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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인터뷰] 해외 입양 첫날 시작된 성 학대 "그때 나는 11살이었다"

[해외로 거래된 아이들]④ 강제 해외 입양된 아이들의 현실
입양 첫날 시작된 학대, 17세에 집 나왔지만...

(서울=뉴스1) 이승아 기자, 최은지 인턴기자, 원태성 기자 | 2023-02-09 06:00 송고
편집자주 1970~1980년대 한국경제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명암이 뚜렷하게 공존하고 있다. 당시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들이 친부모가 살아있는 아이를 호적상 '고아'로 조작해 해외로 입양을 보낸 것은 불법 인권침해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다. 지난 64년간 해외로 입양된 아동만 약 16만명에 달한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인원이 고아로 조작됐는지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없었다. 뉴스1은 최근 한 달 간 법무부·경찰청·보건사회부의 기·미아 통계와 각종 논문·연구 결과를 분석하고 이제는 성인된 '고아호적' 입양아를 직접 만나 해외로 거래된 아동들의 실태를 추적해봤다.


'돈을 얼마나 주고 데려왔는데...너는 평생 내 발에 키스해도 모자라'
친부모 동의 없이 해외로 입양 보내져 첫날부터 성 학대를 당한 김유리 씨. 참다못한 김씨가 한국에 보내달라고 말하자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다.

지난 64년간 해외로 입양된 약 16만 명의 아동 가운데 상당수가 친부모가 살아있음에도 '고아'로 호적이 조작됐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3일 뉴스1이 만난 김유리씨(50)는 11살까지 평범한 가정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 부모님의 이혼 등의 형편으로 잠시 동생과 보육원에 맡겨졌다.

엄마가 보낸 편지, 소포 등을 보며 보육원의 모진 생활을 버티던 김씨는 '너희 엄마가 너희를 버렸다"라며 프랑스로의 입양이 결정되었다고 통보받았다.
그렇게 남매는 파리에서도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김씨는 "첫날 도착해 오랜 시간 차를 타고 가는데 멀미가 있었어요. 동생이 차에서 토를 했는데, 양부가 차를 세우더니 동생을 때리고 머리카락을 집으며 그걸 먹으라고 했습니다"라며 첫날을 회상했다.

양부모는 김씨 남매를 '칭키'라고 불렀다. '칭키'는 미국 등에서 황인종을 낮잡아 일컫는 인종차별 용어다. 김씨는 왜 그렇게 부르냐며 따졌지만 "너희들은 칭키잖아"라는 장난스러운 말만 돌아왔다.

겨우 11살일 때, 양부의 성 학대는 시작되었고 김씨는 17살이 되던 해 집을 나와 양부모를 고소했다.

그 후 프랑스의 보호센터에서 지내며 대학교도 진학했지만 어릴 적의 상처.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김씨는 한국을 찾았지만, 부모님을 한번 만난 후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입양 보냈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길래 '왜 내 부모는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들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서 들은 소식은 부모님들이 김씨를 해외 입양 보내는 데 어떤 동의도 한 적이 없고 입양 서류에는 김씨가 고아로 명시돼 있던 것이었다.

"엄마로서는 우리가 갑자기 사라진 거죠. 한국 해외 입양 모델의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가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김씨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보자.

1984년 13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씨(50)
1984년 13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씨(50)



seunga.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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