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 생활/문화 > 문화일반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내 인생의 '피시앤칩스'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2-08-04 12:10 송고 | 2022-08-05 08:39 최종수정
피시앤칩스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내가 '피시앤칩스'를 처음 먹어본 것은 서울 조선호텔 '오킴스'에서였다. 1990년대 초반,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5년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회사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갔다.

'영국 사람들이 대대로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이 음식을 한번 맛봐야 한다.'

잔뜩 기대했다. 그러나 피시앤칩스와의 역사적인 첫 만남은 불쾌함으로 끝나고 말았다. 영자 신문지에 둘둘 싸여 나온 피시앤칩스의 첫인상은 느끼하다는 것이었다. 느끼함이 너무 강해 하얀 생선살을 음미할 여지가 없었다. 절반도 못먹고 남겼다.

오킴스는 아이리시 펍(Irish Pub)이었다. 그 뒤로도 오킴스를 여러 번 갔었다. 피시앤칩스를 더 먹어볼 기회가 있었지만 고개를 돌렸다. 그날 이후 최소 10년 이상 피시앤칩스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PEI)에 출장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리학 용어인 '초두효과'(初頭效果)가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반지의 제왕'과 비틀스의 '페니 레인'

판타지 문학의 아버지는 '반지의 제왕'의 작가 J.R.R. 톨킨(1892~1973)이다. '반지의 제왕'만큼 세계문학을 비롯해 영미 문화권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도 찾기 힘들다.
  
두 번째 영화 시리즈인 '두 개의 탑'에 보면 반지 운반 대원인 샘이 골룸에게 이렇게 말한다. "황금빛의 맛 좋은 감자칩과 생선 튀김, 너도 좋아하게 될 거야."

톨킨은 영국 식민지이던 남아공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자랐다. 뼛속 깊은 영국인이다. 옥스퍼드대 중세문학 교수이면서 문헌학자인 톨킨이 굳이 등장인물을 통해 피시앤칩스를 상기시킨 까닭을 생각해 본다.

리버풀 '페니 레인' 거리 안내판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비틀스의 히트곡 중에 1967년에 발표된 '페니 레인'(Penny Lane)이 있다. 페니 레인은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살던 영국 리버풀에 있는 작은 거리다. 이 노래에도 피시앤칩스가 나온다.
  
"Penny Lane is in my ears and in my eyes (페니 레인은 내 귀와 눈에 있어요) / A four of fish and finger pies (4페니짜리 피시앤칩스를 먹던) /In Summer, meanwhile back~(한여름으로 잠시 되돌아가요~)"

'페니 레인'은 워낙 유명한 곡이라 온라인에 여러 버전의 번역판이 떠돈다. 문제는 'A four of fish'의 번역이다. 영국의 속어로 '4페니짜리 피시앤칩스'를 뜻한다.

이런 속어를 모르는 사람은 피시앤칩스라고 번역하지 못한 채 엉뚱한 말을 한다. 어떤 음식이 속어로까지 변형되어 유통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피시앤칩스가 얼마나 영국인의 생활 속에 깊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페니 레인은 비틀스 팬들이 반드시 찾는 리버풀의 명소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부분은 피시앤칩스 값을 4페니라고 했다는 대목이다.

페니는 100분 1 파운드다. 1960년대 피시앤칩스가 얼마나 싼 값에 팔렸는지를 미뤄 알 수 있다. 재료인 생선과 감자가 그만큼 흘러넘쳤다는 뜻이리라. 맛있고 영양가도 있는데, 값은 싸다. 더 이상 설명은 사족이다.

도로변의 테이크아웃 전용 피시앤칩스 가게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감자의 유럽 정착史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감자는 남미 페루가 원산지다. 스페인 정복자가 남미에서 스페인으로 '괴상하게' 생긴 채소를 들여왔다. 그 이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울퉁불퉁 못생긴 감자를 놓고 웃지 못할 수많은 사건이 벌어졌다.

심지어 감자에 악령이 스며있다는 괴담까지 그럴듯하게 돌았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왕은 굶주리는 백성을 살리기 위해 감자 먹기 장려 운동을 펼쳤고, 결국 인구를 늘리는 데 성공했다. 오죽하면 그를 '감자 대왕'이라 불렀을까.

북부 변방에서 출발한 프로이센이 세력을 넓혀 독일을 통일할 수 있었던 데는, 그 뿌리를 파고들면 감자의 지분도 상당하다.

우여곡절 끝에 감자는 척박한 아일랜드로 흘러 들어가 섬나라 아일랜드의 주식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감자밭에 전염병이 돌면서 감자가 썩어버렸다. 감자 흉년이다. 이것이 '아이리시 엑소더스'로 이어졌다.

피시앤칩스가 여전히 신문지처럼 인쇄된 종이에 싸여 나오는 것은 이 음식이 블루칼라·서민음식으로 출발했다는 뜻이다. 1860년대 맨체스터에서 최초로 피시앤칩스 전문 식당이 문을 열었다.

감자튀김을 프렌치 프라이라고 한다. 벨기에 브뤼셀에 가면 감자튀김을 먹지 않고는 못 배긴다. 벨기에인은 감자튀김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 같다. 벨기에와 프랑스는 여전히 감자튀김 원조 논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렇게 감자의 역사는 곧 유럽 음식의 역사와 일정 부분 포개진다.

호주 애들레이드의 피시앤칩스

피시앤칩스에 대한 나의 인상이 완전히 바뀐 것은 2007년 호주에서다.

'이민 특집'을 취재하기 위해 호주의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 애들레이드를 돌며 교민들을 만났다. 애들레이드에서 취재가 다 끝났을 때 교민이 "애들레이드에 왔으니 명소를 한번 구경하시라"며 안내한 곳이 세마포어(Semaphore) 비치였다.

애들레이드 중심가에는 세마포어 비치를 오가는 기차가 있다. 고풍스러운 기차를 타고 10여분 달리니 세마포어 해변이 나타났다. 길쭉하게 뻗은 돌출부두를 걸어보고 해변을 거닐다가 출출해졌다.

길가에는 피시앤칩스 가게가 여러 개 보였다. 벽면의 메뉴판에는 생선 종류와 크기별로 주문을 하게 되어 있었다.

피시앤칩스는 영국과 영연방 국가의 해변가 식당에서 가장 흔한 음식이다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값은 5000~6000원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 생선을 주문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생선 필레를 즉석에서 튀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신문지에 둘둘 싸준 것을 들고나와 해변가 나무 벤치에 앉았다. 첫입을 먹으며 살짝 긴장했다. 느끼함이 전혀 없었다. 담백한 생선살이 입속에서 녹았다. 피시앤칩스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지금도 그때 먹었던 피시앤칩스 맛이 잊히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먹었기 때문일까. 맛없는 것은 어디서도 맛없다.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왜 오킴스에서 맛본 피시앤칩스는 내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을까.

나의 결론은 튀김반죽과 기름 때문이다. 기름 범벅으로 내놓는 피시앤칩스에서는 누구라도 맛을 음미하기 어려울 것이다.  

2018년 호주의 저명한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1914~2018)이 104세를 일기로 스위스 바젤에서 안락사로 눈을 감았다. 구달 박사가 기나긴 인생 항해를 끝내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맛본 음식은 피시앤칩스와 치즈 케이었다.

구달 박사는 영국 태생으로 1948년 호주로 이민 와 평생을 과학자로 살았다. 100세를 넘어서도 연구 활동을 했고 전문지를 편집했다.

해산물이 풍족한 호주에 살면서 고향의 맛인 피시앤칩스를 얼마나 많이 먹었겠는가.

그랬으니 최후의 식사로 주저 없이 피시앤칩스를 골랐으리라. 언젠가 천국에서 구달 박사를 만나면 묻고 싶다. 그때 먹어본 피시앤칩스 맛이 어땠는지를.


author@naver.com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