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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지정학 리스크와 ESG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2-05-16 07:01 송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작년 한 해 동안 국내외 다수 대학들이 ESG관련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올해에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 대학들이 지정학 리스크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해서 론칭하느라 분주하다. 지정학은 오래된 학문 분야여서 이미 학위, 교육과정이 많지만 지금의 추세는 기업 경영자, 관련 전문가들에 초점을 맞추고 ESG와 연계시키는 단기 과정의 개설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에 즈음해서 영국 중앙은행이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57%의 기업경영자들이 지정학을 가장 큰 시스템 리스크로 들었다. 그 전해의 13%에서 급상승한 것이다. 그 다음이 사이버 리스크, 금융위기, 경제불황 순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 숫자를 더 높였을 것이다.

이달 12일, 독일의 지멘스가 170년 만에 러시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에 3천명의 종업원을 둔 지멘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사업을 잠정 중단했는데 그 때문에 1분기에 6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보았다. 이제 영구 철수한다. 지멘스는 1851년에 제정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간 전신시설 부설 공사를 맡았던 회사다. 크름전쟁(1853~56) 때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키이우를 거쳐 세바스토폴까지 전신선을 건설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최고경영자과정을 운영하는 예일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 또는 불참하는 글로벌 대기업들의 리스트를 작성해서 널리 공유하고 있다. 대학답게 아예 A에서 F까지로 학점을 매겼다. F 학점은 동참하지 않는 기업들이다. 리스트 작성과 평점 부여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해당 기업들의 ESG 평가에 반영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도 포함한다. 종래 해외 사업장에서의 인권과 환경 보호, 해당 지역의 사회적 발전 동참 등이 각론이었다. 그런데 모국이 아닌 제3국을 침략한 국가에서 사업을 접는 방식으로 경제제재에 동참하는 것이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는 방편이 맞다 해도 바로 그 조치가 회사의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과 회사 본국에서의 ESG에 부합하는지의 문제가 있다. 러시아에서 철수한 BP는 1분기에 이와 관련 255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이 숫자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BP의 CEO는 ‘장기적 이익’을 위한 부담으로 설명했다.

ESG시대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글로벌 기업들이 무심할 수가 없다. 당장 예일대가 그런 식으로 ‘학점’을 매긴다. 기업활동에 가치를 투사한 것이다. 맥도널드, 넷플릭스, 스타벅스와 같이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는 기업들은 특히 민감하다. 일각에서는 해당 기업의 러시아 내 사업장에서 일하던 임직원들, 지금까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 준 러시아 내 고객들을 버려도 되느냐는 우려를 표한다. 이렇게 지정학은 본의 아니게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 세계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골고루 배려할 수 없는 상황을 발생시킨다.  

국제분쟁과 긴장은 기업환경을 피폐하게 하고 글로벌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글로벌 공급망이 훼손된 것이 증거다. 지정학의 비중이 축소되었던 시기에 기업들은 비교우위에 기초한 국제분업을 최고 수준으로 추구했다. 베스트팔렌체제는 그대로 있는데 기업들은 국적 없는 글로벌 시민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여전히 정치적, 역사적 동기에도 좌우된다는 것이 드러났다. 경제적 번영과 상대적 평화의 시대에 그 사실이 잠시 잊혀졌을 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이 침략국이 국제사회로부터 일제히 지탄받는 경우와 달리 한국이 위치한 동아시아의 지정학은 역사적으로 훨씬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우리 기업의 경영자들과 이사회는 향후 지정학을 더 큰 비중으로 기업 리스크 관리에 포함시켜 다루어야 할 것이고 기관투자자들은 지정학 리스크가 포트폴리오 가치와 ESG에 발생시키는 파장을 감안해 스튜어드십을 정비해야 한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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