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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할 권리③] "채식 선택권 보장은 건강한 사회 만드는 첫 걸음"

'학교 채식 급식 보장' 인권위 진정 도운 지현영 변호사
"자기 결정권 존중 필요…대화·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2022-05-01 06:30 송고 | 2022-05-13 08:40 최종수정
편집자주 채식은 요즘 '힙'하다. 건강에 좋다고 해서 기후 위기나 동물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MZ세대들의 관심은 날로 커진다. 채식주의자(vegetarian)들이 자신의 식생활을 주변에 고백하기까지 어려움을 담은 '채밍아웃'이란 표현도 이젠 낯설다. 그러나 단체급식이 이뤄지는 학교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일선 교육청이 채식 급식을 확대하고 있으나 완전한 채식을 지향하는 '비건'들에겐 여전히 급식실은 괴로운 공간이다. 정작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다. 육류나 어패류로 채워진 식판을 받아들고 나면 자기 신념마저 침해당한 느낌을 받는다. 채식 선택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뉴스1>은 이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짚어본다.
법무법인 지평 지현영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홈페이지  갈무리) © 뉴스1

"채식 선택권 보장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과정일 수 있어요."

지난해 6월 초·중·고교 학생들의 채식 선택권 보장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도왔던 지현영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채식 급식 확대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채식 식단이 필요한 학생들의 권리를 인정할 때 우리는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논리다.

지 변호사는 뉴스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채식 선택권은 학생들의 양심의 자유나 자기 결정권 및 행복추구권 등을 존중하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채식은 단순한 기호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결정권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지 변호사는 인권위 진정 초기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의 인권에 초점을 뒀다.  

완전한 채식을 지향하는 '비건'은 일률적인 학교 급식으로 인해 식사 때마다 소외되기 마련이다.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육류로 만든 반찬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인데 학교 측은 이들의 먹을 권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학교 내 비건들은 까다로운 학생이라는 편견과 차별 속에 놓이는 것은 물론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는 상황으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인권위는 각 교육청이 채식 급식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 학생들의 건강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채식 선택권 보장과 관련한 진정을 기각했다. 이에 대해 지 변호사는 "슬쩍 발을 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이나 행복추구권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떨어지는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인권위의 결정으로 환경보호나 동물권에 관심이 높은 학생들의 신념과 양심이 무너질 수 있어서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학교에서의 채식 선택권 진정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했을 당시 지현영 변호사(왼쪽에서 6번째). (유기농문화센터 제공) © 뉴스1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학교에서의 채식 선택권 진정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했을 당시 지현영 변호사(왼쪽에서 6번째). (유기농문화센터 제공) © 뉴스1

인권위 진정을 지원했던 채식급식시민연대 역시 인권위의 결정은 실망스럽다고 비판한 바 있다. 비건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건의 개념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교육청의 답변을 인권위가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 변호사는 "인권위가 채식 선택권 보장 문제를 그저 학교장의 재량으로만 남겨둔 것도 한계로 보이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집단 문화로 인해 소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렵지만, 마냥 외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채식 선택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채식 급식 확대로 예상되는 급식 노동자의 업무 증가, 육식 선택권에 대한 보장 요구 등과 같은 갈등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지 변호사의 생각이다.

지 변호사는 "먹거리 전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우리가 그동안 등한시해온 타인의 신념이나 자기 결정권 등에 대해서도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단체 급식에서 채식 식단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더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채식 선택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는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 문제가 먼저 거론된 교정시설이나 군대는 학교보다 더욱 폐쇄적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급식 체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를 감안하면 학교에서 채식 식단을 보장하는 게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생존과 직결된 먹는 문제에 있어 모두가 같은 식단을 제공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문화 가정이 늘면서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특정 음식을 먹지 못하는 학생도 증가 추세다.

지 변호사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보장되고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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