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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한국이 직면한 5가지 도전

[우크라戰1년]⑦예상과 다른 '장기전' 양상에 세계질서도 재편
'미국 vs 러시아' 외교적 자율성 축소… 한러관계는 '시계 제로'

(서울=뉴스1)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정치학 박사 | 2023-02-07 06:30 송고 | 2023-02-07 10:12 최종수정
편집자주 이달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려 세계경제에 인플레이션이라는 커다란 파고를 몰고왔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등 전세계 외교지형에 신냉전 체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군비경쟁에 불을 붙였고 한국 방위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뉴스1은 7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국제정세적 의미와 전망을 짚어보고자 한다.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시내 대학 건물. © 로이터=뉴스1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시내 대학 건물. © 로이터=뉴스1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1개월이 넘었다. 단기간에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이번 전쟁은 작년 9월 말 한반도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을 병합하고 부분 동원을 통해 병력을 보충한 러시아,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결사적으로 항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간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

동시에 단극(單極) 체제 유지를 위해 지역 패권 국가 출현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다극(多極) 체제 형성을 위해 지역 패권 국가가 되려는 러시아 간의 패권 전쟁이란 이번 전쟁의 본질도 명확해졌다.

◇새로운 세계질서 형성의 과도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지난 30여년간 미국의 패권을 전제로 작동하던 기존 세계질서와 그 문법이 파괴되고 있다. 전쟁의 결과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러시아의 강대국 지위 상실로 인해 미국과 중국이 각각 한 축을 담당하는 양극 체제 형성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고, 혹자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몇 개의 강대국이 함께 주도하는 다극 체제 형성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국제적 무질서'의 양상을 지적하기도 한다.

세계질서는 분명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가 2개의 초강대국을 중심으로 협력하고 2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신냉전'과 전략적 자율성을 가진 몇 개의 강대국이 사안에 따라 협력과 갈등을 위한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다극 질서' 사이에서 아직 자리를 찾지는 못한 것 같다. 이런 과도기는 우크라이나 전장(戰場)에서 수천㎞ 떨어져 있는 한국에도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FP=뉴스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FP=뉴스1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 축소와 한러 관계 위기

첫째,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한국은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북방 3각(북한·중국·러시아)과 남방 3각(한국·미국·일본) 간 대립 구도 약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동북아에서 중국·러시아 대(對) 미국·일본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고, 이는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 확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둘째, 한러 관계가 위기에 처했다. 한국이 대러 경제제재 수위를 높이고 러시아가 한국을 이른바 '비우호 국가'로 지정하면서 한러 관계가 냉각됐다. 게다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작년 10월27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이 한·러 관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직접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한국에 지리적으로 인접국일 뿐만 아니라, 비핵화와 통일이란 한반도 문제 해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관국임을 잊어선 안 된다.

세계질서 변화가 장기적으로 한러 관계 발전의 기회가 될 여지도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일본과의 관계가 이미 파탄에 이르렀고,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장기적으로 근심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여전히 한국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원할 것이다. 당분간은 운신의 폭이 좁겠지만, 다양한 차원에서 향후 러시아와의 관계 발전을 모색할 준비도 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 가능성 상실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한계 확인

셋째, 북한의 핵무기 포기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 러시아와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가운데 북한은 세계질서의 변화에 따른 혼란을 이용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면서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미국과의 군축 협상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전제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대안을 모색해야 할지도 모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화상연설. 2022.4.11/뉴스1 © News1 허경 기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화상연설. 2022.4.11/뉴스1 © News1 허경 기자

넷째, 경제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한계가 확인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무역·투자 등 모든 경제협력 분야에서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결국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남북 간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아무리 높아져도 안보 딜레마 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균형 외교론 對 동맹 강화론

다섯째, 이른바 '야만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균형 외교론'이 힘을 잃고 '동맹 강화론'이 압도적 영향력을 가질 가능성이 커졌다. 동맹 강화가 억제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려는 시도라면 균형 외교는 외교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려는 시도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남북 모두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선 두 논리 간 균형이 중요하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은 조선이 승리한 전쟁이다. 하지만 우린 이를 승리한 전쟁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진정한 승리는 전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조선은 16~17세기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두 번의 큰 전란(戰亂)을 겪어야만 했다. 그중 한 번은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로 끝났고, 다른 한 번은 항복으로 끝났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지만, 실수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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