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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향후 북러 군사협력의 가시화 여부에 따라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는 일대 '전환'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북러 정상회담 행보 속에 담긴 외교적·군사적 메시지, 전략적 의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북러가 '군사협력'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전면에 부상시키려는 의도의 차원이다. 이번 정상회담 관련 북러 양측의 발언이나 보도에서 군사협력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내용은 정작 찾기 어렵다. 대부분은 외교적 수사 차원에서 양측의 협력을 포괄적으로 표현할 뿐 구체적 군사협력 내용은 공개하지 않거나 모호하게 처리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국제사회의 비난이나 제재를 의식했거나 무기 거래나 군사기술 협력의 특성상 비공개와 은밀성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상회담 장소, 북한 김정은 총비서의 방러 기간 방문지를 대대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다양한 군사협력 가능성을 '추론'하도록 연출한 점을 알 수 있다.
양측이 당장 원하는 것이 무기 거래와 군사기술 협력이라면 비공개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그럼에도 북러가 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를 선택한 것은 '군사협력' 프레임을 통해 외교적 메시지 발신이라는 양측의 전략적·전술적 이해를 반영한 측면이 있다.
러시아는 장기전 모드로 진입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미국을 견제하고 동북아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응한 공동전선 형성,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및 반러 외교에 대한 경고 등의 다목적의 전략적 메시지를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 의회 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빠른 기동전에서 '소모전'으로 전환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전투의 대부분이 포격전에 집중되면서 장기간의 사상자 발생, 장비 손실 및 탄약의 필요성이 절박해지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모두 새로운 무기나 부대의 도입보다는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장비 수리 및 교체, 최전선 병력 순환, 포탄 및 탄약 조달 등이 전세의 핵심이 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에이브릴 헤인즈 미 국가정보국장은 지난 5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러시아가 강제 동원을 시작하고 기존 공급을 넘어서는 양의 제3의 탄약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소규모 공격 작전조차 유지하기 점점 어려워 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제재를 감수하면서 탄약과 포탄 등 러시아의 소모전을 지원할 안정적인 후방공급기지로서 최적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또한 북러 '군사협력' 프레임은 장기적 소모전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견제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미국의 장기간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전세의 불확실성은 미국 대선 국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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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
대선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 측면에서 북러의 군사협력 메시지는 향후 1년 여 미국 대선 국면을 염두에 둔 '심리전' 차원의 포석일 수 있다.
북러 군사협력을 통한 대미 견제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동북아로도 연결된다. 최근 북핵 대응을 명분으로 강화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응해 북러 군사협력 가능성으로 미국을 견제하는 차원이다. 북한에 대한 핵·미사일 핵심기술 이전 가능성을 전면에 부상시킴으로써 북한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동북아 전력 투사 및 안보협력에 대응하는 한편 한국의 우크라이나자 지원에 대한 경고의 성격도 띠고 있다.
크게 보면, 우크라이나 유럽 전선과 동북아 전선 양쪽을 연계하는 러시아의 대미 견제에 '북러의 군사협력' 메시지를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구도를 통해 중국의 소극적인 대러시아 협력을 자극하기 위한 '수'로도 볼 수 있다.
한편 북한 입장에선 북러 공동전선 과시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포위로부터 고립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기회로 적극 활용 가능하다. 북러 군사협력의 가능성은 핵·미사일 고도화를 통한 대미 억제와도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무기에 대한 기술 지원뿐만 아니라 동해상에서의 북러 연합훈련을 통해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응하는 모양새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북러 밀착을 통해 북한의 대중국 의존성을 분산하여 군사적, 경제적 협력 창구를 넓히는 의미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적극적 관심을 제고하는 메시지로 활용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실제 북러 군사협력의 여부다. 그 가능성은 북러 군사협력이 러시아에게 전략적 이익을 단기적 또는 중장기적으로 가져오는가에 달려 있다. 단기적으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직접 위반되는 지원보다는 미국 및 한미일 대응용의 협력이 주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우선 북러 연합훈련을 통해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응한 동해상의 해상 방어 및 차단, 공중훈련 등이 조만간 가능하다. 둘째 북한의 대공미사일체계에 대한 지원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S-300 및 S-400을 기반으로 중국의 HQ-9을 모방한 '번개-5·6·7호'가 있는데 이것을 업그레이드 하는 기술적 지원이다. 한미에 비해 공중전력의 절대적 열세에 있는 북한에겐 반드시 필요한 무기체계다.
셋째, 얼마 전 북한은 '전술핵공격잠수함'을 공개한 바 있는데, 이 디젤 엔진 기반 로미오급 잠수함의 건조나 개조를 기술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선체 구조나 소재, AIP(공기불필요추진시스템) 기술 등의 협력이다. 마지막으로 군사 정찰위성 개발에 대한 지원이다. 러시아는 세계적 수준의 위성 발사 대행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어 발사체 또는 위성체의 기술적 완성도를 인적 교류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
향후 1년여 미국의 대응과 중국의 반응,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기여 수준 등에 따라 핵·미사일 핵심기술에 대한 직접적 협력도 배제하긴 어렵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개입 및 지원, 한미일의 안보협력, 미국의 동북아 전력 투사, 미국의 대중국 압박 등이 강화될수록 북한과 러시아는 대미 억제라는 ‘전략적 일치’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핵·미사일의 핵심기술 이전을 통한 북한의 대미 억제력 제고를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북러 양측의 협력은 조성된 정세, 향후 관련국 반응, 단기적 또는 중장기적 이해에 따라 상당한 가변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 민감한 기술 이전으로 북한의 대러시아 군사 의존이 높아지고 경제협력이 확대되면 중국의 대북한 레버리지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질 가능성이 높다. 북러의 결속은 중국의 동북아에서의 지역패권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공간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서 중국의 중재자적 위상이나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억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감소를 의미한다. 결국 향후 중국이 러시아와 북한에 대해 어떠한 입장과 외교전을 펼치느냐가 북러 밀착 수준을 가늠할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조만간 있을 중러 정상회담이 중요한 이유다. 이 회담 결과와 올해 남은 기간 있을 수 있는 푸틴-김정은의 후속 정상회담이 정세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북러의 군사협력이 단기적 이해에서 중장기적 전략적 일치로 발전한다면 그 파급영향은 클 것이다. 북한의 대러시아 군수지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연결되면서 유럽의 안보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대선 및 국내 정치에도 일정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북러 안보협력 강화는 한미일 대북 억제력 강화로 이어지고 이는 중국을 자극하면서 아시아 안보환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아가 러시아의 핵·미사일 기술 지원이 가시화될 경우 미국 본토를 비롯한 북한의 위협도가 한층 높아지면서 미국의 동북아 역내 군사태세는 보다 강화되고 한반도의 안보딜레마는 격심해 질 가능성이 있다.
somangcho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