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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레인저가떴다] '야성미' 숨은벽 '서울의 왕관' 백운대…숨멎는 '뷰' 연발

<11>북한산① 숨은벽~백운대~영봉~우이동 9.5㎞ 힐링 산행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절벽 세트'…어느 도시에 이런 산이 있나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2022-03-25 09:00 송고 | 2022-04-15 18:27 최종수정
 
북한산 전경. 왼쪽 백운대 오리바위와 만경대. 오른쪽 노적봉과 그 뒤의 보현봉-문수봉, 의상봉 능선의 라인이 파도처럼 이어져 있다 © 뉴스1
북한산 전경. 왼쪽 백운대 오리바위와 만경대. 오른쪽 노적봉과 그 뒤의 보현봉-문수봉, 의상봉 능선의 라인이 파도처럼 이어져 있다 © 뉴스1

뉴욕에 센트럴파크, 런던에 하이드파크가 있다면, 서울에는 북한산 파크가 있다. 내로라 하는 세계의 도시들이 서울을 부러워하는 것은 바로 북한산국립공원 때문이다. 북한산만큼 규모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가깝게 위치한 도시가 없다. 시내 어디에서도 한시간이면 북한산 언저리에 닿을 수 있고, 10분 이내에 깊은 숲 속에 들어설 수 있다. 한두시간 안에 능선에 올라 탁 트인 산과 도시를 바라보며, 심신의 스트레스를 탁 털어낼 수 있다.

북한산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서울과 수도권에 청량한 물과 산소를 내뿜고, 시원한 공기로 도시의 열기를 식히며, 사계절마다 다양한 풍경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산이다. 도시확산으로 쫓기고 밀려난 5000 종의 생물들이 간신히 살고 있는 ‘최후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북한산은 국가의 역사와 민족의 애정이 깊게 박혀있는 산이다. 삼국시대에 삼국의 국경으로서 격전지였고, 조선시대 이래로 국가의 제사를 지내면서 수도를 수호하는 진산(鎭山)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백운대 정상에 독립운동을 알리는 글을 바위에 썼고, 진관사에 태극기와 독립신문을 은닉하기도 했다. 북한산에 가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역사의 성지를 다녀오는 것이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북한산은 규모에 비해 가장 많은 방문객이 오는 '세계 1위'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그만큼 100개에 가까운 등산로와 수백 개 샛길이 거미줄처럼 나 있다. 그 길들이 높은 곳으로 모이고 모여 한 점에 이르는 꼭지점에 백운대(白雲臺, 836m)가 있다. 흰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봉우리라니, 얼마나 우리 정서에 딱 맞는 이름인가!

'서울의 왕관' 백운대에 오르는 여러 등산로 중에서 숨은벽 코스는 이곳 저곳에서 백운대를 올라본 경험자들이 색다른 풍경과 스릴을 찾아 오르는 길이다. 우람한 바위경관과 탁트인 전망을 즐기되, 난이도가 높고 사고 위험이 있어 철저한 준비와 조심이 필요한 암릉길이다. 겨울철과 강풍이 부는 날은 아예 가지 않는 것이 좋다.

◇ 밤골-숨은벽 2.2㎞ "짜릿한 암릉을 건너, 낯설고 야성적인 숨은벽을 보다"

숨은벽 입구인 마당바위 아래 해골바위와 멀리 노고산과 한북정맥 © 뉴스1
숨은벽 입구인 마당바위 아래 해골바위와 멀리 노고산과 한북정맥 © 뉴스1

버스(704, 34번)를 타고 효자2통에서 내려, 50m쯤 도로를 올라가, 오른쪽 길로 북한산을 향해 들어선다. 곧 '밤골 공원지킴터'가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온다. 등산로와 둘레길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작은 화장실과 국사당이라는 굿 하는 장소가 있다.

여기서 백운대는 계곡길(4.1㎞)과 능선길(4.3㎞)로 나뉜다. 여름철이 아니면 대부분 능선길을 타고, 숨은벽에서 원점회귀를 하는 사람들도 능선길로 올라 계곡길로 하산한다. 능선길을 택해 오른다. 예전의 이 길은 자연스런 오솔길이었으나 탐방객이 많아지면서 길이 패이고, 나무뿌리가 드러나며, 계단이 생겨 이제 오솔길이라 부를 수 없다. 1.5㎞ 지점의 첫 안전쉼터에서 호흡을 정리하고, 이후부터 경사가 높아져 계단과 쇠난간이 설치된 바위길을 오른다. 고도가 금방 높아지는 만큼 등어리에 땀이 밴다. 드디어 전망이 탁 터지는 데크계단에서 머나먼 도봉산을 바라보고, 곧 마당바위에 도착한다. 출발한지 한 시간쯤 되었다.
 
마당바위에서 보는 숨은벽 원경. 왼쪽 인수봉과 중앙-오른쪽의 백운대 사이에 숨은벽이 돌출되어 있다 © 뉴스1
마당바위에서 보는 숨은벽 원경. 왼쪽 인수봉과 중앙-오른쪽의 백운대 사이에 숨은벽이 돌출되어 있다 © 뉴스1

마당바위에 오르자마자 오늘 이 코스를 타는 목적인 인수봉-숨은벽-백운대 '절벽 세트'를 바라본다. 많이 다닌 북한산에서 이 풍경은 낯설다. 북한산의 어느 곳에서 어디를 보아도 봉긋한 바위봉우리들을 보기 마련인데, 이 풍경은 이 지점에서만 볼 수 있는 '절벽 풍경'이다. 그 가운데에 숨은벽이 있다. 모양과 표정이 서로 다른 세 개의 절벽이 만든 우람하고 묵직한 경관인데, '숨었다'는 표현을 붙이니, 고고하고 고독한 풍경이라는 느낌이 든다.

고개를 돌려 상장능선 너머로 솟아오른 도봉산의 오봉과 신선대-자운봉-만장봉-선인봉의 바위성(城)을 조망한다. 숨은벽 풍경과 전혀 다른 '밝고 경쾌한' 경관이다. 마당바위 아래에서 해골바위의 깊게 패인 두 눈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내게는 검투사의 투구처럼 보인다.  

숨은벽으로 다가서며, 절벽 위 좁은 암릉 끝에서 짜릿한 스릴을 느낀다. 오른쪽 낭떠러지를 의식하며 왼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잡고 천천히 걷는데, 전문가임을 자랑하듯 성큼성큼 뛰는 사람도 있다. 사고는 그런 전문가들한테서 많이 난다. 등산을 왔다고 볼 수 없는,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암릉 위에서 엉거주춤한 모습도 있다. 암릉 왼쪽 아래에 그들을 위한 안전한 길도 있지만, '완전히' 안전한 길은 아니다. 

숨은벽으로 다가서는 암릉. 짜릿한 스릴이 있지만 눈과 얼음이 덮이는 겨울과 강풍이 부는 날은 피해야 한다 © 뉴스1
숨은벽으로 다가서는 암릉. 짜릿한 스릴이 있지만 눈과 얼음이 덮이는 겨울과 강풍이 부는 날은 피해야 한다 © 뉴스1


숨은벽 근경. 금방 쏘아 올려질듯한 로케트처럼 긴장되고 긴박한 모습이다 © 뉴스1
숨은벽 근경. 금방 쏘아 올려질듯한 로케트처럼 긴장되고 긴박한 모습이다 © 뉴스1

숨은벽 바로 앞까지 왔다. 그 이름처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일까, 금방 쏘아 올려질 로케트처럼 긴박한 모습이다. 신들의 미끄럼틀일까!, 하체는 45도 각도의 매끈하고 기다란 슬랩(slab)이고, 상체는 미사일의 끝처럼 하늘을 향해 뾰족히 솟구쳤다. 벽이 아니라 탑이다. 왼쪽에, 어디서나 미끈하게 보이던 인수봉이 이곳에서는 울퉁불퉁한 '근육질 절벽'이고, 오른쪽 백운대의 뒷모습은 거칠고 차갑다. 우이동쪽에서 보던 '단정한' 앞태와는 전혀 다른 '야성적인' 뒷태다. 이들이 중첩되고 연결돼 만들어진 거대한 바위성을 한없이 바라본다.  

◇ 숨은벽-백운대 2.1㎞ "젊은이들의 양지 백운대에 올라 최고의 뷰를 누리다"

숨은벽을 앞에 두고, 쇠난간이 박힌 급경사 절벽을 조심조심 내려서서, 너덜바위들이 불규칙하게 널브러진 협곡에 닿는다. 햇빛이 닿지 않는 짙은 그늘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머리 위에선 쎈 바람이 웅웅거리는 바람골이다. 어서 벗어나고 싶은 을씨년스러운 협곡이지만, 급경사 돌무더기 투성이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두 발 두 손 다 쓰면서 30분쯤 올랐을까, 골짜기 끝에 계단이 나오고, 그 끝에 사람 한 명이 비집고 나아갈 틈새를 통과한다. 인수봉과 백운대가 갈라지는 바위틈이다. 그렇다면 이 기나긴 협곡의 돌무더기들은 인수봉과 백운대가 쪼개지면서 쏟아져 내린 파편이구나! 백운대의 아랫도리를 돌아 백운대로 올라가는 바위길 입구에 선다. 휴일의 백운대는 언제나 만원이다.  

갈라진 바위틈을 따라 수직으로, 바위허리를 따라 수평으로 아슬아슬하게 오고가는 사람들이 개미들의 행렬로 보인다. 멀리서도 그들의 긴장된 근육과 쫄깃한 심장을 느낀다. 옛사람들은 덩굴을 부여잡고 올랐다 하는데, 우리는 쇠난간과 쇠로프를 부여잡고 기어 오른다. 바위에 패인 홈과 앞사람의 발자국을 정확하게 디디며 올라서니 인수봉의 이마가 저 앞에서 반짝거린다. 그리고 마침내 태극기가 펄럭이는 백운대에 선다.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칼바람을 맞으며 줄을 서있고, 여기저기서 팔과 스틱으로 하늘을 찌르는 모션들이 다양하다.

백운대는 과연 요즘의 핫플레이스다. 레깅스에 반바지, 추리닝, 청바지 등 캐주얼한 복장에 운동화를 신고 올라온 젊은 세대, 외국인들이 많다. 등산복을 정확하게 갖춰 입고 온 산꾼이 오히려 어색하다. 이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 중 하나는 뷰가 멋진 곳에서 SNS에 올릴 인증사진을 찍는 것이다. 100대 명산 인증에다 SNS용 인증이 더해져, 언제부턴가 산의 정상마다 길게 줄을 서는 풍경이 생겼다.
 
백운대 풍경.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 뒤에 태극기에서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긴 행렬이 서 있다 © 뉴스1
백운대 풍경.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 뒤에 태극기에서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긴 행렬이 서 있다 © 뉴스1


백운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성냥갑같은 아파트와 도시의 격자들. 멀리 수락산-불암산, 그 뒤에 경기도와 강원도의 산 능선들이 보인다 © 뉴스1
백운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성냥갑같은 아파트와 도시의 격자들. 멀리 수락산-불암산, 그 뒤에 경기도와 강원도의 산 능선들이 보인다 © 뉴스1

인증을 마친 사람들이 마당바위에 쭉 앉아서 풍경을 내려다 본다. 저 아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의 바다이다. 발 아래에 성냥갑같은 아파트와 바둑판같은 도로가 쫘악 깔려 있다. 저 많은 건물과 사람들을 먹여살리고, 그 엄청난 배설물을 처리하는 서울은 위대하다. 도시의 테두리에 왼쪽으로 도봉산의 암봉들이 도열해 있고, 중앙에 수락산과 불암산 라인이, 오른쪽으로 청계산-관악산 라인이 넘실대고 있다. 산과 도시를 가르는 한강 물줄기가 반짝거린다. 시선의 끝에 경기도와 강원도의 머나먼 능선들, 인천 송도의 빌딩들, 강화도 섬들이 아련하다. 자연과 도시가 반반인 이 멋진 풍경을, 봉이 김선달이 있다면 반드시 구경값을 받았을 것이다.        

◇ 백운대-영봉-육모정지킴터-우이동 5.2㎞ "산불위험과 '북한산 되찾기'를 생각하며 하산"

백운대를 내려서는 급경사 바위길은 올라올 때 보다 훨씬 위험하다. 이렇게 사람간격이 좁은 곳에서는 스틱을 접어야 하는데, 등린이(등산+어린이)급 초행자들이 어쩔줄 모르고 스틱을 휘두른다. 미끄러운 운동화를 신고 온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거의 뒤로 누워서 내려서는 모습도 있다. '목숨 걸고 소풍 나온' 사람들이다. 북한산은 동네 뒷산이 아니다. 안전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설악산에 특수산악구조대가 근무하고 있을 정도다.

백운산장과 인수암을 통과해 하루재에서 영봉(靈峰/604m)으로 오른다. 영봉까지는 200m에 불과하지만, 경사가 급해 속도가 늦는다. 언젠가 영봉 밑에서 산불이 나 곤혹을 치루었다. 분명히 불을 다 끄고 진화완료 선언을 했는데,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다시 불이 났다. 바위틈 깊숙한 곳의 낙엽과 고사목 부스러기에 남았던 불씨를 완전히 끄지 못한 것이다. 산에서 취사와 흡연, 촛불기도는 아직 완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올해도 겨울가뭄-봄가뭄이 이어지며 바싹 마른 북한산이다.  

영봉에서 바라보는 삼각산의 모습은 또다른 형태이다. 여기서는 인수봉이 백운대를 가리고 내가 최고라는 위용을 뿜어낸다. 만경대를 정점으로 북한산 주능선이 왼쪽으로 이어지면서 수십개의 가지 능선이 산 아래로 내려가 도시 틈으로 사라진다. 산줄기가 도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도시의 축복이다. 그러나 도시가 산으로 올라오는 것은 산의 축복이 아니다.
    
영봉에서 바라본 북한산. 오른쪽 인수봉. 그 옆의 만경대에서 빚어진 능선과 수많은 산줄기들이 도시로 내려가 도시를 숨쉬게 한다 © 뉴스1
영봉에서 바라본 북한산. 오른쪽 인수봉. 그 옆의 만경대에서 빚어진 능선과 수많은 산줄기들이 도시로 내려가 도시를 숨쉬게 한다 © 뉴스1

영봉에서 우이령길까지 능선은 전망이 좋고 한적하다. 길 앞으로 계속 도봉산 암봉들을 바라보고, 길 옆으로 북서울 시내를 전망한다. 용덕사를 지나 우이령길과 만나고, 다시 우이동까지 걸어 산행을 종료한다. 백운대에서 2시간쯤 걸렸다.

우이동에 이르러 다시 북한산을 바라본다. 국립공원 경계 바깥에 새로 지은 거대한 건물들이,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던 삼각산 봉우리를 가리고 있다. 더 이상 도시가 산으로 올라가지 말기를 기도하고 기도한다. 30년 전쯤 '남산 되찾기 사업'으로 대형 아파트 몇 채를 허문 역사가 있다. 언젠가는 '북한산 되찾기 운동'을 통해 북한산 본래의 경관이 되돌아오기를 바란다.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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