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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맥] '잘 자란 연어'들이 다시 K리그로 오려할까요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20.02.12 06:15:00 송고
기성용의 K리그 복귀가 무산됐다. 낮은 자세로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K리그는 넉넉하게 품어주지 못했다. © 뉴스1

지난 2011년 연말의 일이다. 러시아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다음 행선지를 저울질하던 김남일(현 성남FC 감독)은 고민이 많았다. 이듬해면 35세가 되는 적잖은 나이였고 현역 막바지를 생각해야할 때라 국내 복귀에 대한 안팎의 조언이 많았는데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김남일은 "다시 해외클럽 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냥 밖에서 은퇴하려한다"고 속내를 전했다. 돈이 목적은 아니었다. 어린 아들의 성장도 보고 싶었고, 가족들과 또 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으나 쉽지 않았다. 두려웠던 탓이다.

김남일은 "나이도 있고 전성기도 다 지났다.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은데 혹시 국내 팬들 앞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는 심경을 고백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2012시즌 인천유나이티드로 돌아왔고 이후 최강 전북현대까지 이적하는 등 유종의 미를 거두긴 했으나 터프가이 김남일도 'K리그 유턴'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화려한 유럽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이 K리그로 돌아오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는 김남일이 겪은 '두려움'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게 당사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모두들 떠날 때는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라며 훗날을 기약하지만 정작 실천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말은 쉬웠으나 몸으로 옮기려면 머리가 복잡하다.

빛나던 커리어에 흙이 묻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감수하고 국내 복귀를 결심했던 한 선수의 컴백이 무산됐다. 지난 2009년 스코틀랜드 셀틱에 진출한 뒤 10년 동안 유럽에서 한국축구의 위상을 높였던 기성용이 현역 막바지를 K리그에서 고국의 팬들과 함께 보내려 이런저런 노력을 했으나 다시 행선지를 바다 밖으로 돌렸다.

기성용의 에이전트사인 'C2글로벌'은 11일 기성용의 향후 거취와 관련, "FC서울과 전북현대 양 구단에 2020년 2월10일부로 협상 종료를 고지했다"며 "기성용 선수가 올 시즌 K리그로 복귀하는 일은 매우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현재 선수 의사에 따라 국외리그 다수의 구단과 협상을 진행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지난 일주일 간 국내 축구계를 뜨겁게 달궜던 기성용의 K리그 유턴 타진은 '없던 일'이 됐다. 수많은 보도를 통해 알려졌기에 과정은 생략한다.

열쇠는 FC서울이 쥐고 있었다. 적합한 대우를 통해 기성용을 서울로 데려오든 위약금(혹은 보상금)을 조정해 다른 팀으로 보내든 해결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게 아니다. 문제는 의지와 방법이었는데 현명한 길을 찾지 못한 모양새다. '의지'와 '방법'의 수위는 알 수 없다. FC서울은 "우리도 할만큼 했다"는 입장이고 C2글로벌 측은 "여기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함구하고 있다.

기성용의 복귀는 K리그 흥행에 호재로 작용할 공산이 컸다. 그런데 무산됐다. 향후 후배들의 결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선례가 남겨졌다. © 뉴스1

기성용은, K리그로 돌아온다면 응당 FC서울이었다. 당연히 친정으로의 복귀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첫 만남부터 꼬였다. 반겨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FC서울의 예상치 못한 자세에 기성용 마음에 금이 갔다는 게 중론이다. 여기저기서 '돈'이 결렬의 핵심은 아니라 말하는 이유다.

냉정히 접근할 때 돈도 문제였다. 취재에 따르면, 서울이 기성용 쪽에 처음 제시한 연봉(추가협상으로 높였다는 금액까지도 대단치는 않으나)은 허탈한 수준이었다. 사실 기성용은 그것까지도 감수할 용의가 있었다. 기성용을 더 아프게 한 것은 '진정성'이었다.

한 축구 관계자는 "'마음을 다쳤다'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프로세계의 협상에 개입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판단에 맡기겠다"면서도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K리그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던 기성용이 '아예 접자'로 입장을 바꾼 것은 분명 서울 측 대응에 답이 있다"고 전했다.

기성용의 측근은 "어느 순간이 지나면서는 서울이 전북만큼 금액을 맞춰져도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고 말한 뒤 "(서울과 여의치 않게 된 이후)왜 전북 쪽에 다가갔겠는가. 그만큼 K리그 복귀에 대한 의지가 컸다는 방증"이라고 귀띔했다.

뉴캐슬과 결별 전부터 오라는 팀들이 있었던 기성용은 그것을 마다하고 국내 복귀를 결심했다. "이제 백수다. 새 팀을 알아봐야한다"던 것이 최근 기성용 측 입장이다. 올해로 서른하나. 선수로서는 적잖으나 한명의 인간으로는 아직 젊은이에 가까운 이가 개인의 부귀영화보다 판의 발전을 위해 낮은 자세로 왔는데 결과적으로 품어주지 못한 꼴이 됐다.

K리그를 발판 삼아 유럽으로 진출한 이들이 꽤 많이 늘어났다. 기성용의 오랜 친구 이청용(서울→현 보훔)을 비롯해 지동원(전남→현 마인츠05), 황의조(성남→현 보르도), 이재성(전북→현 홀슈타인 킬), 권창훈(수원→현 프라이부르크) 등 케이스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언급한 이들 모두 K리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직간접적으로 '돌아오겠노라' 약속한 이들이다.

K리그라는 젖줄을 통해 유럽이라는 큰물로 나가 잘 자란 연어들이 과연 이런 선례를 보고도 되돌아오려 할까. 당장 은퇴해도 문제없을 퇴물이 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한풀 꺾인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머리 숙이고 얌전히 돌아오는 것만 기다리는 것일까.

"저도 그냥 저만 생각하면 편합니다. 이제는 그러렵니다. 그런데 이래서 다른 선수들이 나중에 돌아오려 할까요."

이것은 기성용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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