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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영화 '놈놈놈'과 차기 한국은행 총재 논란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2022-03-25 05:30 송고 | 2022-03-25 09:34 최종수정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포스터. © News1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포스터. © News1

'놈놈놈'으로 불리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나뉜 이분법적 구도를 깨고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놈'이 섞여 들어가 신선함을 줬다. 지극히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임기응변에 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미가 넘치며 현란한 몸동작으로 해학을 안겨줬으나 그 이면에는 섬뜩함이 도사렸다. 한마디로 기이했다.
14년 전 이 영화가 새삼스럽게 떠오른 이유는 최근 청와대의 한국은행 차기 총재 지명 과정에서 '알박기' 등 이해하기 힘든 각종 이상한 논란이 불거져서다.

이를 위해선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법에 따라 독립성을 보장받는 기관이라는 점부터 이해해야 한다. 한은은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을 기반으로 시중 통화량을 조절해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책무를 맡고 있다. 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나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현행법은 한은의 '중립성'과 '자주성'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한은이 정부와 호흡을 맞춰 정책을 수행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독립기관인 만큼 대놓고 정권 뜻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한은의 정책 권한 자체도 통화정책으로 한정돼 현 정부가 알박기를 한들 그에 따른 수혜를 얻을 것도 없다. 한은 총재직이 애초에 알박기를 할 만한 성격의 직책이 아닌 이유다.

청와대가 지명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심지어 '이명박(MB) 정부 인사'로 통한다.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당시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참여한 뒤 MB 정부에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됐던 이주열 한은 총재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연임시킨 문재인 대통령이 차기 한은 총재에 MB 정부 출신 인사로 알박기를 시도한다는 이번 논란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당초 청와대의 이 국장 지명 전부터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이 국장 외에 이렇다 할 적임자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뒷얘기가 돌았다. 이 국장과 함께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이 하마평에 올랐으나 해외문화에 익숙한 신 국장이 총재직을 수락할지가 미지수였다. 인수위 소속 김소영 서울대 교수의 경우 뛰어난 개인 역량을 차치하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친분으로 인해 한은 총재에 오를 경우 '윤핵관 꽂아넣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금융권에서 청와대의 이 국장 지명이 지극히 상식적인 인사로 통하는 이유다.

최근 들어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00~0.25%에서 0.25~0.50%로 0.25%p 인상했다. 0.50%포인트(p)를 한번에 올리는 '빅스텝'마저 시사하며 본격적인 긴축 행보에 나선 엄중한 시기다. 국내 금융권의 긴장감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와 차기 정부 간 힘겨루기로 인해 당장 4월 1일부터 사상 초유의 한은 총재 공백 사태는 이미 기정사실화한 모양새다.

이렇듯 급박한 시기에 국제무대에서 활약해온 이 국장이 마지막으로 고국에 이바지하고자 청와대의 한은 총재직 제안을 수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제감각을 갖춘 유능한 인물이 통화정책을 수행한다는 건 새 정부에는 '복'이 아니겠느냐는 평가가 여야를 막론하고 흘러나오는 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이 국장 지명을 두고 인수위 측 "동의 못한다"는 발언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한은 총재직을 두고, 그것도 전 세계적인 통화긴축이 본격화하는 엄중한 시기에 대한민국 사상 초유 통화정책 수장 공백 우려가 불거지고, 이마저도 차기 정부의 책임론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러한 논란은 당혹감을 넘어 황당함을 안겨준다.

물론 신구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 속에서 인수위로서는 청와대의 임명권 행사로 자칫 첫 시작부터 인사가 꼬일 수 있다는 우려가 클 것이다.

그러나 인수위 역시 한은 총재직의 무게와 성격, 임명의 시급성, 후보자 적합성에 대해 모를 리 없을 터다. 안그래도 생뚱맞은 한은 총재 알박기 논란이 일어나는 와중에 청와대의 임명권 행사에 대해 인수위의 불쾌감만 강조되는 상황은 나쁘다기보단 '이상함'으로 비친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과정에서 어떠한 신선함도, 인간미도, 해학도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se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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