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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브로커'까지…황금종려상 감독들의 촬영감독, 홍경표 [N인터뷰]②

(전주=뉴스1) 정유진 기자 | 2022-05-05 09:00 송고
홍경표 촬영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홍경표 촬영 감독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홍경표 촬영감독은 봉준호 감독, 이창동 감독 등 거장들과 함께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써왔다.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2000)부터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 이명세 감독의 'M'(2007)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와 '설국열차'(2016) '기생충'(2019),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까지. 한국 영화 대표작들의 인상적인 순간이 모두 그의 렌즈에서 나왔다. 최근 홍 감독은 해외 거장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는 영화 '브로커'를 함께 했고, '훌라 걸스'(2007)와 '용서받지 못한 자'(2013) '분노'(2017)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과는 '유랑의 달'을 함께 했다. 특히 '유랑의 달'은 현재 개최 중인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섹션에 초청을 받아 관객들을 만났다. 난생 처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는 홍경표 촬영 감독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나 '유랑의 달', 그리고 그밖에 거장들과 진행 중인 신작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 최고 권위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과 연이어 작품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국민 배우 송강호 정도라면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송강호와 함께 제72회 칸 영화제 수상자 봉준호 감독에 이어 제71회 칸 영화제 수상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작품을 하게 된 사람이 바로 홍경표 촬영 감독이다.  

"감독들마다 스타일은 다 달라요. 촬영 감독은 여러 감독들을 만나지만 한 감독을 만나면 그 감독의 스타일을 익히고, 또 다른 감독을 만나면 그 감독의 스타일을 익혀요. 사실 나는 별 거 없어요. 감독이랑 계속 주고 받으면서 경험하고 '이런 걸 원하는구나' 하면서 거기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거예요."

영화 '브로커'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함께 한 홍경표 감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자신과 동갑이라 다른 감독들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제안으로 하려고 했던 작품이나 애초 시간이 맞지 않아 촬영을 맡지 못할 뻔 했다. 그러나 홍경표 감독을 고집했던 고레에다 감독의 의지 덕분에 영화의 일정까지 조율하면서 함께 할 수 있었다.

"나이가 똑같으니(60세) 조금 다른 면이 있었어요. (고레에다 감독은 제게)항상 영화적 동지 같다고 했었죠. 동년배가 갖고 있는 또 다른 느낌, 또 다른 공감대가 있어 그걸 가지고 서로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브로커' 이후 촬영할 '유랑의 달' 이상일 감독에 대해서도 귀띔을 해줬다. 이상일 감독을 '일본의 나홍진'이라 소개한 것. '곡성'으로 나홍진 감독과 함께 했던 홍경표 촬영 감독은 "한국에서 나홍진 감독이 가진 이미지를 잘 모르시는 것 같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계에서 나홍진 감독은 집요할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에 천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랑의 달' 스틸 컷 © 뉴스1
'유랑의 달' 스틸 컷 © 뉴스1


'유랑의 달' 스틸 컷 © 뉴스1
'유랑의 달' 스틸 컷 © 뉴스1

"고레에다 감독이 저한테 그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이상일은 일본의 나홍진이라고. 그런데 막상 이상일 감독을 겪어보니 보통 한국에서 생각하는 나홍진 감독의 느낌과는 달랐죠. 그래도 영화에 대해 집요하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고 찍어나가는 방식은 같았던 것 같아요. 그건 사실 이창동 감독님도 마찬가지에요. 무척 선하게 웃고 젠틀하고 섬세한 이상일 감독이지만 영화를 보면 다르죠."

이창동 감독은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진행되는 특별전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에 참석하기 위해 같은 기간 전주를 찾았다. 홍경표 촬영 감독은 이창동 감독을 지난 밤 전주에서 만났다며 "굳이 만나서 영화 얘기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워낙 친하기 때문에 서로의 눈빛만 봐도 이해하죠. 이창동 감독님은 집도 5분 거리에 살고 있어 거의 2년간 '버닝'을 갖고 서로 얘기를 많이 나눴었어요. 어제 잠깐 만나도 이제는 (먼 산을 보는 듯한 모습으로) '어' 하고 말아요. 그 정도로 친하죠. 이상일 감독님이 이창동 감독님의 광팬이에요. 호노키 상이라고 일본의 프로듀서도 (이창동 감독의) 광팬이어서 어제 소개를 받고 되게 좋아했어요."

때때로 홍경표 촬영 감독은 할리우드 유명한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와 비교가 되기도 한다. 스타일이나 기법적인 면에서는 다르지만, 각자의 업계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예술가로서의 입지와 영향력을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비교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그냥 나만의 어떤 스타일을, 한국 영화의 힘을 계속 보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어요. 빛을 다루는 거죠. 로저 디킨스처럼 막 짜여진 어떤 것보다는 조금 거칠지만 핸드메이드 같고 정교하면서도 투박함이 들어간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 News1 영화 '버닝' 포스터
© News1 영화 '버닝' 포스터

봉준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외에 또 하나 나오는 홍경표 촬영 감독의 차기작이 있다면 현재 프리 프로덕션 중인 우민호 감독의 신작 '하얼빈'이다.

"원래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찍어야 하는데 러시아 전쟁 때문에 그렇게 못하죠. 설경을 찍고 싶어서 찾다가 (시베리아 벌판과) 비슷한 장소를 찾았어요. 올 겨울에 촬영할 장소죠. 우리나라에서 본 적이 없는 외국의 풍경들을 담을 계획입니다."

1998년에 데뷔해 2022년까지 홍경표 촬영 감독은 거의 한 해도 빠짐없이 작업을 이어왔다. 그가 찍은 많은 장면들 중 몇몇 장면의 한국 영화사에 남을 법한 명장면으로 여러 차례 회자된다. 예컨대 '마더'의 엔딩에서 주연 배우 김혜자가 햇볕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장면이나, '버닝'에서 전종서가 노을 빛을 받으며 춤을 추는 장면들이 그렇다. 이 두 장면은 홍 감독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라고.

"사람들이 워낙 이야기를 해서 저 역시 그런 장면들이 기억이 나요. '설국열차' 때 DI(Digital Intermediate) 작업(색 보정 등 디지털 후반 작업)을 할리우드에서 했는데 그때 내가 되게 좋아하는 로드리고 프리에토라는 촬영 감독(영화 '사일런스' '아일리시맨' 등의 촬영 감독)이 작업하는 곳에 와서는 '마더'를 봤다고 엔딩이 너무 좋았다고 해서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요. 로드리고 프리에토는 나도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했던 촬영 감독이라 할리우드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참 좋았죠."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촬영 감독도 알아볼 정도라면, 한국 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거장들과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홍경표 촬영 감독과 비슷한 시기 활동을 시작해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와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아가씨' 등의 촬영을 담당한 정정훈 촬영 감독은 할리우드에 진출해 '그것'과 '호텔 아르테미스' '커런트 워'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언차티드' 등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할리우드 쪽 에이전트와 이야기를 해온 건 이미 몇 년 됐어요. 그런데 계속 한국에서 작품들이, 좋은 작품들이 있다보니 자꾸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지점이 있죠. 계속 제의는 오고 있고요."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감독'이다. 영화는 어쨌든 감독의 것이기에, 감독의 영화 만드는 방식이라든가, 감독이 만든 영화를 좋아했을 때 작품 제의가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생긴다고. 그렇게 작품을 택한 후에는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는다.

"새롭다는 건 어떤 기술적인 게 아니라 조금 정서적일 수도 있고, 감정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소설로 친다면, 어떤 소설을 쓸 때 작가의 문장이 달라지지는 않잖아요. 문장을 가지고 '소설이 새롭다'라고 하지는 않고 단어들이야 뭐 이전에도 있었고 하는 거겠지만 어떤 새로운 느낌이 있는 거죠. '유랑의 다리'도 그래요. 관객들이 봤을 때 '신선하다,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기간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홍경표 감독은 "그냥 현장에 너무 좋다"고 했다.

"항상 현장이 너무 좋고 촬영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어요. 힘들다가도 촬영을 하다가 뭔가 좋은 짜릿함을 느꼈을 때, 그걸로 새로운 엔돌핀이 돌고 확 에너지가 생기죠. 항상 영화를 볼 때마다 '와 영화 진짜 잘 찍는다'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조금 더 다른 작품들을 잘 보게 돼죠."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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