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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수의 일본읽기]바이든과 첫 회담서 '적극 외교' 선보인 기시다

'미국 뒤에 숨어 평화·안전 보장받는 시대 끝났다' 인식
美 '아시아 질서 재구축'에도 호응… 구심력 높아질 듯

(서울=뉴스1)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 2022-05-30 06:05 송고 | 2022-05-31 08:23 최종수정
편집자주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도쿄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와세다대학과 도쿄대학에서 객원교수를 지낸 명실상부한 '일본통'이다. 지난 2015년 국내 외교·안보 분야 대표적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 제9대 소장직을 3년간 역임했다. 기시다 후미오 시대를 맞아 한일관계 뿐 아니라 일본의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기대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 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순방은 한국과 일본에서 '쟁점'이 달랐다. 한국에선 한미동맹의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외교를 통해 실리를 챙겼다. 반면, 일본에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전략'을 구체화하면서 중국을 압박하는 데 중점을 뒀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삼성전자에서 시작해 현대자동차에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기술동맹을 더 발전시킨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론 한국 기업들을 미국 진영에 묶어두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물론 한국도 많은 것을 얻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바이든 대통령과의 소통을 통해 한미동맹의 가치를 재강조하며 문재인 대통령 시기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었다.

이후 22일 일본으로 건너간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에서와 달리 일본 기업을 찾진 않았다. 대신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에서 '21세기 경제의 큰 그림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그리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구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3일엔 자국을 포함해 한국·일본·인도 등 13개국과 함께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시동을 선언했다. 미국이 경제 분야에서도 중국에 맞서 아시아 질서에 관여하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IPEF는 아직 문자 그대로 '프레임워크'일 뿐이다. 미국은 '자유무역이 고용을 위협한다'고 경계하는 여론을 배려해 관세 인하 등은 이번 IPEF 협의에서 제외했다. 따라서 수출 확대를 기대하는 동남아시아 국가 등이 IPEF에 적극적일지는 의문이다. 또 지지율 침체에 시달리는 바이든 정권이 다자 간 합의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그래도 미국은 '방관'보다 '실질적 관여'를 선택했다. '법의 지배' 등 공통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국가에 반도체란 전략물자를 의지하면 안보 리스크와 직결된다고 본 것이다. 미국은 IPEF를 통해 데이터 유통이나 공급망 혼란에 관해서도 조기경계 제도 등 새로운 룰(규칙)을 만들어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동을 억제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이번 바이든 순방의 또 하나 최대현안은 '대만 유사시 대응'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일정상회담에서 대만 유사시 "중국이 힘으로 대만을 통일하는 걸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언해 일본을 놀라게 했다. 중국이 '대만 통일'을 목표로 하는 한 그 가능성이 '제로'(0)는 아닐 것이다. 올가을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연임을 결정하면 다음 5년 통치기간 중엔 '대만 통일' 목표에 훨씬 더 무게가 실릴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은 군사·경제 양면에서 대비를 서두르며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부상하지 않도록 강한 억지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도 이런 미국의 위기의식에 선제적·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는 일본 또한 '미국 뒤에 숨어 평화·안전을 보장받는 시대는 끝났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일본은 23일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스스로 미일동맹의 억지력·대처력을 확대하고자 노력했다. 일본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온 데는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관여를 '최대한'으로 이끌어내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미국이 미일안보조약에 따라 일본을 자동으로 지켜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번 미일정상회담에서 방위비의 상당한 증액과 함께 '반격 능력' 등 군사력 강화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으로부터 자국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일본 스스로 자립적 억지력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억지력은 군사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러시아를 향한 미국·유럽의 경제제재에 러시아 측은 '에너지 공급 중단'으로 대항하고 있다. 경제와 안보는 밀접 불가분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자료사진> © AFP=뉴스1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자료사진> © AFP=뉴스1

이와 관련 일본은 국내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해 에너지 공급 불안을 줄이고, 전략적 물자를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도록 공급망을 조정하고자 했다. 중국산 물자 등의 수입을 멈추더라도 경제 분야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본은 이외에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몇 가지 더 얻어낸 게 있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핵을 포함한 군사력에 의한 확장 억제를 재보장 받았다. 또 일본은 미일 경제각료회의를 정기화하기로 하면서 액화 천연가스 등 에너지 안보에 대한 미국의 지원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중국의 강권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단 위험을 인식해 일본이 기민하게 준비한 것이다.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염원과 관련해서도 미국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는 미일 양국 간에 '중국 압박·견제' 심리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지만, 일본 스스로가 만들어낸 성과이기도 하다.

나아가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고향 히로시마(廣島)에서 여는 것에 동의했다. 최근 핵위협이 현실이 되면서 '핵무기 없는 세계'의 의의를 히로시마에서 호소하겠단 일본의 계산이 적중한 것이다. 평화를 요구하는 이념을 상징하는 '히로시마 서밋' 개최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구심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처럼 바이든 대통령의 첫 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양국이 함께 국제적 현안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기시다 총리가 내건 이른바 '신시대 리얼리즘' 외교에 미국이 한 발짝 다가서면서 일본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국 주도의 아시아 질서 재구축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미중 간 전략경쟁은 한층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를 지켜보는 한국의 전략적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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