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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고양이를 사랑한 화가와 작가들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2-09-22 12:00 송고 | 2022-09-22 18:45 최종수정
© News1 DB 

며칠 전 밤 산책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멀리서 어떤 여성이 유모차를 밀면서 개의 몸줄을 잡고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반려견과의 밤 산책은 매일 보는 풍경이라 무심코 스쳐 지나갔다.

몇 걸음 지나가다가 느낌이 이상했다. 개의 움직임이 어딘가 달라 보였던 것이다. 몸을 돌려 그 반려견을 쳐다보았다. 개가 아니었다. 고양이였다. 주인이 고양이를 안고 산책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몸줄을 매달고 산책시키는 것은 처음 보았다. 호기심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고양이는 산책하는 걸 좋아해요." 고양이는 킁킁킁 냄새를 맡는 개처럼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었다. 그렇게 고양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밤길에 본 '산책하는 고양이'의 잔상이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고양이는 집을 자신의 영역이라고 느끼는 동물이다. 공간보다 사람을 따르고 집착하는 개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인 집을 벗어나면 불안감이 커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고양이 산책을 보기 어려운 이유다. 고양이는 집에 돌아와서도 침입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루이스 웨인이 그린 '피터' / 사진출처=조성관 작가 

현대백화점 킨텍스점에서 루이스 웨인전(展)이 열리는 중이다. 평생 고양이 그림을 그려 냥이의 위상을 높인 영국 삽화가 루이스 웨인(Louis Wain·1860~1939). 홍보동영상을 볼 때마다 저 전시회를 언제 가볼까 하고 있었는데, '산책하는 고양이'가 덜컥 나를 이끌었다.

웨인은 1860년 영국 런던의 귀족 집안에서 생을 받았다. 그는 구순구개열을 안고 태어나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어렵게 미술학교 졸업 후 미술교사로 일한다. 스무살 때 부친이 사망하면서 그는 졸지에 어머니와 여동생 5명의 생계를 떠맡는 가장이 된다.

교사 월급으론 생활이 어렵자 부업으로 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주로 동물과 강아지를 그렸다. 그러던 중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의 사장 윌리엄 잉그램 경(卿)이 그의 삽화를 눈여겨봤다. 그가 잉그램 경에 의해 최고 권위의 일러스트 잡지에 채용된다.

스물세살 때 열 살 연상의 가정교사 에밀리 리처드슨과 사랑에 빠진다. 에밀리는 평민 출신인데다 열 살 연상. 하지만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신혼의 달콤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내가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부부는 어미 잃은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부부는 새끼고양이를 '피터'라고 이름 지었다.

그는 피터가 병상의 아내 곁을 지키며 갖가지 재미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서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양이가 삽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를 삽화가로 이름을 알린 게 바로 '고양이 피터'였다.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실린 '새끼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독자들이 환호했다.

루이스 웨인전 '바이올린 연주자' / 사진출처=조성관 작가 

웨인의 남다른 점은 단순히 고양이를 그리는 차원을 뛰어넘어 고양이를 의인화한 것이다. 1886년 고양이에 인격을 부여해 영국인의 일상생활과 여가생활을 표현했다. 크리켓 하는 고양이, 골프 하는 고양이, 테니스 하는 고양이, 낚시하는 고양이, 바이올린 연주하는 고양이, 휴가를 즐기는 고양이….

그때까지 영국인들은 대체로 고양이를 멀리했다. 여간해선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노처녀들만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편견도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의 그림으로 인해 고양이 영국인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그의 고양이 그림을 붙여놓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였다. '고양이 피터'로 인해 고양이를 대하는 영국인의 태도가 달라졌다. 루이스 웨인 스토리는 전기 영화로도 나왔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영화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인간이 개를 길들인 기간은 3만4000년. 고양이는 9500년이다. 서양 속담에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라는 말이 있다. 반려동물 중 고양이의 독특한 생존 본능을 일컫는 말이다. 강아지는 식탁 높이에서 떨어져도 즉사하는 경우가 있다.

고양이는 다르다. 고양이는 높은 데서 추락해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추락하면서도 몸을 뒤틀어 가속도를 최대한 줄여 발로 착륙하기 때문이다. '직립 반사'가 가장 뛰어난 동물이 고양이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역시 고양이를 끼고 살았다. 클림트의 마지막 화실은 쉰부른 궁전 근처, 전철 4호선 히칭 역에서 가깝다. 일반에도 공개되는 마지막 화실은 화가를 오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 클림트는 이젤 두세 개를 세워놓고 동시에 여러 작품을 그렸다. 그의 아틀리에는 언제나 벌거벗은 모델들이 돌아다녔는데 나신들 사이를 고양이들이 꼬리를 바짝 세우고 활보했다.

루이스 웨인전 '휴가' / 사진출처=조성관 작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일본인

우리는 반려인구 1000만 시대에 산다. 어딜 가나 반려동물이다. 개와 고양이. 한국인은 개를 더 선호한다. 하지만 일본인은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일본의 반려묘 인구는 900만명이 넘는다.

'탐사보도의 선구자' '지(知)의 거인' '독서대식가'. 이 일본인 앞에 붙는 수식어다.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1940~2021). 국내에도 적지 않은 팬을 거느리는 일본 작가. 다치바나는 82년의 생애를 살다가 지난해 4월 타계했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그는 여러 차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때가 되면 스스로 무리를 떠나 조용히 상아의 탑으로 떠나는 밀림의 코끼리처럼 죽고 싶다."

이 말처럼 그의 죽음은 2개월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라스트 신'도 역시 다치바나 다카시답다.

다치바나 하면, 장서 10만권을 보관한 '고양이 빌딩'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생전의 다치바나를 인터뷰한 기자들은 도쿄 분쿄구의 '고양이 빌딩'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집에는 책들 사이로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렸다. 책 10만권이 들어갈 집을 지으면서 그는 커다란 고양이 그림을 외벽에 그려 넣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난 2013년 도쿄대 측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도쿄대 도서관 제공)

고양이 하면 자동 연상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嗽石·1867~1916).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905년 세상에 나오자마자 일본 독자들이 열광했다. 나쓰메는 고양이를 일본, 쥐를 러시아, 인간을 서구 열강으로 각각 은유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탄생한 분쿄구 집터에 가면 커다란 오석(烏石) 안내문과 함께 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를 걷는다. 꼬리를 세운 채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마실 가는 고양이.

신주쿠에는 나쓰메 생가와 그가 살다가 눈을 감은 집(현 기념관)이 있다. 생가에서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는 바닥에는 고양이 그림을 그려 넣었다. 고양이 발자국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념관이 나온다. 기념관 내 카페의 이미지도 고양이다. 소세키는 고양이다.  

소세키 기념관으로 가는 이정표. / 사진출처=조성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1949~)도 고양이를 사랑했다. 그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카페를 운영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그는 대기업 취직을 포기한다. 대신, 재즈를 실컷 들으며 살겠다며 빛을 내 아내와 카페를 차린다. 그곳이 도쿄 고쿠분지역 남쪽 출구 근처 지하실. 그 재즈 카페 이름이 '피터 캣'이다. 그의 산문에 보면 '피터 캣'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카페가 끝나면 그는 테이블을 치운 뒤 원고지를 펴놓고 세일러 만년필을 들었다. 밤의 적막 속에서 음악처럼 문장을 써나갔다. 그게 하루키를 세상에 알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새로운 문체에 젊은 독자들이 박수를 보냈고, 그는 군조문학상 신인상을 거머쥔다.

루이스 웨인을 스타 삽화가로 만든 게 '고양이 피터'다. 우연이지만 하루키가 재즈를 들으며 첫 소설을 써낸 곳이 '고양이 피터'였다. Peter Cat!


auth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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