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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조사나 통계도 없는 섭식장애…의료시스템 구축 절실

[섭식장애를 아시나요] ⑥<끝> 마른 몸 동경 사회 풍토 바꿔야
다이어트만이 질환 원인 아냐…드러내고 치료하는 사회로 가야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박동해 기자, 박혜연 기자, 이정후 기자 | 2023-05-06 05:30 송고 | 2023-05-06 06:09 최종수정
편집자주 섭식장애를 앓는 인구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심지어 섭식장애를 앓는 연령대는 갈수록 어려지고 있는데, TV 속 앙상한 몸으로 연기하고 춤추는 연예인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은 향정신성 의약품을 불법으로 구입하고 복용해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섭식장애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젊은 여성들'만의 문제로 취급한다. 뉴스1은 섭식장애를 앓고 있거나 이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우리 사회가 이 질병을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할지 6편의 기획물에 담았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청소년과 젊은 여성들이 말라가고 있다. 심지어 먹지 못해 사망하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3116명이었던 섭식장애 환자는 2021년 4881명까지 증가했다.
환자 4881명 중 3654명은 여성으로, 비중은 75%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충격적인 것은 60대 이상 노년층을 제외하고 10대 여성 환자가 486명으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특히 10대 여성 거식증 환자의 절반 이상(210명)이 10~14세였다.

우리나라에서 섭식장애는 숨겨진 질환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섭식장애를 가졌는지도 모르는 환자가 대다수라고 말한다. 섭식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매우 소수이고 늦게라도 병원을 찾는 환자는 증세가 극도로 악화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섭식장애는 사회적 인식보다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섭식장애와 사망률 사이의 인과관계를 찾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정신질환 가운데 섭식장애가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분석도 있다.

◇ 치명적 질환인데 제대로된 조사나 통계가 없다
최근 가수 이혜인씨(활동명 바바라·35)가 방송에서 거식증이 정신과 질환 중 사망률 1위라며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실제로 섭식장애에 따른 사망률이 얼마나 되는지 관심이 집중됐었다.

섭식장애를 다룬 여러 논문이나 정보에서도 위험성이 높은 질병이라는 점을 지적하지만 문제는 정확한 조사나 통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만 외국의 사례로 참고할 만한 통계는 있다. 1995년 미국정신의학회지에 실린 논문(Mortality in anorexia nervosa)에 따르면 섭식장애 환자가 10년 동안 사망할 확률(치사율)은 5.9%였다. 이 수치가 기준이라면 단일 정신과 질환 중 가장 높은 사망률이다.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섭식장애 환자에서 다른 정신질환(우울증 등)이 많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평원의 보건의료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섭식장애의 동병상병으로 가장 높은 비중이 우울증이었으며 그 수치도 약 9000명에 육박했다. 이에 따라 섭식장애로 인한 사망자 5명 중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보고됐다.

아울러 미국 의학계에서는 여성의 5~10%가 평생 한번은 거식증에 걸린다고 보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섭식장애 환자가 250만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인제대 서울백병원에서 섭식장애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김율리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섭식장애 유병률은 전체 인구의 3%에 이른다. 우리나라만 대략 155만명에 달하는 수치다.

다만 이 역시 추정일 뿐 섭식장애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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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의료시스템 구축 필요

섭식장애가 치명적인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사회적으로 여전히 섭식장애는 다이어트에 따른 부작용 혹은 '젊은 여성들'의 의지 부족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이 질환은 겪은 당사자들은 다이어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뉴스1이 만난 박지니 작가(43)의 경우 청소년 시절 찾아온 우울증과 이에 따른 소화 불량이 섭식장애까지 이어졌다. 섭식장애로 인해 우울증이 추가 유발된 것이 아닌 역으로 질환을 겪은 것이다(관련기사 <스스로를 학대하는 아이들…섭식장애는 다이어트가 아니다>).

그는 "피상적으로 과도한 다이어트, 잘못 돌아가는 다이어트로만 보지 말고 진짜 아이들의 삶을 진지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신 질환뿐 아니라 우리가 주위에 흔히 겪을 수 있는 교우 관계, 가정 환경, 예민한 성격 등도 섭식장애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박지현 식이장애 전문심리상담사(39)는 "아이들이 대인 관계를 맺을 때 몸과 관련된 놀림이 트라우마로 작용해 섭식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또 애착 관계나 가정 문제 때문에 섭식장애가 발현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섭식장애 환자가 늘어나고 연령대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데 관련 의료시스템은 미비하다는 점이다.

안주란 백상식이장애센터 센터장은 "섭식장애 환자들은 일대일 케어가 안되면 치료가 잘 될 수 없다"며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섭식장애 환자들이 대형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질환 구분도 잘 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 센터장은 "적은 인력으로 만성질환의 환자들과 섭식장애 환자를 같이 케어한다는 건 어렵다고 봐야 한다"며 "환자가 치료를 위해 찾아오더라도 전문적인 치료로 연계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보통 섭식장애는 집중치료를 포함해 장기간의 추적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수년이라는 시간과 그에 따른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섭식장애를 위한 치료전문시설은 보험혜택도 없어 비용 문제로 인해 환자가 쉽게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건강보험은 제쳐두고라도 섭식장애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사보험 적용도 어려운 상황이다. 

안주란 백상식이장애센터 센터장이 서울 강남구 백상식이장애센터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안주란 백상식이장애센터 센터장이 서울 강남구 백상식이장애센터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 섭식장애 불치병 아냐…조기 치료와 사회적 인식 전환 중요

전문가들은 사회적 인식 전환과 함께 환자 스스로 섭식장애를 질환으로 인식하고 치료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통계적으로 섭식장애 환자가 여전히 적은 것은 환자가 적은 것이 아니라 잘환을 겪고도 질환인지 모르는 경우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인식, 또 이 병을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많다고 것이다.

안 센터장은 "처음에 환자들이 오면 진단명을 내려도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한다"며 "증상과 행동을 인지시켜줘야만 자신이 병을 앓고 있구나 인정하는데, 그럼에도 가볍게 보거나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더욱이 이 과정이 길어지고 자신이 통제력을 잃으면 치료를 포기하거나 더 이상 치료에 대한 의지를 가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섭식장애가 절대 불치병이 아니며 제때 제대로 치료를 받을 경우 상당수는 회복할 수 있는 질환이라고 말한다.

다만 가족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또 질병을 받아들이고 서둘러 관련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섭식장애를 질환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다이어트의 문제로만 인식해 비용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울러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박 상담사는 "섭식장애는 복합적인 트라우마와 애착 문제, 가족문제가 결부돼 있는데 여전히 다이어트나 먹는 문제에 초점을 두는 인식들이 아쉽다"며 "환자와 사회 모두 질환의 심각성을 서둘러 인지하고 치료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sanghw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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