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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공무원 '115억 횡령'…"계좌 허점·말 한마디에 의심도 패스"

출금가능 '제로페이' 계좌 이용…"구 시스템 연동 안된듯"
후임 3명 바뀔 동안 안 드러나…경찰, 내부 조력자 의심도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2022-01-26 16:58 송고 | 2022-01-26 18:14 최종수정
100억원대 시설건립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이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2022.1.2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100억원대 시설건립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이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2022.1.2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 강동구 소속 7급 공무원 김모(47)씨가 1년2개월에 걸쳐 115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드러났다. 공직사회에서는 "해당 구청은 물론이고 사업비를 입금한 서울도시주택공사(SH)에서 몰랐다는 게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김씨가 구청 회계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거액의 자금을 마음대로 빼돌린 것으로 보이는데 장기간에 걸쳐 범죄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내부에 조력자가 있엇던 게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26일 강동구와 경찰 등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구청 자원순환과와 투자유치과에 근무하며 115억원 상당의 투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강동구는 자원순환센터 건립사업을 위해 SH공사로부터 비용을 일부 지원받았는데, 김씨는 출금이 불가능한 기금관리용 계좌 대신 자신이 관리하는 제로페이 계좌로 받았다. 이를 다시 자신의 개인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렸다.

제로페이 계좌는 구청 내 회계 시스템에 잡히지 않아 결산을 피해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시의 경우 제로페이 결제도 시스템에 곧바로 반영되는데 강동구는 이걸 시스템에 연동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동구 측은 지난 2020년 결산 과정에서 김 씨에게 'SH 기금이 왜 들어오지 않았는지' 물었고, 김씨는 'SH 내부 사정으로 늦어지고 있다'고 거짓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횡령 사실은 4번째 후임자가 오고 나서야 포착됐다. 입금 내역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수상해 조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강동구와 인접한 한 A 자치구 관계자는 "횡령이 시작된지 2년 넘게 지나서야 조사가 본격 시작됐다는 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김씨가 해당 금액 사실을 인수인계하지 않았겠지만 3명의 후임자는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고 의문을 표했다.

B 자치구 관계자는 "사회복지 담당자들이 수급비를 본인 계좌로 돌려받는 수준의 횡령은 그동안 종종 있었으나 100억원대는 너무나 충격적"이라며 "주무관이 시키는 대로 돈을 입금하고 확인하지 않은 SH공사도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씨는 횡령한 115억원 중 38억원을 다시 구청 계좌에 입금했으나 나머지 77억원은 "주식 투자 등에 사용했고 전액 손실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경찰은 김씨 증언의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추후 계좌추적 등을 통해 자금 사용 내역, 은닉 자금, 내부 조력자 여부 등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C 자치구 관계자는 "선물·옵션이 아닌 단순 투자를 했다면 전액 손실이라는 게 도저히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은닉 재산이 있을 것 같다"며 "횡령을 도와준 조력자, 혹은 어느 정도 사실을 알고도 방관한 자가 있을 수 있어 철저한 조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이날 오전 사과 성명문을 통해 "공직비리 특별조사반을 편성해 협조자나 조력자 여부 등을 조사하고 예산회계 특정감사를 추진 중"이라며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 민형사상 모든 조치를 강구해 피해액을 최소화하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다른 관계자는 "강동구의 요청이 들어올 경우 우리와도 협조해 원인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며 "정상적인 회계 처리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만큼 각 자치구에서도 여러 회계 사안을 점검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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