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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위기가구] ①공무원만으로는 위기가구 '빈틈' 못 메운다

이웃 관심 절실…도봉 편의점·고시원 '명예 사회복지공무원'
성동구, 2인1조 돌봄인력 활동…위기가구 제보하면 포상금

(서울=뉴스1) 전준우 기자 | 2022-09-22 05:01 송고 | 2022-09-24 23:12 최종수정
편집자주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 지났지만 복지 사각지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지난 8월 경기 수원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고, 이후에도 안타까운 사연들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이 보내는 위기 신호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여전합니다. 제도나 시스템 자체가 이들을 모두 끌어안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존재합니다. 뉴스1은 절벽으로 내몰린 위기가구를 놓치지 않기 위한 현장의 다양한 시도를 찾아보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이모씨(61)는 서울 도봉구 고시원에서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1인가구다. 월 20만원의 방세는 밀리기 일쑤였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뒤로 말문을 아예 닫아버렸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사회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이씨를 구한 것은 고시원 사장 최모씨(69)였다. 최씨가 정부 지원을 받게 해주겠다며 이씨에게 도움을 건넸지만 이씨는 오랜 기간 한사코 이를 거부했다.

형제와의 관계도 단절된 이씨는 벌금을 내지 못해 몇 개월간 교도소에 복역한 뒤에도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다시 최씨의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최씨의 지속적인 설득으로 이씨는 어렵게 마음의 문을 열었고, 동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한 뒤에야 이씨의 주민등록이 20년이나 말소된 것을 뒤늦게 알았다.

4개월 넘게 월세를 밀리며 수중에 한 푼도 없던 이씨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데 따른 과태료 8만원도 최씨의 도움으로 납부해야 했다. 이씨의 건강 상태는 극도의 영양 부족에 저혈압과 당뇨, 젊은 치매, 장기간의 알코올 중독에 따른 베르니케 증후군도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이씨는 현재 서울시의 긴급 생계비와 주거비 약 80만원을 두 달간 지급받고, 정부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절차를 밟는 중이다. 구청의 도움으로 병원 검사비와 하루 두끼의 돌봄SOS도시락도 지원받고 있다.

이씨는 통장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고, 돈을 인출하는 방법도 모를 정도로 고립된 위기가구였다. 최씨의 지속적인 관심이 없었다면, 이씨가 고독사를 당해도 오랜 기간 아무도 모른 채 방치됐을 가능성이 크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송파 세모녀 6주기 및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추모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송파 세모녀 6주기 및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추모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 이웃 관심 절실…편의점·고시원 '명예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송파 세 모녀', '창신동 모자', '수원 세 모녀 사건' 등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회 복지 전담 공무원의 업무만으로는 복지 사각지대 고리를 끊을 수 없고, 이웃의 관심이 절실하다.

이에 서울 자치구에서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도봉구에서는 약국, 편의점, 고시원, 배달업 종사자 등 생활업 종사자 169명이 '명예사회복지공무원'으로 활동한다. 이웃과 마주할 기회가 많은 생활업 종사자의 참여를 통해 위기가구를 발굴하자는 취지에서다.

20년 넘게 고시원을 운영 중인 최씨는 "능력 있고, 살 만한 사람들은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며 "월세를 밀린다고 쫓아내면 그 사람의 인생은 더 낙오되지만 관심을 갖고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면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도봉구 방학2동에서는 동네 슈퍼 주인의 관심으로 일평생 무호적자로 살아온 할머니가 70여년 만에 주민등록을 취득하고 맞춤형 복지 제도를 지원받게 된 사례도 있다. 

슈퍼 주인이 지난해 10월 할머니와 함께 코로나19 상생 국민지원금을 신청하러 갔다가 어르신의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올해 1월부터 사회복지 전산관리번호를 부여해 생계비, 기초연금 등 맞춤형 복지 지원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어릴적 고아원에서 자라다 화교 부부에게 입양됐고, 양부모 곁을 떠나 여러 곳에서 가정부 일을 하며 지내다가 사실혼 관계자의 배우자를 만났다고 한다.

수년 전 배우자와 자녀의 도움으로 가족관계등록을 시도했으나, 고령으로 고아원 이름조차도 기억을 못하는 등 절차에 필요한 각종 서류 준비에 어려움을 겪어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 캠페인(성동구 제공).
복지 사각지대 발굴 캠페인(성동구 제공).

◇ 성동구, 2인1조 돌봄인력 활동…위기가구 제보하면 포상금

성동구에서는 지난 2월부터 '중장년 전담 돌봄 인력' 2명이 활동하고 있다. 올 연말까지 성수2가1동에서 시범 운영 중인 이 사업은 2인1조로 고시원, 반지하, 다세대 주택 등 주거 취약 지역을 방문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 홍보물을 전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동주민센터 복지팀으로 연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부동산이나 고시원, 약국 등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곳을 방문해 복지 사업을 설명하고 구청이나 동주민센터에 연계해 달라고 안내를 하고 있다.

매일 지역의 골목길을 누비며 고독사 위험가구를 발굴하고 정부 지원을 연계하려고 해도 도움을 거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중장년 전담 돌봄 인력'으로 활동 중인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 낙인 효과를 우려해 거부하는 분도 있고, 자녀에게 행여나 피해를 줄까봐 정부 도움을 꺼리는 어르신도 있다"며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을 좀 더 쉽게 요청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동구는 주민들의 더 많은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위기가구 신고 포상금'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지원이 필요한 가구를 발견해 신고한 주민에게 신고 1건당 5만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동일 제보자일 경우 연 10만원 이내)을 지급한다.  

이 제도를 통해 지난 1월에는 주거지 내 주방이 없어 매번 컵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해 영양 결핍이 우려되는 60대 위기가구 B씨가 발굴되는 등 지금까지 총 5건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junoo568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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