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르 알-루마얀 PIF 총재. © AFP=뉴스1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지난해 6월 출범한 LIV(리브) 골프를 '스포츠워싱'이라 손가락질했다. 리브 골프로 옮겨 간 소속 선수들을 '배신자'라 낙인 찍고 기존의 선수들에게는 리브 골프로 옮기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그러던 PGA투어가 느닷없이 리브와의 합병을 선언했다. PGA투어와 DP월드투어(유럽투어), 리브 골프 등 3개 투어의 공동 영리법인이 설립되고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법인의 독점 투자자가 되는 방식의 거래다.

그들이 그렇게도 비판하던 '오일 머니'를 결국 받아들이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되며 1년 전의 손가락질은 자신들을 향하게 됐다.

사실 '오일머니'라는 것만 빼고 보면 리브 골프가 추구하는 '새로운 골프리그'는 타당성이 있었다.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1년 내내 쉴 틈 없이 대회가 이어져 선수들은 지쳐갔다. PGA투어가 외형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사이 선수들에게는 희생이 요구됐다.

필 미켈슨(미국),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와 같은 전성기가 지난 베테랑 골퍼 뿐 아니라 브룩스 켑카(미국), 캐머런 스미스(호주),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등 20~30대의 젊은 골퍼들이 리브 골프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그랬기에 PGA투어가 '꼬투리'를 잡을 것은 리브 골프의 '오일머니' 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합병 결정으로 인해 그들이 부르짖던 '스포츠워싱'은 허울 뿐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명분보다 실리가 더 중요했을 선수들은 당장 이번 합병으로 인해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봤다. 천문학적인 돈을 받고 리브로 이적했던 선수들은 이제 하나가 된 PGA투어 대회에 복귀할 것이 자명하기에, PGA투어의 말만 믿고 리브의 제안을 거절했던 선수들은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리브 골프에 자신이 소유한 골프장을 대회장으로 빌려줬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1년 전 이 맘 때 "지금 LIV에 출전해 돈을 벌지 않으면 나중에 두 개의 투어가 합병했을 때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에는 논란이 됐던 발언이지만 이는 결국 현실이 됐다. 

이번 합병은 결국 PGA투어와 리브 골프, 양 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리브 골프는 자금은 넉넉하지만 팬층을 쌓고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PGA투어는 리브에 대항해 예산 지출이 늘어난데다 리브 골프가 자리를 잡으면서 압박이 커졌다.

메이저대회에서 리브 소속 선수들의 출전을 막지 못한 가운데 지난달 PGA 챔피언십에서 리브 소속의 브룩스 켑카가 우승한 것은 결정타였다는 분석이다. "한 물 간 선수들이 돈을 보고 이적한 곳"이라고 비판하던 리브 선수들이 호성적을 넘어 우승까지 차지하자 더 이상 "세계 최고의 투어"라고 자랑할 명분조차 없어진 것이다.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브룩스 켑카(미국). © AFP=뉴스1

이번 합병을 두고 스포츠적인 관점으로만 봤을 때는 긍정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두 투어 소속 선수들이 한 곳에서 경쟁하며 골프 경기의 질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골프 팬들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PGA투어 입장에서는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됐다. 한 골프계 관계자는 "명분도 자존심도 없는 결정이었다"면서 "향후 PGA투어가 받게 될 비난은 1년 전 자신들이 리브 골프를 공격하던 그것과 같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합병으로 인해 컷탈락 없는 3라운드 대회, 오프시즌 보장과 같은 '리브 경기 모델'이 적용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 역시 PGA투어가 리브 골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근거로 내세웠던 것들이었다.

아울러 '오일 머니'는 남자 골프 뿐 아니라 여자 골프로까지 빠르게 스며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PIF는 이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와도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PGA투어와의 합병이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남자 골프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는 PIF가 여자 골프와의 협상에서도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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