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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레인저가떴다]봄꽃 합창, 금빛 모래산…은빛 파도 속삭인 기적의 땅

<16>하얀꽃비 '우수수' 태안해안국립공원 해변길 2코스 22㎞
해변따라 한국판 사하라사막 신두리, 월드클래스 천리포수목원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2022-04-29 09:00 송고
 
  
천리포수목원. 수선화가 청초한, 곱고 예쁜 그림같은수목원 풍경 © 뉴스1
천리포수목원. 수선화가 청초한, 곱고 예쁜 그림같은수목원 풍경 © 뉴스1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봄은 꽃길마다 공원마다 사람들로 넘쳐났다. 산수유와 매화에 이어 개나리와 진달래와 벚꽃이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만개해 국민들을 ‘코로나 블루’에서 해방시켰다. 이제 벚꽃은 졌고 목련도 지고 있으니 봄꽃 구경은 끝인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식물이 있어(1만6882 종류) 꽃이 계속 피고 지는 ‘명품 가든’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해안에 수목원과는 상반되는 ‘명품 사막’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신두리 사구다. 이 두 명소는 해변길로 연결돼 하루 여행코스로 가성비가 훌륭하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태안의 해변길은 태안반도의 남쪽 끝 영목항에서 북쪽 끝 학암포까지 약 100㎞에 7개 코스로 조성된 길이다. 신두리 사구에서 천리포수목원을 거쳐 만리포까지 연결되는 2코스는 들쑥날쑥한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여러 해변과 마을을 통과하며 뚝길과 산길, 오솔길과 아스팔트길을 걷는 코스다. 22㎞의 장거리에 6~7시간을 땡볕 아래서 걷는 ‘약간 빡센’ 코스이지만, 다양한 풍경과 이야기가 있어 지루하지 않다.
 
2코스의 이름은 소원길이다. 이곳의 지명이 소원면이기도 하고, 이 코스의 앞바다에서 2007년 기름사고가 발생해, 사고의 피해로부터 어서 회복되기를 바라는 ‘소원’길이기도 하다.

◇ 신두리 사구. 길이 3.4㎞, 최대 너비 1.3㎞ “한국의 사하라 사막을 걷다”  

신두리 사구 전경. 가까이 막 새잎을 틔운 해당화. 멀리 신두리 바다와 맨 끝의 학암포 © 뉴스1
신두리 사구 전경. 가까이 막 새잎을 틔운 해당화. 멀리 신두리 바다와 맨 끝의 학암포 © 뉴스1


태안터미널에서 출발한 농촌버스는 도로에서 벗어난 20여 개 마을을 이리저리 다 들려 1시간쯤 뒤에 신두리 사구센터 앞 주차장에 도착한다. 10분쯤 걸어 사구의 중심 언덕에 올라 바다 10%, 모래 90%의 풍경을 바라본다. 썰물 끝이라 바닷물이 저 멀리 물러가 있다.

신두리에서 사람들은 동심으로 돌아간다. 모래에 발자국을 내고, 그림을 그리고, 발로 차고, 냅다 달린다. 모래와 파도의 경계선에선 팔딱 팔딱 뛴다. 아이들은 더욱 난리다. 모래성을 쌓고, 모래싸움을 하며 모래범벅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놀이터다.

사구(沙丘)는 모래언덕이다. 강에서 바다로 흘러든 모래가 파도에 의해 바닷가에 펼쳐지고, 이 모래가 바람에 날려 언덕을 이룬 것이다. 사구는 거친 바다환경으로부터 육지를 보호하는 방패가 되고, 모래를 통과한 빗물이 깨끗한 지하수가 되어 주민들이 이용하며, 아름다운 해변풍경을 연출하는 등 좋은 기능이 많다.

그러나 강과 바다에서 모래를 과도하게 채취해서, 사구에 모래가 공급되지 않아 모래언덕이 깎이고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자 거기서 모래를 붙잡고 있던 식물들이 사라지고, 소나무와 전봇대가 쓰러지고, 파도와 해풍이 직접 농경지와 거주지에 피해를 입혔다.

국립공원사무소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낸 끝에, 대나무 울타리를 사구 앞에 설치해서 모래가 날아들어 오되, 나가지는 못하게 하자, 결국 모래가 쌓이고 그 위에 사구식물이 정착하면서 다시 모래언덕이 생겼다. 지금은 우리나라 해안 전지역에서 이 ‘비법’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사하라사막 신두리 사구의 뷰 포인트. 낙타가 지나가도 될 풍경이다 © 뉴스1
한국의 사하라사막 신두리 사구의 뷰 포인트. 낙타가 지나가도 될 풍경이다 © 뉴스1

사구는 모래환경에 적응한 ‘희귀한 생물들’의 서식처이다. 신두리의 모래언덕엔 ‘갯(물가)’으로 시작하는 갯메꽃, 갯그령, 갯쇠보리, 갯방풍, 그리고 ‘모래밭의 장미’ 해당화가 잘 자라고 있다. 운이 좋으면 표범가죽을 뒤집어쓴 듯한 표범장지뱀을 보거나, 인근의 두웅습지에서 금빛 줄무늬가 있는 금개구리를 볼 수도 있다.

이 모래언덕에서 가장 유명했던 생물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소똥구리다. 소의 똥을 떼어내 동그랗게 빚어 굴리던 이 진귀한 곤충을 복원하기 위해 사구의 한 쪽에서 소 세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사료가 아니라 자연의 풀을 먹고 배설을 해야 소똥구리가 먹이로 삼는다.

표범장지뱀. 모래밭에 굴을 파고 서식하면서, 곤충과 애벌레, 거미 등을 먹고 산다. 서식지 축소와 교란으로 멸종위기종이다. 사진 송재영 © 뉴스1
표범장지뱀. 모래밭에 굴을 파고 서식하면서, 곤충과 애벌레, 거미 등을 먹고 산다. 서식지 축소와 교란으로 멸종위기종이다. 사진 송재영 © 뉴스1

◇ 신두리-의항-천리포-만리포 22㎞ “옥빛 푸른 바다, 검게 반짝이는 갯벌”

신두리를 빠져나가 뚝방길을 통과해 닿은 소근진 마을에 봄이 가득하다. 조선시대에 왜구의 침입을 막으려 쌓은 소근진성의 밑에 있는 동네다. 펜션과 까페, 집집마다 복사나무, 앵도나무, 배나무. 동백나무, 벚나무에 갖가지 색깔의 꽃들이 만개했다. 마을을 벗어난 오솔길과 들판, 빈터에도 민들레, 제비꽃, 봄까치꽃, 꽃잔디 등이 땅을 덮었다. 밟고 가지 않으려니 발걸음이 늦는다.

기다란 방조제의 차도를 따라가며 물 빠진 갯벌에 여러 개 갯골이 굽이굽이 에스(S)커브를 그리며 바다를 향해 가는 모습을 본다. 내가 어류라면 그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앞질러 가던 자전거 여행자가 돌아나와 내게 이 길이 태배로 가는 길이냐 묻는다. 그렇다고 답하는 나와 그의 눈이 마주치며 여행자끼리의 교감이 오고 간다. 그는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말을 하고 싶어서 내게 온 것이리라.  

서둘산이라는 얕으막한 산을, 땡볕을 피해 ‘서둘러’ 들어가니, 곰솔 그늘 아래에 바람이 선선하다. 진달래 산길을 20분쯤 걸어, 다시 해안으로 내려와, 긴 제방길을 걸어 의항항에 이른다. 항구라기보다는 아담한 포구다. 지형이 개미의 목처럼 가늘어 ‘개미 의(蟻)’자를 쓰고, 개목마을로 부른다. 이 마을엔 빨래줄에 생선들이 속옷처럼 널려 있다. 갈매기들이 저 음식들을 그냥 둘까?

작은 고개를 넘어, 신너루 해변을 지나, 안태배 해변에서 잠시 멈춘다. 손바닥만한 하얀 해변과 바다 사이에 얕은 돌담으로 얕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바닷물이 들어올 때 왔던 물고기가 물이 빠질 때 이 돌담에 막혀 잡히도록 설치한 독살이다. 

신너루 해변의 풍경. 낚시를 하기 위한 다리를 설치하고, 그 위에 이글루같은 방갈로를 설치했다 © 뉴스1
신너루 해변의 풍경. 낚시를 하기 위한 다리를 설치하고, 그 위에 이글루같은 방갈로를 설치했다 © 뉴스1

곧 태배 전망대에 오른다. 태배는 중국 최고의 시인 이태백이 이곳의 절경에 취해서 시 한 수를 읊고 갔다는 전설로 생긴 지명이다. 어떤 절경을 보았을까? 바닷가의 얕은 기암괴석과 망망한 옥빛 바다가 아름다운 풍경임에는 틀림 없지만, 이태백의 시심(詩心)으로 본 절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하다.

서쪽으로 희미하게 칠뱅이라고 부르는 7개의 섬이 올망졸망 떠 있다. 저 섬들이 군함으로 변해 왜구를 물리쳤다니, 얼마나 왜구의 침입에 진절머리가 났으면 그런 소망을 했을까? 애국심이 솟아오른다.

전망대 건너 북쪽에 신두리 해변이 코 앞이다. 신두리를 출발해 3시간 넘게 빡세게 걸었는데, 아직도 신두리 앞에 있으니 기운이 빠진다. 손가락의 끝에서 쑥 들어가 다음 손가락의 끝으로 나온 것이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았다. 

태배 전망대에서 바라본 옥빛 서해바다. 수평선 끝이 2007년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점이다 © 뉴스1
태배 전망대에서 바라본 옥빛 서해바다. 수평선 끝이 2007년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점이다 © 뉴스1

여기부터 해변길은 너른 신작로다. 승용차 몇 대가 비포장길에서 먼지를 폴폴 일으켜, 나는 옆으로 피한다. 이 길은 본래 오솔길이었는데 기름 제거를 할 당시에 긴급하게 확장해서 방제차를 다니게 했던 길이다. 방제가 끝난 지금, 기름사고의 흔적을 바다에서 지웠으니, 육지에서도 그 흔적을 지웠으면 한다.    

해안선이 구름처럼 둥글게 구부러진 구름포를 지나, 의항해수욕장을 지나는 포장도로의 언덕배기에서는 발바닥에 불이 난다. 도로의 고개를 내려와 천리포로 가는 임도길로 접어들며 기나긴 아스팔트를 벗어나 다행이다. 백리포로 내려가는 지점을 통과하자, 지금까지의 풍경과는 조금씩 달라져 마침내 천리포수목원의 정원풍경으로 들어선다.

◇ 천리포수목원 "국제수목학회 인증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의 대표 풍경.  빨간 목련과 불그스레한 벚나무 꽃이 만개하고, 초가지붕과 주변 풍경이 연못에 비친다 © 뉴스1
천리포수목원의 대표 풍경.  빨간 목련과 불그스레한 벚나무 꽃이 만개하고, 초가지붕과 주변 풍경이 연못에 비친다 © 뉴스1

수목원의 북쪽 외곽 끝에서, 키 큰 목련마다 맺은 흰꽃, 분홍꽃 무더기를 만난다. 목련의 제국에 들어온 것이다. “오오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으로 이어지는 엄정행의 가곡 은율이 절로 나온다. 수목원 입구로 가는 도로에서, 다른 곳에서는 다 진 벚꽃 가로수들이 “올해 마지막이에요!” 하며 하얀 꽃비를 우수수 뿌려준다. 
     
수목원에 들어선다. 천리포수목원의 풍경은 언제나 좋지만, 연못 앞 뷰포인트에 수선화가 맑게 피고, 물가에 빨간 목련이 활짝 피며, 연못 건너편에 두 채의 초가 지붕이 수면에 비치는 그림이 가장 예쁘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다른 지역에선 이미 목련이 거의 진 시기지만, 이곳은 바닷가의 서늘한 기온 때문에 개화시간이 늦고, 개화기간이 오래 간다. 이 수목원에서 가장 많은 나무가 목련(871 종류)인가 했는데, 동백나무(1,096종류)가 가장 많다.

천리포수목원의 대표 수목 중 하나로 565종류를 보유한 호랑가시나무가 있다. 두껍고 각진 잎 끝에 난 가시로 호랑이가 등을 긁었다 해서, 또는 이 가시가 호랑이 발톱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특히 이곳에는 설립자인 밀러(Miller), 민병갈 원장이 발견한 완도호랑가시나무와 ‘호랑가시나무변산라이어(Lyre)’라는 품종이 심겨 있다. 호랑가시나무의 영어 이름은 홀리(holly)다. 나뭇가지와 빨간 열매를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용으로 쓴다. 그래서 거룩한 밤, 홀리 나잇(holy night)인가? 

갖가지 목련꽃의 칼라풀한 만개. 오!오! 탄성을 내며 지나가는 방문객들 © 뉴스1
갖가지 목련꽃의 칼라풀한 만개. 오!오! 탄성을 내며 지나가는 방문객들 © 뉴스1

25년 전, 기자는 국립공원이었던 이 지역에 근무했다. 시간 있을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 자갈길을 달려와 휙 둘러보던 수목원이었다. 가끔 뵈었던 민병갈 원장이 나를 ‘미스터 신’으로 불렀던 그 음성이 기억난다. 그 때는 찾아오는 사람 드물었던 비밀의 화원이었는데, 이제는 도시공원처럼 붐비는 ‘인기’수목원이 되었다. 민병갈 원장은 아마도 비밀의 화원으로 남아주길 바라지 않았을까?

구석구석 둘러보고 수목원을 떠나면서, 변화는 요기까지만 하고, 어여쁜 나무들이 그림처럼 서 있는 미술관으로, 옛 풍경이 변치않는 박물관으로, 나무들의 은신처로 오래오래 존재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해변길 2코스의 종점인 만리포에 다가선다. 15년 전의 그날 새벽, 기자는 설악산을 향하다가 기름유출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듣고 만리포로 방향을 틀었다. 간장을 풀어놓은 듯 검은 기름으로 뒤덮힌 바다와 백사장, 하늘마저 검었다. 끈적끈적한 검은 타르가 범벅되어 날지 못했던 새가 나를 쳐다보며 껌벅였던 그 눈동자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자연의 힘과 120만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로 기적적인 생태계 회복을 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영웅 만리포’다. 만리포는 이제 ‘만리포니아’란 브랜드로 서핑의 메카가 되고, ‘철 지난 바닷가’에도 낭만이 넘치는 사계절 관광지로 변화되고 있다. 파란 바다, 은빛 파도, 금빛 모래가 여전하다.

해 지는 만리포 바다의 풍경. 호수처럼 잔잔한 은빛 바다에서 서핑 보드를 젓고 있는 사람 © 뉴스1
해 지는 만리포 바다의 풍경. 호수처럼 잔잔한 은빛 바다에서 서핑 보드를 젓고 있는 사람 © 뉴스1

한국의 사하라 사막 신두리에서 모래 구경 실컷하고, 22㎞의 들쑥날쑥한 리아스식 해안길을 걸어, 천리포의 곱고 예쁜 수목원에서 목련 구경 실컷하고, 노을 지는 만리포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트래킹을 마감했다.

몽산포, 청포대, 꽃지, 바람아래 등 태안의 명소의 반은, 걱정없이 편하게 잠 자라는 안면도(安眠島)에 있다. 이곳은 정말 ‘너무 편안한 세상’, 태안(泰安)이다.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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