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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전약후] 가망없다던 7살 백혈병 아이, 10년째 멀쩡…역사 쓴 '원샷' 신약

세계 최초 혈액암 카티(CAR-T) 계열 신약 '킴리아'
비급여 투약시 4억원…국내 건강보험 적용으로 '598만원'

(서울=뉴스1) 이영성 기자 | 2022-12-04 07:00 송고
지난 2019년 10월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2019 세포&유전자 미팅' 콘퍼런스에서 자신의 치료 사례를 발표한 에밀리 화이트헤드. © 뉴스1
지난 2019년 10월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2019 세포&유전자 미팅' 콘퍼런스에서 자신의 치료 사례를 발표한 에밀리 화이트헤드. © 뉴스1

혈액암은 혈액이나 림프에 악성 종양이 생긴 것을 말한다. 백혈병이나 악성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등이 이에 속한다. 종양 부위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수술적 치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혈액을 타고 치료효과를 낼 수 있도록 약물을 직접 주입하거나 방사선 치료를 한다.

보통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임상시험 1~3상 과정을 거친다. 첫 단추인 임상1상부터 큰 치료 효과를 보여 주목받았던 혈액암 신약 사례가 있다. 당시 주치의도 가망이 없다고 봤던 7살 아이가 개발중인 신약물질을 투여받은 지 약 두 달만에 혈액암 세포가 사라졌던 것이다.
바로 스위스 노바티스사가 개발해 2017년 8월 미국서 허가받은 카티(CAR-T) 계열 첫 신약 '킴리아'가 그 주인공이다. 이 CAR-T 치료제의 등장으로 암 치료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단 1회만 투여하는 주사제 킴리아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 6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2상에서 치료 3개월 만에 완전관해율 83%를 기록하는 유례없는 효과를 냈다.

완전관해는 치료 후 암이 있다는 증거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를 일컫는다. 이를 수 년 이상 일정 기간 유지하면 완치 범위에 드는데, 그렇다고 CAR-T 치료제가 완전한 만능 약으로 볼 순 없지만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평가에 대해선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노바티스 '킴리아'.
노바티스 '킴리아'.

◇이스라엘 면역학자들 기초 연구…암 공격력 크게 키운 'T세포'
CAR-T 치료제는 환자 몸에서 면역 T세포를 채취한 후 암세포의 특정 항원(T세포의 공격 대상)을 인지할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재프로그래밍하고 해당 환자에게 다시 주입해 암을 공격하도록 하는 항암제다. 더 전문적으로는 CAR(키메릭 항원 수용체, Chimeric antigen receptor)를 T세포에 도입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레이더 탐지를 어렵게 하는 스텔스 기능을 발휘하는 암세포를 감지할 수 있도록 T세포에 고성능 레이더와 함께 이를 파괴할 강력한 미사일을 달아준 무기가 된다.

사실 CAR-T 치료제는 오래 전부터 연구가 진행돼왔다. 1980년대 이스라엘의 면역학자인 젤리그 에쉬하르(Zelig Eshhar) 박사와 기드온 그로스(Gideon Gross) 박사가 세계 최초로 CAR를 만들었다.

이들은 암세포가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항원과 결합하는 수용체를 갖는 T세포를 인위적으로 만들면 암세포만 표적해 면역반응을 일으켜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는 이론을 고안했다. 이러한 수용체 CAR를 T세포에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가 현 CAR-T 치료제 개발의 기초가 된 것이다.

다만 이 1세대 CAR-T 세포는 20여년이 지나도록 임상적으로 충분한 효과를 보이지 못해 이후 여러 연구진이 2세대 CAR-T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201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면역학 교수인 칼 H. 준(Carl H. June) 박사와 브루스 L. 레빈(Bruce L. Levine) 박사는 암 겨냥 항체와 T세포의 반응을 증폭시키는 수용체를 결합한 2세대 CAR-T 세포를 설계했다.

CAR-T 제조·치료과정.
CAR-T 제조·치료과정.

◇펜실베이니아대 CAR-T 임상1상 참여…그리고 '완전관해' 판정

이 CAR-T 임상연구에 7살짜리 미국 소녀 에밀리 화이트헤드가 최초로 참여하게 됐다. 에밀리는 5살이었던 2010년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았다. 하지만 1차 치료에도 불구하고 병이 재발됐고, 병세가 악화돼 조혈모세포이식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어 호스피스에서 삶을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권유 받았을 때 에밀리는 겨우 7살이었다. 때마침 펜실베이니아대병원에서 진행한 CAR-T 임상1상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고 짧은 기간내 완전관해 판정을 받아 학계를 놀라게 했다.

에밀리는 투여 후 5년 뒤 완전관해 상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항암자문위원회에 참여했다. 바로 세계 첫 CAR-T 신약 킴리아의 승인 자리였다. 노바티스는 펜실베이니아대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CAR-T 치료제를 상용화했고 에밀리 등이 참여한 임상연구 효과를 인정받아 2017년 최초로 FDA 허가를 받았다. 에밀리는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재발없이 건강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킴리아는 유럽에선 2018년 8월, 일본에선 2019년 3월 허가를 받았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3월 승인을 받았다.

◇DLBCL·ALL 치료 적응증 확보…올 4월 건보적용, 환자부담 최대 '598만원'

킴리아는 국내서 △두가지 이상의 전신 치료 후 재발성 또는 불응성 미만성거대B세포림프종(DLBCL) △만 25세 이하의 소아 및 젊은 성인 환자에서의 이식 후 재발 또는 2차 재발 및 이후의 재발 또는 불응성 급성림프구성백혈병(ALL) 환자 대상 첨단재생의료바이오법(첨바법) 1호로 허가됐다.

첨바법은 첨단재생의료의 안전성 확보 체계 및 기술 혁신∙실용화 방안을 마련하고 첨단바이오의약품의 품질과 안전성∙유효성 확보 및 제품화 지원을 위해 2020년부터 정부가 시행한 정책이다. 제제 특성을 반영한 허가∙심사를 통해 국내 환자들에게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된 첨단바이오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DLBCL과 ALL은 국내 혈액암 중 발병률이 높은 편이고, 치료제 개발이 활발히 진행돼 대부분 표준 치료로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표준 치료에 불응하거나 재발한 소수 환자들은 더 이상 치료 옵션이 제한돼 기대 여명이 6개월에 불과했다. 다행히 CAR-T 치료제의 국내 허가로 죽음을 눈앞에 둔 국내 말기 혈액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가 생겼고 장기 생존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킴리아는 임상결과, 재발성∙불응성 소아 ALL 환자 대상으로 82%의 전체 반응률을 확인했고 관해에 도달한 환자의 98%가 미세잔존질환이 음성으로 나타났다. 미세잔존질환이란 치료 후에도 적은 양의 암세포가 체내에 남아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또 재발성∙불응성 DLBCL 환자 대상으로 전체 반응률은 53%였고 그 중 39.1%는 완전 관해를 보였다.

킴리아는 올 4월 국내 건강보험급여가 이뤄졌다. 비급여로 1회 투약 비용은 무려 약 4억원에 달했지만, 급여 적용으로 최대 598만원 수준으로 환자부담이 줄었다.

킴리아는 첨바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검토 과정을 거쳐 인체세포 등 관리업 허가를 받은 CAR-T 센터에서 치료가 가능하다. 현재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총 5개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l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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