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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소원은 죽음입니다"…'존엄사 논의' 미룰 때 아니다 [가족간병의 굴레]⑥

현재 연명 선택 '말기 환자 등' 제한…중단 83%가 가족이 '생명' 결정
의료계 "존엄사 합법화, 환자 살리려는 에너지 위축시킨다" 완강 반대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원태성 기자 | 2023-06-02 06:00 송고 | 2023-06-02 11:16 최종수정
편집자주 파킨슨병 환자인 80대 남성이 자신을 간병하던 70대 아내에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아내는 간병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후 40대 아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너의 아버지 간병을 맡겨 미안하다"는 이유로.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에서 '가족간병의 굴레'는 과장이 아닌 현실이다. <뉴스1>은 간병가족을 직접 만나 복지 사각지대 실태를 점검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언니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어요. 언니도 피해자입니다."

난소암 진단을 받고 6년 넘게 투병 생활을 하던 A씨(당시 40세)가 남긴 유서 중 일부다. 그는 1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친자매 같은 사이었던 B씨(47)의 도움으로 지난 2020년에 생을 마감했다.
A씨는 사망 직전까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B씨는 A씨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렇게 피의자가 됐다. 그는 1심에서 징역 2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심에서는 피해자의 유서와 A씨 가족들의 선처 호소 덕분에 감형을 받았다. 

A씨의 소원은 다름 아닌 '죽음'이었다. 병이 호전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가족들 역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A씨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에 몸서리쳐야 했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지금 존엄사에 대한 논의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려야 하는 이유다. 환자 자의에 의한 '소극적 안락사', 즉 '연명의료 중지'는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합법화됐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조력사망' 또는 '적극적 안락사' 도입은 시기상조지만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부터 임종을 앞둔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치료에 대해 연장 또는 중단의 선택할 수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에서 벗어나 '존엄한 죽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2017.10.23/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23일부터 임종을 앞둔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치료에 대해 연장 또는 중단의 선택할 수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에서 벗어나 '존엄한 죽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2017.10.23/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 공론화 어려운 '존엄사'···연명치료 중단 선택한 10명중 8명 결국 가족이 '죽음' 결정
김정은씨(여·가명)의 시아버지는 평소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두 아들의 반대로 돌아가실 때까지 연명치료를 받았다.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떠나보낼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전 말기암 남편을 떠나보낸 이하영씨(여·가명)는 "남편이 췌장암 진단받고 남은 시간이 한달 정도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곧 죽을 사람한테 다짜고짜 위급상황 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처음에는 질문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씨는 곧 남편의 의사를 존중해 연명치료 거부 서류에 동의를 했다고 말했다.

국립연명의료기관에 따르면 지난 2018년~2022년 연명의료 중단으로 25만6377명이 숨을 거뒀다. 그중 21만2515명(83%)은 임종이 임박한 상태에서 본인의 의지가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채로 연명치료 중단이 결정된 것으로 집계됐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 중 △환자 가족 진술로 환자 의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8만7031명 △환자가족 전원 합의로 결정되는 경우 7만688명 △임종 당일에 연명의료계획서를 제출하는 경우 5만4796명이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한 환자는 1만5126명으로 5.9%에 불과했다.  

환자 또는 환자 가족 결정 확인방법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제공)
환자 또는 환자 가족 결정 확인방법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제공)

지금 제도로는 환자의 의지만으로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 환자가 향후 임종과정에 직면했을 때 연명의료와 호스피스에 관한 의향을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의료진과 가족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대부분 환자는 임종에 가까워지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보니 의료진과 가족의 의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구조다. 

연명의료결정법이란 2018년 2월 시행돼 일정 조건을 맞출 경우 환자가 자신의 임종 방식을 결정할 수 있게 허용하는 법이다. 임종 과정만을 연장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환자의 존엄성을 해치므로 죽음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아래 마련된 제도다.

법에 따라 환자가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싶을 때는 병원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연명의료계획서' 등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더라도 환자는 언제든지 그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또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문서로 밝히더라도 환자와 가족 2인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국가생명윤리심의윈원회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는 시기를 '말기환자 등'으로 제한한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을 개정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말기환자 제한을 없애면 훨씬 이전인 암 진단 때 작성하거나 고령의 장기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의사의 설명을 듣고 연명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생위는 권고문에서 "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때 적절한 시기에 의사와 함께 작성하도록 법을 개정하되 의사 교육이나 설명 의무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4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완화의료병동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복도를 오가고 있다.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환자가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이날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2018.2.4/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4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완화의료병동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복도를 오가고 있다.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환자가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이날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2018.2.4/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이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죽음을 개인의 자유와 선택에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던 셈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크게 3가지 사건 때문이었다. 먼저 26년 전 의료진이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를 가족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켰다가 곧바로 숨지자 살인방조죄로 처벌을 받은 일명 '보라매병원 사건'이 시작이었다. 

이후 2009년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 할머니의 가족들이 인공호흡기를 떼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비로서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듯 했다.

당시 법원은 "질병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해 이뤄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후 7년 후인 2016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되면서 2018년 2월부터 공식 시행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1년에 300명 이상 '죽음' 위해 스위스 향해"···존엄조력사법 논의 1년간 중단

해외에선 일부 국가들이 적극적 안락사를 택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법을 시행한 국가다. 이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 뉴질랜드, 스위스, 호주 일부 지역 등도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다만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은 국가가 다수다. 이에 스위스 등 국가로 '원정 안락사'를 오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스위스의 자살률은 1994년 기준 10만 명당 21.3명이었으나, 2016년에는 12.5명으로 감소했다. 이는 안락사를 허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연명의료결정법보다 확대된 '조력존엄사법'이 지난해 6월 발의됐지만 거의 1년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에 따르면 조력 대상자는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경우이거나 말기환자인 경우, 스스로의 의사에 따른 결정이란 점이 인정받을 경우로 규정됐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발의 배경에 대해 "100세 정도 되신 어머니가 돌아가실 당시에 의식이 있을 때 본인도 동의하고 온 가족이 동의를 했는데 병원 측이 반대해서 보내드리질 못했다"며 "이렇게 환자들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병원에서 버텨야 하는 현실 때문에 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위스로 존엄사를 하기 위해 떠나는 한국인이 연평균 300~450명 정도"라며 "조력존엄사가 시행이 안되면 현재 20대 아이들이 나중에 1인당 4명 이상을 부양해야 되는 꼴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을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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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계 "생명 끝까지 지키는 게 존엄한 것"…'공적관리 필요' 목소리도

현재 존엄한 죽음을 추구하는 이들과 생명의 신성불가침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엄사 합법화를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7월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력존엄사 입법화 찬반을 조사한 결과 8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력존엄사의 다른 말인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가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하는 것을 말한다.

의료업계는 자칫하면 존엄사 합법화가 의사들이 그 환자를 살리려고 끝까지 끌고 가는 에너지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입법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문지호 의료윤리회장은 생명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이 존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회장은 "의사조력자살(존엄사)이 법제화된 나라일지라도 각 나라의 의사들은 그 행위에 대해 절대 동조하면 안 된다는 게 세계의사협회의 선언"이라며 "환자가 고통스럽다고 포기하는 것은 의사의 정체성과 배치되고 생명을 경시하게 되는 윤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국내 조력사망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죽는 사람들을 '공적 관리의 영역'으로 데려와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돌봄의 문제가 사회적 차원의 문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개인적인 문제로 남겨놓고 있다"며 "'조력사망'과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해야 하는지 법으로 정하기 전에 이제는 최소한 논의의 첫발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산발적인 이슈 제기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정책적인 방안 연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특히 실태 조사가 먼저 이뤄지고 사회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인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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