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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러시아 유코스 사건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2-03-08 07:01 송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사태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서방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다시 나타났다. 호도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망명 반체제 인사다. 현재 런던에 거주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한다.
호도르코프스키는 옐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1991년 반 고르바초프 쿠데타 때도 같이 정부를 사수했다. 옐친정부 에너지자원부 차관을 지내고 1995년에 민영화된 러시아 최대 민간 석유회사 유코스(Yukos, 1993~2007) 회장이 되었다. 호도르코프스키는 당대 러시아 최대 올리가르히였는데 2003년 기준 재산이 150억 달러였다.

2000년에 푸틴정부가 들어서면서 호도르코프스키와 푸틴은 정치관과 성격 차이로 대립하게 된다. 호도르코프스키는 후일 야당 대통령후보가 되고 선거 패배 후 크로아티아로 망명한 체스챔피언 가리 가스파로프와도 가까웠다. 2003년에 호도르코프스키는 푸틴정부 인사들의 부패 문제를 내놓고 공격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탈세등 혐의로 체포되어 14년 형을 받았다. 호도르코프스키의 변호사는 수사 과정이 불법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해버렸다.

유코스는 탈세 혐의로 미납 세금을 추징당했다. 러시아 세무당국은 약 270억 달러를 추징하면서 “오늘 오후까지 현금으로 납부할 것”을 명령했다. 유코스는 파산했고 유코스의 핵심 자산이었던 서부 시베리아 석유회사 유간스크네프테가스가 입찰에 부쳐졌다. 인수희망자가 없어 매각이 불발되었다. 그러자 바이칼금융그룹이라는 정체불명의 펀드가 나타나 유간스를 인수했다. 인수가격은 러시아 세무당국이 평가한 기업가치에 훨씬 못미치는 94억 달러였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가 유령회사 바이칼의 배후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야당과 국제사면위원회가 호도르코프스키의 석방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푸틴은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한 TV프로그램에 나와 유코스 사건과 같은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면 안된다는 말까지 했다. 독일 전 외무장관 디트리히 겐셔의 외교적 노력으로 호도르코프스키는 2013년에 가서야 대통령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호도르코프스키는 나름 유코스의 지배구조를 서구의 그것에 비견될 만큼 진보된 형태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사회에 5인의 미국인 사외이사를 임명했다. 미국의 한 단체에 백만 달러를 기부해 러시아 정부가 ‘법의 지배’를 배우도록 시도했고 러시아 판사들이 미국 법원을 견학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유코스는 미국인을 CFO(최고재무책임자)에 임명하고 US GAAP에 따라 작성한 과거 3년 치 회계자료를 공개하기도 했다. 유코스는 러시아 석유생산의 20퍼센트, 글로벌 생산의 2%를 담당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호도르코프스키가 체포된 해인 2003년에는 시브네프트와 합병해 글로벌 4대 기업이 될 참이었다. 합병은 무산되었다.

상대적으로 서구화된 유코스의 지배구조 덕분에 유코스에는 15%의 미국인 투자자를 포함해 영국, 스페인 등 다수 국가의 주주들이 투자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코스 사건이 위와 같이 마무리되자 미국, 스웨덴 등 국가의 법원과 여러 국제법원에 러시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07년에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는 500억 달러 손해배상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 법원이 동 판정을 근거로 러시아측 자산을 가압류했다. 그러나 이 판정은 작년 11월에 네덜란드 대법원이 파기해 하급법원에 환송된 상태다.

유코스와 호도르코프스키는 2003년에 퇴장했지만 그 파급효과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된다. 법적 절차는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인데 서구 일각에서는 최근에 발발한 우크라이나 사태가 그 향배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두고 이런저런 관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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