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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확장] 다 하지 못한 말-고백

(서울=뉴스1)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우리학교' 감독 | 2022-08-13 11:12 송고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 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영화 '우리학교'(2016)의 포스터 © 뉴스1
 
영화 '우리학교'는 다큐멘터리이다. 극장과 공동체 상영을 합쳐 약 12만명이 봤다. 연출자인 필자 스스로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워낭소리'가 나오기 전에는 다큐 흥행 기록이었다고 한다. 일본 홋카이도 삿뽀로시의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1년을 촬영했다. 준비와 촬영, 편집까지 약 4년 이상이 걸렸다. 영화 제작의 어려움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만큼 주인공들과 깊고 오래 사귀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영화를 오래 찍다 보니 처음의 주인공이 나중에는 조연이 되거나 아예 어떤 인물은 편집에서 몽땅 들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고백은 어쩔 수 없이 편집에서 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한 조선 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기, 그 시간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나 영화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우리학교' 촬영 당시 2014년의 조선 학교 아이들 © 뉴스1

주인공 집단은 고3이었다. 모두 21명. 그들의 1년을 따라가며 재일민족교육, 조선학교, 우리학교를 내부에서부터 보여주자는 의도였다. 그중에서도 리애(가명)는 유난히 눈에 뛰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밝고 명랑했지만 조금 말투가 달랐고 어딘지 보살핌이 필요한 듯 보였다. 그냥 지나쳐 보면 모를 수 있지만 오래 함께 있으면 티가 났다. 리애는 고3인데 수학 시간에는 초급부(초등학교에 해당) 6학년에 해당하는 내용을 공부한다. 선생님이 따로 지도한다. 방과 후에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리애와 상황이 비슷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또 다니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학습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홋카이도 외의 지역에 조선학교도 가보고, 동포들의 각종 대회, 세미나, 집회에도 쫓아 다녔다. '무지개회'라는 조직이 있었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장애인 아이의 부모님들이 모인 곳이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어머니 대회'(재일조선여성동맹에서 주최)에서 무지개회 소속의 한 어머니의 발표가 눈에 띄었다.

"조선 사람인 우리 아이는 장애까지 있어서 처음에 일본 학교에 보냈지만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학교(조선학교)는 그런 우리 아이가 무사히 고급부까지 졸업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홋카이도 조선학교에서도 그런 사례는 종종 눈에 띄었다. 이 학교는 옆 마을의 특수학교와 결연을 맺고 있다. 해마다 몇 번씩 특수학교 초등생 아이들과 소풍도 간다. 그날 동행 취재를 했다. 특수학교 선생님의 말이다.

"신기하게도 우리 아이들이 조선 학교 언니, 오빠들을 잘 따릅니다. 조선 학교에서 어떤 특별한 교육을 하는지 모르지만 언니, 오빠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우리 아이들을 잘 이해해주는 것 같고 정말 잘 놀아주는 것 같아요."

이런 사례들을 경험하면서 필자는 조선 학교의 교육 시스템을 관찰하고 내 나름의 추론을 해 보았다. 나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드는 순간은 고3 학생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리애를 어떻게 생각해?"

"리애는 우리 학급의 보물입니다. 리애가 없었으면 우리 학급이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학급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10명의 고3을 인터뷰했는데 모두 같은 답이 돌아왔다. 한 학년에 한 학급밖에 없는 조선학교(도심의 큰 조선 학교를 제외하면 대략 그렇다)는 학교가 넓은 지역에 하나뿐이기 때문에 초급, 중급, 고급부가 병설인 경우가 있다. 이 학교가 그 경우다. 그래서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라고 한다. 초급 1학년으로 입학하면 중간에 일본학교로 전학 가지 않을 경우 고급부 졸업까지 12년을 함께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코흘리개 시절부터 다 큰 청년이 될 때까지 일생의 반 이상을 함께 지내는 것이다. 홋카이도 우리학교의 고3, 21명 중에 일본학교에서 중간에 전학 온 친구들 서너 명을 빼면 그렇다.

주인공들의 졸업. 졸업식 현장에는 일본 학교로 전학갔던 동무들이 함께 했다. © 뉴스1

리애도 초급 1학년 때부터 함께 자랐다. 초급부 시절, 다른 친구들은 처음에 수업 중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리애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멀리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리애를 보살피는 친구도 있었지만 귀찮게 여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중급생이 되었다.

어느 날 한글검정시험이 있었다. 조선 학교의 시스템은 집단주의다. 시험 성적도 클럽(소조)활동도 생활도 모두 집단주의에 입각한다. 나의 성적이나 우승, 발전이 아니라 집단 즉, 우리 학급의 그것이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 학급 평균이 다른 학급보다 좋아야한다. 그래서 성적이 좋은 친구와 떨어지는 친구가 짝을 지어 공부를 한다. 떨어지는 친구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성적 좋은 친구의 맡은 바 임무다. 조선 학교만의 특별한 문화다.

학급 회의를 했다. 어떤 아이가 이번에 학급 평균 성적이 참 중요하니 리애를 시험에서 면제해 주자는 의견을 냈다. 일면 타당했다. 리애는 조금 특별한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때 혜연이가 손을 들었다.

"리애도 우리 학급이다. 시험을 치는 게 당연하다. 어렵겠지만 내가 리애의 성적을 올려 보겠다."

만장일치로 혜연이의 의견이 통과되었다. 그날부터 한 달간 리애와 혜연이는 꼭 붙어서 수업 시간이고 방과 후고 할 것 없이 한글검정시험에 매달렸다고 한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리애는 학급 21명 중에 2등이었다. 그해 전 조선고급학교에서 홋카이도 아이들은 1등을 했다.

인터뷰를 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에피소드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초급부 시절에 리애가 수업 중에 막 소리를 지른 것도 다른 친구들과 달리 자기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리애도 우리를 보고 있었다고"

"12년을 함께하다 보니 그 녀석의 단점도 알지만 장점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사람을 첫인상으로 판단하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잘 알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나는 아이들의 인터뷰와 리애의 촬영 장면들을 영화에 넣었다. 재일민족교육을 소재로 다룬다는 일이 자칫 '민족애'만을 자극해서는 내가 본 것이 너무도 많고 값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교육이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조선 학교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봐 주기를 바랬다.

영화는 부산영화제에서 첫 상영했고 상도 탔다. 이후 프로듀서와 함께 홋카이도로 달려갔다. 약 200명의 홋카이도 동포들, 아이들의 부모님들, 당사자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울고 웃었다.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사건은 그날 일어났다.

리애의 어머니께서 보자고 했다. 기쁜 마음으로 교장실로 갔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리애의 장면을 모조리 삭제해 달라는 것이다. 영문을 모르고 당황한 나에게 "나는 한 번도 리애를 장애인으로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이 함부로 리애를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입니까?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영화의 내레이션에서 감독 자신의 목소리로 리애를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리애는 학습 장애가 있다. 그래서 같은 수업 시간에도 리애는 따로 초등학교 과정의 학습장을 펼친다.'

어머니에게는 이 '학습 장애'라는 말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에서 리애를 결과적으로 어떤 아이로 묘사하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교장 선생님과 상의했다. 나의 주의가 너무 부족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둘러 일본 전역에 뿌린 시사용 필름을 거두어들였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다시 어머니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나의 잘못을 빌었다. 그리고 리애 장면을 삭제하고 재편집해 개봉했다.

세월이 조금 흐른 후 리애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전문대학에 들어갔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대학 생활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많이 아프지만 부끄러운 기억이다. 조선 학교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아프고 특별함을 '장애'로 표현한 나의 낮은 인권 의식, 부주의함 때문에 부끄럽다. 이제는 조금 성장했다고 믿지만 그때 어머님의 엄중한 꾸짖음이 아니었으면 20년을 넘게 동포들과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동시에 그 세월 동안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조선 학교가 단지 '재일민족교육'에 그치지 않고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김명준 조선 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감독

덧붙임 : 재일동포들의 홋카이도, 오사카, 후쿠시마 등 일본 지역의 표기법은 혹가이도, 오사까, 후꾸시마 등이다. 윗글에서 지역명은 한글맞춤법에 따라 홋카이도 등으로 표기했고, 학교의 정식명칭을 말할 때는 '혹가이도'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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