사랑을 받고 있는 지금도 불행했던 시절과 똑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팀을 위해 헌신하는 손흥민 (토트넘 SNS) © 뉴스1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손흥민은 6일 오전 끝난 브렌트포드와의 2020-21시즌 잉글랜드 풋볼리그컵 준결승에서도 득점포를 가동, 2-0 승리의 수훈갑이 됐다. 유럽무대 진출 후 통산 150번째 득점이라는 이정표를 세우면서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으니 더 값졌다.

이날 손흥민은 여러모로 손흥민다웠다. 생각보다 강하게 나온 브렌트포드의 공세를 막기 위해 상당 시간을 마치 측면 수비수처럼 뛰어다녔다. 영국 매체 풋볼런던은 "전반전 손흥민은 어느 곳에서나 보였고 박스 안에서는 몸을 던져 슈팅을 막아냈다"며 득점 장면보다 먼저 헌신적인 플레이를 짚었다.

브렌트포드의 반격이 매섭던 전반 37분, 손흥민은 다 실바가 강력한 오른발 슈팅을 때리자 육탄방어를 펼쳤다. 팀의 주득점원이 박스 안까지 들어와 수비하는 것도 흔치 않은데 몸까지 내던지니 이상하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잉글랜드 축구계의 전설 게리 리네커는 자신의 SNS에 "손흥민은, 미친 레프트백이네"라고 적으며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자기 몸 귀한 줄 모르던 손흥민은 후반 25분 주어진 득점찬스에서 깔끔하게 추가골을 넣으면서 본업에서도 몫을 톡톡히 해냈다. BBC의 축구전문가 클린튼 모리슨이 "이 경기의 분수령은 손흥민이 2-0을 만든 순간이다. 그것이 차이를 만들었다. 손흥민은 월드클래스"라고 칭찬한 순간이다.

어느덧 시즌 16호골이다. 축구 전문 통계업체 옵타에 따르면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선수들 중 손흥민보다 많은 득점을 기록한 이는 케인(17골)뿐이다. 손흥민과 모하메드 살라가 그 다음이다. 이쯤 골을 많이 넣는데 손흥민처럼 수비가담에 적극적인 공격수도 없다.

기량은 점점 느는데 여전히 헌신적이다. 최고의 클럽 레알 마드리드가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추정 이적료로 1200억원이 책정되는 등 등급이 크게 뛰어올랐는데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니 여기저기서 '쏘니(손흥민 애칭)'를 외치고 있다.

이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왜 손흥민은 항상 자신보다 팀을 우선시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관련해 모리뉴 감독은 "그게 그 선수의 인성이고, 그것이 쏘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라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존중받고 인정받는 법. 어렵지만 답이 전혀 없지는 않다. 아주 잘하는데 겸손하고 이미 남들보다 뛰어난데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에 게으름 없으며 자신이 챙길 것보다는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손흥민이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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