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식 과기정통부 제2차관이 5G 28㎓ 지하철 와이파이 시연회에 참석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과기정통부 제공) |
'진짜 5G'라는 유령이 3년간 통신 시장을 배회했다. 2019년 4월 5G 첫 상용화 이후 28㎓ 주파수 대역 5G는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로 알려지면서 '진짜 5G'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더딘 장비 구축과 마땅한 활용법을 찾지 못하면서 28㎓는 5G 품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0.3% 수준에 불과한 의무 구축 이행률이 문제가 됐다. 정부와 이동통신 3사는 고심 끝에 10배 빠른 '지하철 와이파이'를 내세우며 28㎓ 대역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28㎓ 5G 논란의 해법으로 등장한 '지하철 와이파이'28㎓ 5G는 정부와 통신 3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초고주파 대역을 활용해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끌 것으로 주목받았지만, 예상과 달리 전파적 특성으로 채산성, 활용도가 떨어져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국회 국정감사 단골 주제로 떠올랐다.
현재 국내에서는 중대역(Mid-Band)으로 분류되는 3.5㎓ 주파수로 5G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6㎓ 이하 주파수를 사용하는 5G 네트워크는 LTE보다는 속도가 빠르지만, 28㎓ 초고주파를 이용한 5G보다는 느리다. 그러나 28㎓ 대역은 장애물을 피해서 가는 회절성이 약해 더 많은 기지국을 세워야 해 비용 부담이 높다. 국내 이동통신 3사는 28㎓ 주파수를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 중심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5G망 상용화 당시 통신 업계는 28㎓ 주파수 대역의 이론상 최대 속도를 앞세워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내세웠다가 과장 마케팅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진짜 5G'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감에서도 3년째 5G 28㎓ 기지국 구축 미흡 등의 문제에 대한 질타가 쏟아져 나왔다.실제 통신 3사가 지난해 말까지 구축해야 하는 28㎓ 5G 기지국은 총 4만5215국(SK텔레콤 1만5215국·KT 1만5000국·LG유플러스 1만5000대국)이었지만, 실제 준공이 완료된 장비는 138국에 불과하다. 0.3% 수준이다.
5G 28㎓ 지하철 와이파이 장비가 서울 6호선 한강진역 터널 벽면에 설치된 모습. 2022.2.16/뉴스1 © News1 이기범 기자 |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3월 28㎓ 활성화 전담반을 발족, 통신 3사와 함께 지하철 와이파이를 중심으로 한 실증 사업에 나섰다. 통신 3사는 지난해 지하철 2호선 성수 지선에 5G 28㎓를 활용한 지하철 와이파이 성능 개선 실증을 마치고, 이를 서울 지하철 본선 2호선, 5~8호선으로 확대·구축 중이다. 실증 결과에 따르면 지하철 와이파이 속도는 기존 71.05Mbps 수준에서 700Mbps 수준으로 약 10배 개선됐다.
통신 3사는 오는 4월 말까지 5G 28㎓ 장비를 구축, 하반기까지 지하철 객차 내 와이파이 설치 공사를 완료한 뒤 연말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는 통신 3사가 공동 구축 중인 지하철 기지국 1500개를 28㎓ 의무 구축 수량으로 인정하기로 하는 등 완화된 기준을 제시하며 5G 28㎓ 활성화를 독려하고 있다.
◇지하철 와이파이 이후가 문제…정책 재검토 비판도
그러나 통신 업계 일각에서는 28㎓ 대역 활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28㎓ 실증 사업은 지하철 와이파이 외에는 크게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통신 3사는 지난해 야구장 등에서 체험존, 로봇 운영, 영상 중계 등 28㎓ 실증 서비스를 진행했지만, 대부분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으며 지속해서 이어지는 사업은 드문 것으로 확인됐다.
통신사들은 정부로 할당받은 28㎓ 주파수를 회계상 손상 처리하고 있다. 각각 2000억원을 들여 5년간 할당받은 주파수를 3년 동안 활용하지 못하면서 이를 결국 회계에 반영하는 모습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재무제표에 28㎓ 주파수 이용권을 1860억원 손상차손으로 반영했다. 같은 기간 LG유플러스는 27억2900만원을 손상차손으로 인식했다. 2020년 28㎓ 주파수 이용권 관련 손상차손 인식액은 1941억7600만원이다.
이동통신사들은 28㎓ 주파수 대역을 3년간 활용하지 못한 채 회계상 손실 처리하고 있다. 2018.11.30/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
지난해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은 "정부, 과기정통부는 28㎓ 구축 미이행 페널티만 운운하고 탁상행정을 하고 있다"며 "28㎓ 스마트폰도 출시 안 됐고 서비스도 없는데 지하철, 야구장 다니면서 시범 사업 폼만 잡는다"고 질타했다. 또 "5G가 성공하려면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B2B 서비스에 한정해 특수 분야를 만드는 등 정책 전환을 하는 게 대한민국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도 28㎓ 대역에 대한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변 의원은 "5G 구축 정책에서 정책 실패한 것을 인정하고 고쳐야지 비효율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방향을 정립해 보고해달라"고 촉구했다.
한 통신 업계 관계자는 "5G 상용화 과정에서 통신 업계와 장비 업계, 학계가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에 쓰지 않던 초고주파(mmWave) 대역을 써보자고 한 건데 실제로 해보니 생각보다 잘 안 돼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라며 "달라진 현실에 맞춰서 28㎓ 정책을 맞춰 가야 하는데 약속을 안 지켰다고 원론적인 얘기만 하면 현실과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통 3사 사업보고서를 보면 28㎓ 주파수를 손실 처리했는데 재무제표는 시장에 말하는 메시지로, 28㎓ 주파수로 돈을 벌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통신 업계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초고주파(mmWave) 대역을 전 세계적으로 쓰는 나라가 드물다. 미국 버라이즌도 대도시 위주로 초고주파 대역 5G를 구축했지만 장애물 문제로 품질이 좋지 않자 중대역 주파수를 활용해 품질 격차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며 "통신 3사도 28㎓ 주파수를 할당받으면서 수천억을 썼는데 활용하고 싶을 거고, 그래서 일단 지하철 와이파이를 중심으로 실증 사업을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8㎓ 5G 정책을 끝까지 끌고 가겠다는 입장이다.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도 28㎓ 지하철 와이파이 사례를 퀄컴 등 글로벌 사업자에 소개하며 28㎓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K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