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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재발방지 '기록'에서 시작해야… "사회적 기억 형성해 변화 이끌어"

[인터뷰]6년 간 세월호 참사 쫓은 기록학자 김익한 명지대 교수
"아픔 공유해야 진정한 위로 가능"…이태원 추모 공간 현장에 만들어야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2023-01-01 06:30 송고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 인터뷰. 2022.12.28/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 인터뷰. 2022.12.28/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62)는 국내 기록학계 권위자다. 그는 대통령비서실 기록혁신 태스크포스(TF) 자문위원장과 서울기록원 설립추진단장, 4·16 기억저장소 설립 대표를 지냈다. 김 교수는 현재 정부가 운용하는 국가기록관리제도의 초안을 작성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끈질기게 기록해 왔다. 2014년 5월부터 진도에 텐트를 치고 손에 잡히는 기록을 6년간 끌어 모았다. 261명의 단원고 학생과 교사를 잃은 안산에서 희생자 기록을 수집했다. 포스트잇과 편지, 성명서, 사진 등 기록물 40만 건을 수집하고 유가족을 인터뷰해 100권 분량의 세월호 구술 증언록 '그날을 말하다'를 완간했다.
김 교수는 왜 기록에 집중하는 것일까. 기록이 참사의 재발 방지를 막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사회적 참사를 또 겪었다. 지난해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옆 좁은 골목길에서 158명이 압사했다.

참사를 막으려면 기록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추모공간이 없어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 사회적 참사를 제대로 기록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아픔을 공유할 때 진정한 위로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데 그들을 위로하지 않는 사회라면 사회 건전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죠. 마음의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참사가 발생하면 정부는 기록을 남겨 재발 방지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국민 안전을 위해 참사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기록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데 오히려 기록을 위변조하고 무단 파기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합니다.

- 사회적 고통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스스로를 처절하게 되돌아보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두 참사 책임의 한 '담지자'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참사가 더 일어나지 않도록 내 삶에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국가도 중요합니다. 참사는 국가와 사회에 내재된 모순이 응축적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기록을 통해) 다시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구조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100권 분량의 세월호 구술 증언록 '그날을 말하다'를 낸 것도 그 때문인지요.

"일단 사회적 참사들은 사회의 본질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참사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세상에 공유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책을 썼지요.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기록학은 말 그대로 인간의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총체적인 집합이라 할 수 있는 '기록'을 보존·정리·활용하는 학문이다. 이 때문에 역사 속 자료를 근거로 하는 역사학과 정보자료를 관리하기 위한 문헌정보학, 컴퓨터를 이용해 기록을 보존하기 위한 IT과학 등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 인터뷰. 2022.12.28/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 인터뷰. 2022.12.28/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참사를 기록할 때 고통스럽지 않았는지요?

"참사를 기억·기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고통입니다. 그리고 아픔을 공유할 때 진정한 위로를 할 수 있지요. 사회적 참사를 제대로 기록하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공유한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데 그들을 위로하지 않는 사회라면 사회 건전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성수대교 붕괴(1994년)와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세월호 침몰, 이태원 참사 등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도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인가요?

"기본적으로 (기록을 하지 않아) 참사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가의 주요 의사 결정을 권한 가진 사람들이 고통의 공감 능력이 부족한 거지요. 사회적으로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참사를 수습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참사 49일째였던 지난 16일 오후 6시부터 이태원역 앞에서는 시민추모제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가 진행됐다. 유가족의 마스크에도, 현수막에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가 적혀있다. 유족들이 시민 사회에 바란 것은 '기억해 달라'였던 것이다.

참사 이튿날부터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미안하고 기억하겠다'는 쪽지가 벽에 붙었다. 바닥에는 하나둘 하얀 국화꽃이 놓였고 술, 인형, 음식 등 추모품이 쌓였다. 시민자율봉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1일까지 시민 15만여명이 방문했고, 2만5000여 송이의 꽃, 2000여 개의 추모품, 1만장 이상의 편지가 추모 공간에 남겨졌다.

- 사회적 참사와 기록의 연관성에 주목해왔는데 연구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하다고 느꼈는지요?

"시민 사회가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선 대규모의 참사 아카이브(파일 저장고)가 있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4.16 기억저장소로 있듯 이태원 참사도 유가족, 시민, 전문가가 주체가 돼서 아카이브를 반드시 만들어야 하지요.

그런데 사회적 참사의 가해자인 국가는 제대로 된 '아카이빙'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국가에서 (아카이빙)하면 다양한 기록을 남기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사의 증거가 될 기록들도 같이 남겨야 하거든요.

유가족들이 중심이 되고 전문가들이 도움을 주면서 국가는 비용과 공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아카이브는 국가의 잘못을 감추는 곳이 아닌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을 위로하며 국가를 향해서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추모 공간을 정할 때 중요한 게 있습니다. 추모공간을 어디에 두느냐입니다. 즉 '장소성'이 중요하지요. 그래야 잊히지 않고 기억됩니다. 저는 (참사가 발생한) 그 거리 전체를 보존하고 길거리 아카이브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독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표 추모 공간이 있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현장(그라운드 제로)에 지어진 미국의 9.11 메모리얼 파크가 대표적이다. 바로 옆에는 현장 유품, 희생자 음성, 항공기 잔해 등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독일 베를린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추모 공간이다. 거리 곳곳에는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 앞에 동판을 놓고 이름·생년월일·사망일 등을 기록한 작은 동판이 놓여있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유대인 박물관도 시민의 일상적 생활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반면 "한국에는 그런 추모 공간이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양재시민의숲에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양재시민의숲은 삼풍백화점 붕괴가 발행한 서초동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성수대교 추모비의 경우 강변북로 도로들 사이에 있어 아예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

기록을 통해 사회적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잠시 숨을 들이켰다가 "한국 사회가 미래를 보고 갈 시기는 지났다"고 말했다.

"미래를 향해 가는 사람들은 과거를 보지 않습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죠. 남긴 기록도 없애려고 합니다. 그들은 왜 옛날 문제를 들추냐고, 그만하라고 말합니다. 미래만 가치 있는 것처럼 포장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들을 하나씩 이뤄야 합니다. 이제 뒤를 돌아보고 남은 자들의 아픔을 해소하고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16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2.12.16/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16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2.12.16/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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