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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독일의 재무장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2-03-22 07:01 송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1차 대전이 끝나고 1919년 6월에 개최된 파리평화회의에서 베르사이유조약이 체결되었다. 여기서 패전국 독일은 유럽의 일부 영토를 내놓고 무장해제와 군비축소 제재를 당했다. 10만 명으로 병력을 제한당했을 뿐 아니라 각종 무기를 총망라해 생산과 보유가 금지되었고 심지어 군복과 백팩도 몰수되고 헬멧은 모두 파괴되는 등 상당히 가혹한 내용이어서 독일은 반발했다.

독일은 여러 가지 교묘한 방법을 써서 베르사이유조약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군비를 증강하다가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는 대놓고 조약을 위반하면서 급속히 재무장했고 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 1차 대전 승전국들은 독일의 재무장을 사실상 방관했는데 역설적으로 미국 기업들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연합국들은 1차 대전 후와 같은 엄중한 조치로 독일군을 무장해제시키고 군수산업을 초토화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의 경제 상황이 참담해서 공산권의 유혹을 받을 우려가 커졌다. 그래서 1948년 마셜플랜과 함께 독일의 경제는 재건되었고 새로운 독일 국방군(Bundeswehr)이 출범했다. 그러나, 1차 대전 후와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독일은 1955년 결성된 나토 테두리 내에서만 군을 운용할 수 있게 조치되었다.  

현재 독일 국방군은 약 18만 명 규모다. EU 내에서는 프랑스 다음이고 국방비 지출은 530억 달러 정도다. 이 금액은 독일 GDP의 1.4%에 해당한다. 나토의 권고치인 2%에 훨씬 못 미친다. 이 때문에 독일은 나토 회원국들로부터 무책임하다는 압력을 받다가 2025년까지 병력을 20만 명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전시였기는 하지만 2차 대전 때 독일군 병력은 900만을 넘었었다.

사실 독일은 역사적 이유도 있지만 통일 후 국방력을 증강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독일의 가장 큰 적이었던 영국, 프랑스와는 적대관계가 재현될 가능성이 없고 러시아만이 문제인데 메르켈정부를 거치면서 러시아와 우호관계가 공고해졌다.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50%를 공급받는 나라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이다. 지난 2월 27일 숄츠 총리는 우선 1천억 유로(우리 국방비 52조 원의 거의 세 배인 134조 원)의 특별예산을 국방군에 배정하겠으며 독일은 향후 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GDP 대비 국방비는 세계 각국이 대체로 2% 안팎을 지출하는데 우리도 같다. 사우디가 10%, 이스라엘이 6%, 미국과 러시아만 3% 내외다. 물론 미국의 국방비는 2~10위 합산액과 비슷하다.

독일은 분쟁지역에는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전통도 이번에 뒤집었다. 무기는 생산국 동의 없이는 제3국에 이전될 수 없다는 계약과 함께 유통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규칙은 부품에도 적용된다. 유럽에서 유통되는 무기나 부품의 대다수가 독일산인 상황에서 핀란드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사방의 압박과 비난을 받던 독일은 오래된 규칙을 깨고 자신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재가동된 독일의 재무장이 유럽과 세계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독일을 분단시켰던 러시아가 그를 촉발시켰다는 것이 공교롭다.

우리는 2차 대전을 미국 등 서방과 독일의 전쟁으로 우선 생각하지만 사실은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부전선에서 독일은 약 280만, 러시아는 약 2900만의 인명피해를 입었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참혹한 전쟁이었다. 특히 러시아측 동부전선 손실은 2차 대전 전세계 총 사망자 수인 5천만명의 거의 60%에 달한다. 그 독일과 러시아가 다시 대립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지구촌에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학자들은 유럽에서 독일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졌을 때 항상 불행이 닥쳤다고 한다. 현재 독일은 유럽 1위의 경제대국이므로 군사력이 그에 맞추어서 커지면 그야말로 위험할 수도 있는 강대국이 된다. 더구나 독일의 군사력 증강 계획은 초당적 합의로 마련되고 있다. 집권세력인 사회민주당, 동맹90/녹색당 연합정부와 보수정당 기민당/기사당 모두 공감해 국론이 통일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언론들은 입을 모아 이번 독일의 움직임이 ‘역사적’이라고 평한다. 911도 큰 사건이었지만 유럽 전체를 흔든 것은 아니었다. 스위스가 200년 만에 중립적인 태도를 바꾼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국제정세와 무관함을 나라의 정체성과 경제의 기초로 해서 살아 온 스위스다. 기업들은 물론이고 각 분야에서는 세상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현실에 맞추어 새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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