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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증 중단 2년, 화려함 뒤 감춰졌던 면세점 직원들의 '눈물'

항구에서 생선나르고 호텔 청소하며 생계이어가
위축된 삶 속 지인과 교류도 끊겨…우울감 호소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2022-01-22 07:00 송고
제주국제공항 국제선 출국장이 한산한 모습이다(뉴스1DB) © News1 오현지 기자
제주국제공항 국제선 출국장이 한산한 모습이다(뉴스1DB) © News1 오현지 기자

"차라리 언제까지만 고생하자고 기한이 정해지면 좋을텐데 예측할수가 없으니 더 답답하죠."
지난 20일 제주도내 한 시내면세점.

코로나19 이전이라면 설 명절을 앞두고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을 이곳은 삭막함이 느껴질정도로 한산했다.

면세점 매장 안은 여전히 명품 브랜드와 고급 화장품 등이 즐비했지만 텅비어 생기를 잃은 듯했다.

2월 2일이면 제주에서 무사증(무비자)이 중단된 지 2년이 된다.
제주특별법에 따라 2002년 도입한 무사증은 테러지원국을 제외한 국적의 외국인이 한 달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무사증 중단 이후 한때 연간 300만명을 넘었던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4만명대로 쪼그라들었다.

외국인 관광수입 역시 코로나 이전 3조원대에서 5000억원대로 줄었다.

외국인을 주로 상대하던 신제주 상권은 물론이고 관광업계의 큰형님뻘이던 시내면세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철수하기로 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매출이 더 감소할까 걱정하고 있다.

최대 1000명이 근무했던 도내 한 면세점은 현재 절반 이상이 휴직 중이다.

나머지 직원들도 이미 휴직을 경험했거나 일부는 결국 이직을 선택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7년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뉴스1DB)© News1 
코로나 이전인 2017년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뉴스1DB)© News1 

◇"항구에서 생선나르고 호텔 화장실 청소하며 버텼죠"


면세점 직원 A씨(36)는 "처음 얼마간은 쉬면서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즐긴 측면도 있었다"며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지 시간이 길어지자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휴직한 직원들은 코로나 이후 관광업계 전반이 침체다보니 이직이나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드라마 촬영 엑스트라를 하거나 코로나로 중국인 인부들이 빠져나간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직원도 있었다.

A씨는 "배송업무가 경쟁도 덜하고 사람을 많이 뽑는다고 해서 알아봤는데 코로나 이후 상황이 역전돼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 항구 어판장에서 새벽에 생선을 나르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 B씨(33·여)는 9개월간 휴직을 했다.

B씨는 제주가 고향도 아닌터라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고향인 서울로 돌아가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기 싫었던 그는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20대부터 면세점에서 근무한 B씨는 "호텔에서 고객들이 퇴실하면 이불도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변기를 닦으며 눈물이 난적도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을 판매하는 C씨(38·여)는 출산과 맞물려 위기를 맞았다. 아이를 갖게 된 기쁨이야 말할나위 없겠지만 식구는 늘었는데 벌이는 줄어드니 생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업계에서 15년간 일한 C씨는 "이전에도 메르스나 사드처럼 위기가 있었지만 길어야 수개월 정도였다"며 "처음 코로나가 터질 때만해도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2년 넘게 길어질지는..."이라고 토로했다.

함께 꿈을 키웠던 동료들이 불투명한 미래와 수입 감소로 면세점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초조함과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C씨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풀릴지도 모르니 이직을 결정하기도 어렵고 제주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며 "동료 중에도 전혀 무관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한산한 제주국제공항 국제선 출국장(뉴스1DB)© News1 오현지 기자
한산한 제주국제공항 국제선 출국장(뉴스1DB)© News1 오현지 기자

◇'코로나 블루'에 지쳐가는 사람들


장기간 휴직과 코로나 사태로 직원들의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이들에게도 '코로나 블루'가 찾아온 것이다.

하루에 수백명, 수천명이 오가는 시끌벅적한 장소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텅 비어버린 매장을 보며 허탈감과 우울감을 느낀다고 한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에 명품이 둘러싼 화려한 공간에서 일했던 이들은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느냐, 모아둔 돈도 없느냐" 같은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B씨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취미생활을 물론이고 돈도 없고 여유도 없으니 주변인들과의 교류가 끊겼다"며 "삶이 위축돼버렸다"고 했다.

A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자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한다.

A씨는 "아이가 그림에 재능이 있고 좋아하기도 해서 미술학원을 보냈었는데 수입이 줄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해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학원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며 "부모로서 가슴이 정말 아팠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B씨는 "쉬는 동안에도 그렇고 지금도 고객이 거의 없지만 중국어 공부를 쉬지 않고 하고 있다"며 "코로나가 사라지고 무사증이 재개돼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C씨는 "새해에는 하늘길이 열려서 제주공항 국제노선이 회복해 우리도 그렇게 제주관광이 다시 활력을 찾길 바란다"고 했다.

A씨는 "지금 상황은 분명히 좋아질 것이라 믿고 코로나가 지나면 제주가 오히려 글로벌 관광지로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그때를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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