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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기를 단 울음들이 와락 덤벼들었다" [신간의 문장: 시·에세이]

시집: 광주의 푸가, 탄잘리교,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에세이: 페르소나주, 상실 끌어안기,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울다가 웃었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2022-03-06 06:06 송고 | 2022-03-06 11:27 최종수정
광주의 푸가, 탄잘리교,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뉴스1
광주의 푸가, 탄잘리교,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뉴스1

3월 첫째주에는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인 지난 해에 맞춰 출간될 예정이었나 코로나 등의 이유로 출간된 시집 '광주의 푸가'를 비롯해  박유하 시인의 첫 시집 '탄잘리교' 48개국의 시인 108명이 함께 쓴 연작시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등이 서고에 꽂혔다.

프랑스 소설가 실비 제르맹과 언론인 로르 아들레르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도 눈길을 끈다. 실비 제르맹은 소설 속 등장인물을 주제로 글쓰기 담론을 펼쳤고, 로르 아들레르는 생후 9개월의 아들 레미를 병으로 떠나보낸 과정을 회고했다.
여기에 라디오DJ이자 코미디언 김영철이 속 깊은 이야기를 담은 '울다가 웃었다'를 펴냈고, 과학저술가 정인경씨가 과학을 통해 깨달은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 '내 생의 중력에 맞서'를 독자들에게 내놓았다.

◇ 광주의 푸가/ 박관서 지음/ 삶창/ 1만원

박관서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96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철도원 일기', '기차 아래 사랑법' 등을 펴냈다. 신간 '광주의 푸가'는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인 지난해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등으로 올해 세상에 나왔다.
"언덕을 넘어 함께 거닐던 저녁 바람이/ 아무리 앙칼지게 불어와도/ 푸른 잎새 노란 어금니를 앙다물고/ 당신이 증오하는 당신은 되지 않겠다."(달맞이꽃 중)

"잠수부가 되었던 80년 그때/ 눈앞에 있는 광주에 다가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주를 말하지 못하고/ 다만, 물안경을 쓰고 깊은 바다에 잠겨서야/ 바라보던 광주를, 이제 다시 진도에서 본다."(진도에서 광주를 보았다 중)

◇ 탄잘리교/ 박유하 지음/ 천년의시작/ 1만원

충남 논산에서 1987년 태어난 박유하 시인의 첫번째 시집이다. 2012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한 그는 세계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면서 인식의 균열, 일상성의 균열, 관념과 의미의 균열을 시로 표현했다.

"침대가 놓여 있습니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구비되어 있고/ 오랫동안 펴지 않은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가구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방은 당신의 설명과 다르잖아요…검은 개가 우리를 향해 컹컹 짖다가 떠났다/ 사라진 울음이 귓가에 남아 맴맴 돌았다/ 우리는 방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앙상하게 남은 우리에게 집중하였다."(방 거래 중)

"생식기를 단 울음들이 와락 덤벼들어/ 어둠이 번식하는 도중에도/ 물고기를 낚아채듯 고양이는 전파의 입을 덥석 문다."(고양이 안테나 중)

◇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오아나 모퍼고 外 107명 씀/ 안온북스/ 1만5000원

이오아나 모퍼고, 요시키와 나기, 요쓰모토 야스히로 등 48개국의 시인 108명이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 연작시를 썼다. 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닫힌 창문을 바라보며 시를 섰다. 한국에서는 황인찬 등 8명이 참여했다.

"내일이 또 온다고 했지만/ 그 내일이 오늘이다/ 그리고 아무도 숨을 쉬지 못한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어/ 칠월은 멀었는데 이제 칠월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카메룬 시인 라울 지멜라)

"이게 끝나면 나는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살 거야. 위험한 여자로. 꼭 살 거야. 두 살짜리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많이 죽었어. 아이는 강에서 썩는 오소리, 민들레에 묻힌 짜그라진 들쥐, 길을 건너지 못한 고양이, 바위틈의 웅덩이에 빠진 어린 까마귀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세계가 듣고 있는 것은 그 목소리가 아니다."(영국 시인 멜란젤 다피드)

페르소나주, 상실 끌어안기© 뉴스1
페르소나주, 상실 끌어안기© 뉴스1

◇ 페르소나주/ 실비 제르맹 지음/ 류재화 옮김/ 1984BOOKS/ 1만3000원

프랑스 작가 실비 제르맹은 1985년 '밤의 책'을 비롯해 '호박색 밤' '분노의 날들' '마그누스' 등을 펴냈다. 2004년 출간한 '페르소나주'는 철학과 시적 언어의 경계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을 주제로 글쓰기에 대해 탐구한 에세이다.

"단어들에도 혈색을 줘야 한다. 부피를, 색깔을, 맛을, 섬유 조직 또는 성역 같은 조직을 마련해야 한다. 소리와 빛에 반사 작용을 할 수 있는 힘이 갖춰져야 한다. 등장인물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소설가에게 주어지는 책임이다."(31쪽)

"항상 인간의 살가죽에 대해 쓴다. 소설에서 다른 주제란 없기 때문이다. 실존의 불확실성. 아무리 말해도 다 말해지지 않는 인간의 난해함. 지극히 어려운 사랑. 그럼에도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사랑의 열정. 불가피한 고독. 그토록 다함 없는 사랑 끝에 생기는 냉소. 죽음 같은 허무. 이런 것들을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85쪽)

◇ 상실 끌어안기/ 로르 아들레르 지음/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1만3000원

로르 아들레르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한나 아렌트, 시몬 베유의 전기를 쓴 작가다. 그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을뻔한 이후 17년전에 병사한 생후 9개월의 아들 레미를 회고했다. 황홀했던 임신 기간과 태어난 아이와 함께한 행복했던 순간들부터 아이의 오랜 투병생활 그리고 마지막까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병원에서 나가기 위해 한참을 걸어야 했다. 아들과 떨어진 채 맞이하는 첫 번째 밤이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우리는 아이에게서 멀어졌다. 아이에게 말도 없이, 무슨 일인지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혼자 남겨두었다는 느낌은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78쪽)

"아들 없는 첫째 날 밤에 우리가 잠을 잤던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낮과 밤의 질서가, 깨어 있음과 잠의 질서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81쪽)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울다가 웃었다© 뉴스1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울다가 웃었다© 뉴스1

◇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정인경 지음/ 한겨레출판사/ 1만6000원

"우리의 행동과 성격은 유전자, 미생물총,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생긴 것입니다…빌 설리번은 “우리 행동을 뒷받침하는 숨은 힘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우리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거의 모두 틀렸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고백해요. 이렇게 과학은 내가 알고 있는 ‘나’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길은 쉽지 않아요."(18쪽)

"사랑은 타인을 위한 마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마음입니다. 내 감각기관과 신경계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행하는 것이니까요. 자식이든 누구든 내 감정이 먼저입니다. 자식 때문에 괴로울 때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내 말을 안 듣는 자식, 기대에 어긋난 자식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것은 자식에게 기대했던 내 마음이 어긋나서 나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자식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지요."(77쪽)

◇ 울다가 웃었다/ 김영철 지음/ 김영사/ 1만4800원

코미디언이자 라디오DJ 김영철씨가 긍정 에너지 속에 감쳐놓은 가슴 속 우울을 풀어냈다. 책에는 하늘로 떠난 큰형에게 쓴 편지에서 시작해 상처와 상심을 보듬고 살아가는 법, 장래에 관한 진지한 고민 등이 담겼다.

"사실 나의 밝음과 유쾌함엔 나의 노력도 한몫했다. 나의 명랑은 수없이 노력하고 연습한 결과다. 끝으로 이 말을 건네고 싶다. 우리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볼까요?"(6쪽)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기분이 좋지 않고, 짜증이 나고, 덜 행복한 것 같아도 일단 그냥 행복하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그럼 행복해질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행복의 빈도다 중)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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