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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장 쿨한 수출품? 'K팝' 아니고 '막걸리'-CNN

돌아온 '막걸리' 열풍…5년간 시장 50% 넘게 커져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2022-05-23 16:10 송고
23일(현지시간) CNN 홈페이지에 막걸리 관련 기사가 메인으로 올라온 모습.(CNN 캡처) © 뉴스1

"여학생들이랑 놀 때는 맥주를 마시고, 남자애들끼리 있을 땐 막걸리를 먹었죠"

1989년 김경섭씨(양조기술연구소 전통주 연구원이자 전통주학교 출장강사)가 막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막걸리 반 갤런(약 1.8ℓ·막걸리 2.5통)은 400원 돈이었다. 이처럼 '맛'보다는 순전히 '저렴한 가격'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아온 막걸리는 최근 K-팝의 뒤를 잇는 한국의 대표 수출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CNN은 막걸리의 최신 유행에 앞장서는 한 양조장 대표와 양조를 배우러 한국에 온 외국인들의 인터뷰를 실으며 소주와 맥주의 아성을 흔드는 막걸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짚었다.

◇1000년 전통 이어왔지만 '일제강점기' 때 쇠퇴…소·맥에 자리 뺏겨

막걸리는 바로 지금, 갓을 뜻하는 '막'과 '거른다'의 합성어다. 이 단어는 조선시대 후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백과사전 '광재물보'에 처음 등장하지만, 막걸리와 유사한 형태의 술은 천여 년 전부터 소비된 것으로 보인다.

막걸리가 이토록 오래 사랑받아온 이유는 단순함에 있다. 쌀밥과 효모, 물을 혼합해 진흙 항아리에 넣고 몇 주 동안 발효시키면 위는 맑고 아래는 우윳빛의 전통술이 탄생한다. 한국 전역의 각 가정에서는 각자만의 독특한 조리법으로 막걸리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며 막걸리를 비롯한 가내 수공업은 종말을 맞았다.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 정부는 일본의 주류 제조업자들을 위해 국내 양조업자들을 단계적으로 말살시켰다.

모든 주류 제조에는 세금이 부과됐고, 심지어 직접 마실 주류를 만드는 데도 면허가 필요했다. 1934년에 이르러서는 양조업 자체가 금지됐다.

해방 이후에도 양조업에 대한 탄압은 이어졌다. 1960년대에는 식량난이 심해지자 막걸리의 핵심 재료인 쌀을 이용한 주류 생산이 금지됐다.

많은 양조업자는 쌀 대신 밀과 보리를 사용해 술을 만들었고, 막걸리의 인기도 점차 떨어졌다. 막걸리의 자리를 대체한 건 에탄올을 희석해 만든 현대식 소주다. 1980년대 들어 쌀 공급이 소비를 앞지르자 쌀을 이용한 술 생산도 허용됐지만, 이미 많은 전통이 사라진 뒤였다.

◇전통주 전문가·정부 등 노력으로 옛 명성 가까스로 되찾아

막걸리를 거르는 모습. 문화재청 제공

잃어버린 막걸리 양조 기술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박록담 전통주 명인(한국전통주연구소장)과 같은 선구적인 연구자들의 노력이 컸다. 박 명인은 30년 동안 한국 전역을 여행하며 막걸리 제조법을 수집하고, 오래된 기술을 재현했다.

정부도 전통주를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받아들이고, 잠재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산업으로 인식하며 이전 정책의 방침을 뒤집었다.

2016년 정부는 소규모 양조장과 증류소의 양조 탱크 크기 요건을 5000ℓ에서 1000ℓ로 변경, 진입장벽을 대폭 낮췄다. 이듬해에는 전통주에 한해 온라인 주류 판매 제한을 풀어 소비자가 직접 온라인에서 전통주를 구매할 수 있게 특혜를 부여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막걸리의 온오프라인 매출은 급증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전통주 시장 규모는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기 시작한 2017년 400억원대에서 2020년 627억원으로 3년 사이 56% 이상 커졌다. 지난해에도 600억원대를 유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2009년 이후 막걸리 양조 면허 소지자는 43% 증가했다. 김경섭씨는 수강생 절반이 기업가이고 이 중 상당수가 30대 이하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10년 전 대부분의 학생이 50세 이상이었던 것과는 대조된다.

아울러 김씨는 막걸리 양조장을 여는 것이 다른 종류의 양조장을 만드는 것보다 쉽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맥주 양조장 설비가 2~3억원인 반면 막걸리 양조장 설비는 1000만원이면 충분하다"며 "좋은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서 3시간짜리 수업을 4번만 들으면 된다"고 말했다.

◇K-POP보다 막걸리…'유기농' 이미지에 전 세계 수출

울산 울주군 상북면의 김정식·박복순 부부가 방부제나 인공균을 첨가하지 않고 국내산 햅쌀과 누룩, 항아리를 이용, 전통방식으로 제조하는 복순도가 막걸리. /복순도가 막걸리 홈페이지 캡처 © News1

막걸리는 국내 인기에 힘입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추세다. 호주인 줄리아 멜러는 2009년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막걸리의 매력에 빠졌다. 그가 운영하는 술 컴퍼니는 양조장 개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막걸리 수업과 상담을 제공한다. 고객 대부분은 미국, 싱가포르, 덴마크 등지에서 온 외국인이다.

멜러는 막걸리 양조를 배울 때 마땅한 영어 자료가 없어 직접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막걸리 양조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양조를 알려준다. 그는 "집에서 양조하는 것은 매우 쉽다"며 "쌀과 누룩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김민규 복순도가 대표도 막걸리의 재(再)대중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2009년부터 프리미엄 막걸리 양조장 복순도가를 운영해온 김 대표는 자신의 어머니 이름인 '복순'과 양조장을 의미하는 '도가'를 합쳐 브랜딩을 했다.

복순도가의 막걸리는 올해 안에 미국과 오스트리아에서 판매될 예정이며, 이 외의 국가들과도 수출 협의 중에 있다. 김 대표는 "외국 소비자들에게 막걸리는 건강하고, 유기농으로 여겨진다"며 "외국인들이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술"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막걸리가 소주와 맥주라는 견고한 산맥을 넘기 위해선 이미지 변신이 시급하다. 김 대표는 "막걸리 제조사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막걸리가 중장년층을 위한 술이라는 대중적 인식"이라며 "우리도 이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 광고와 마케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막걸리와 페어링할 만한 안주가 '전'뿐이라는 인식도 막걸리 대중화에 큰 걸림돌이다. 김 대표는 "막걸리가 발효음료인 만큼 김치나 치즈 같은 발효 음식과 먹으면 더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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